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95)
요즈음 내 이름이 조금씩 사라져가는 것을 허전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산다. 내가 나라고 알려주는 친숙했던 명함에 소속이 없어지니 자연히 이름이 혼자 외롭다. 어릴 때는 시시때때로 부모님이 불렀던 내 이름, 학교 다닐 때는 “나”라는 개인은 이름을 빼고 존재할 수 없었다. 모든 학교 기록에는 내 이름이 먼저이고 선생님도 얼굴보다는 내 이름을 먼저 떠올리고 이어지는 영상으로 내 얼굴을 기억하셨다. 군대는 어떤가, 일렬로 세우는 10자리에 가까운 숫자에 내 이름이 붙어야 내 존재가 있음을 확인된다. 계급과 이름 군번이 불릴 때, 초ㆍ중ㆍ고등학교 학급과 반 등 숫자는 많이 잊었지만, 군번은 지금도 내 머리 기억 안에 선명히 남아있다. 이어지는 사회생활은 어떤가. 내 이름이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직장 이름과 전화, 메일 주소가 있고 그 중간에 직함과 내 이름이 항상 따라다녔다. 직장 이름 없이 내 이름만 덜렁 있는 지금의 경우는 이름이 너무 쓸쓸해 보인다.
습관처럼 다녔던 직장을 은퇴하고 특별히 소속이 없어진 상황, 명함을 만들기가 거북하다. 별로 쓸 일은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가끔 만나는 사람에게 나를 알리는 가장 간단한 수단인데도 내미는 내 명함의 구성이 허전하다. 그래 이제 내 이름을 불릴 때가 너무 한정되어 있고 이름이 필요 없는 세월이 더 친숙해져 버렸다. 매일 얼굴을 대하는 아내는 내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없고 자식은 아버지로 손자, 손녀는 그냥 할아버지다. 하긴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옛날에는 웃어른의 이름을 부를 때 호와 함께 성과 각각의 이름 앞에 0자 0자라고 붙여야 높임의 뜻이고 예의 바르고 배움이 있는 사람이라 인정해 주었다. 지금은 어떤가. 이 나라의 최고 통치자도 스스럼없이 이름 석 자를 부르고 기분이 언짢은 경우 이름 뒤에 엉뚱한 존칭을 붙이기도 한다. 하긴 같은 민족이 사는 이북에서는 지도자에게 앞에 존칭이 서너 개가 앞서고 이름을 불어야 불경죄는 범하지 않으니 시대와 나라에 따라 이름 석 자를 대하는 우리의 생각은 계속 달라져 왔다. 지금 나타난 현상은 호칭이 변해온 과정을 그대로 나타내준다. 외국도 비슷하지 않을까. 앞에 남성, 여성 구분을 하고 이름을 넣으면 그냥 무난하다. 최고 권력자인 대통령도 Mr President도 불러 평민과의 차이를 없애버렸다.
오랫동안 그러려니 하고 지냈던, 나에게 주어진 직함이 있을 때는 그 이름이 한결 외롭지 않았다. 직함을 떼어버린 민머리의 생활이 익숙해질수록 이름으로의 내 존재보다는 벌거벗는 내가 돌아다닌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가는 길에서도 이름 석 자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그것이 마지막 가는 길에 더는 불리지 않음을 알리는 순간이라는 것을 서로 안다.
이름의 존재 가치가 자꾸 스멀스멀 옅어지고 있는 지금 상황은 내 정신세계에도 영향을 미치나 보다. 내가 있음의 의미를 증명하기가 어렵고 존재의 당위성이 자꾸 희미해진다. 있으나 있지 않은, 투명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삶이 아닐까 생각해보는데 가끔은 이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하고 나를 다그쳐 보기도 한다. 그래서 문득문득 떠오르는 생각을 어설픈 글로 나타내 보려고 안간힘을 쓰고 머리를 쥐어짜는데 내 속마음을 그대로 표현하고 나타내는 어휘의 부족함에 또 한 번 자신을 책망해 보는데 이를 이겨내고 지금 있는 그대로 나를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주어진 삶이 지금에 있고 나에게 생명을 부지하게 해준 절대자의 뜻이 있지 않겠는가. 내 명함에 소속과 직위는 없다 하더라도 무관의 제왕, 무엇이든지 내 마음 내키는 대로 생각할 수 있고 기분 나면 속박 없이 누구와 상의할 필요도 없이 훌쩍 떠나가 한가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자유. 이 얼마만의 특혜가 지금 나에게 주어졌다는 이 여유로움과 자유로움, 그 무엇에도 구속 받지 않고 내 의지대로 시간을 보내는 생활, 이런 혜택을 만끽하는 것으로 이름이 사라지는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탄생이 있었으니 순환의 자연법칙에 순응하여 소멸이 다가오지 않겠는가. 그 변화의 순서에 따라 지금, 이 순간이 왔고 지난 시간을 뒤돌아볼 여유도 없이 지금 이 순간 다가오는 다음 날을 맞고 있다. 지난 일을 회상하며 추억에 젖어본들 찍혀진 흑백사진은 변화가 있을 수 없고 지금 오늘이 와 있으니 딴생각을 멈추고 이 시간을 알뜰히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주어진 이 시간을 어찌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어떤 모습으로 마무리할 것인가를 마음속으로 되뇌어 보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내 마음대로, 내키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의지가 있으면 누군가가 인도해주는 행운을 맞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늦은 가을, 늦게까지 남아있는 색 바랜 참나무의 잎사귀같이 미련을 갖고 저를 낳아준 곳에 붙어있는 초라한 꼴을 보이지 말아야 할 터인데. 내 의지가 거기까지 미칠는지. 힘에 부치는 마지막 고개를 넘는 걸음을 내 의지대로 한발 한발 띄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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