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92)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귀한 생명을 받고 이 세상에 태어났는데 삶을 이어가다가 어느 날 자연의 섭리대로 마무리하고, 더는 나만의 고유한 자취를 남길 수 없는 때를 곰곰이 생각한다. 젊었을 때야 창창한 앞날이 있는데 어찌 마무리를 생각할 틈새가 있는가. 지금 닥친 일들만을 처리하는데도 시간이 없고 바쁜데 수십 년 후 닥쳐올 내 삶의 마무리 모습을 생각하거나 가늠해 볼 여유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문득, 문득 내가 서 있는 자리를 돌아보고 긴 여정에서 어디쯤 와있는가를 얼핏 가늠해 볼 때가 있다. 아마도 나이로 보면 40대를 넘어 50대로 접어들면서 사회적으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고 가족관계도 안정되면서 주어진 여건에서 내가 지금 가는 길이 옳은 방향인가 하는, 확증되지 않은 불안감이 문득문득 마음에 일 때가 있다. 

그렇다. 생명체로 살아가면서 내가 존재하는 이유,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남긴 자취는 어느 모습이고 이어지는 삶에서는 어떤 모양으로 자신이 투영될 것인가에 대하여 조금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순간을 맞게 된다. 일반적으로 좋은 삶을 웰빙(well being)이라 일컬으며 이는 성숙한 나이 듦(well aging)이 갖춰져야 한다. 성숙함, 말은 단순하지만, 그 말의 뜻에는 복합적인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자기의 품위를 지키면서도 한쪽에 기울지 않는 균형 갖춘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 그리고 내 주위에 같이 사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 나로 인해서 주위가 결코 피해를 보지 않고 조금이라도 나아져야 한다는 의무감을 마음에 안고 있으면 지금 잘살고 있는 것이라 여겨도 되지 않을까. 

나이 듦에서 오는 여유와 포용력은 인간만이 갖는 숭고한 정신영역이고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기도 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는 방법은 다양하겠지만 마음의 여유는 자기가 지나온 세월 동안 쌓아놓는 무형의 자산이 이룩한 결과이고 열매이며 자기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증명해주는 결정적인 지표가 된다. 그 지표는 결코 표출되어 다른 사람의 눈에 띄는 것은 아니다. 자기 스스로 생활과 행동에서 자연스레 품어 나오는 아우라 같은 무형의 영역이며 나만이 갖는 마음속 저력이 된다. 

마음의 여유, 때때로 불어오는 시세의 바람을 타지 않고 내 본분을 지키는 줏대, 나를 나답게 만드는 기준이 된다. 이런 여유가 마음속에 있다면 정신적으로 평화를 즐길 수 있고 이 평화야말로 앞으로 올 삶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며 내가 어떻게 살았느냐를 증명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어찌 보면 삶에서 갖춰야 할 기본이나 더 나아가서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존엄한 존재가 될 수 있는 요소가 아닐까 생각한다.

한때 핏대를 올려가며 다툼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정말 하찮은 것이고 전연 그렇게 대응할 일이 아닌데, 그때를 지금 생각하면 나 스스로가 부끄러운 마음이 든다. 이런 경험에서 보면 내가 지금, 그리고 앞으로 하는 행동에서도 같은 후회가 오지 않으리라고 장담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이런 후회를 다시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내 마음속 기준을 다시 세우고 그 기준에 따라 나를 관리하는 심지를 터득해야 할 것 같다.

우리 삶에서 필수인 인간관계는 상대의 느낌이나 기준, 그것이 내가 가진 것과 상충 될 때 부딪치고 파열음이 나며 다툼까지 이르는 경우를 경험한다. 다름은 아주 자연스러운 것인데 그것을 나름대로 틀림으로 밀어 붙여버리면 충돌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다름을 틀림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화합할 수 있는 길, 이 길을 찾아가는 슬기가 필요함이 나이 듦의 조건이 된다.

늙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뇌 기능의 축소에 따라 사고가 경직되고 자신의 기준으로 남을 판단하는 외골수의 인간으로 변해가는 것을 주위에서 본다. 안타까운 일이나 생리적인 현상이니 그 추세를 막기는 어려우나 의지가 있을 때 자기관리를 통하여 샛길로 새는 의지의 흐름을 막을 수는 있지 않을까. 지금은 노각인생만사비(老覺人生萬事非)의 의미를 되뇌고 있다. 생사가 걸린 것 같이 생각했던 것도 지나놓고 보면 별거 아닌 것이 많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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