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90)
꽃을 그렇게 좋아하셨던 어머니의 유전인자가 나에게 이어져 꽃을 옆에 놓고 산다. 겨울에도 고이 간직한 봉선화 씨를 화분에 심어 싹을 내고 정성스레 보살피면 밖에 눈이 펑펑 오는데 오묘한 모습의 봉선화 꽃이 핀다. 붉은색, 핑크색, 회색, 물론 씨를 받을 때 색깔을 표시해놓고 색깔대로 배분하여 화분에다 기른다. 참으로 마음 따뜻하고 나만의 즐거움에 심취하는 시간이다. 추운 밖에서 사무실로 들어오자마자 곧바로 봉선화에 인사하고 식물의 상태를 보살핀다. 겨울은 물주기를 이틀에 한 번이면 충분하다. 오래 교신하고 지내니 물이 필요한 시기를 가늠할 수 있다.
마침 사무실 건물의 경비원이 나와 취미가 비슷하다. 꽃과 나무를 나보다 더 좋아하는 모습이고 지식까지 갖췄다. 건물 앞 화단에 심어 놓은 철쭉, 영산홍을 전지해주고 멋없이 불쑥 자라버린 라일락의 곁가지를 가지런히 잘라 소담하게 가꿔놓는다. 지난해는 좀 이른 봄 옥잠화 모종을 수북이 가져와 앞 화단 빈 곳에 쭉 심어놓는다. 내가 좋아하는 향을 내는 꽃 옥잠화라니. 그 꽃으로 지난 늦여름에는 백옥 같은 흰색에 매혹적인 향을 즐길 수 있었다. 옥잠화는 나팔 모양의 꽃 모양도 좋지만, 향 또한 다른 꽃과 비교되지 않지만, 더 마음을 끄는 것은 시들 때의 모습이다. 슬며시 꽃봉오리를 접고 마지막을 알리면서 씨를 뒤에 남기고 뚝 떨어진다. 목련같이 화려하나 검은색으로 쪼그라들면서 지는 모습이 달갑지 않고 이 마지막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그러나 옥잠화는 봄에 삐죽이 나오는 새싹의 모습부터 꽃대가 올라오고 꽃을 피운 후 마지막까지 내 마음에 좋은 인상으로 남는다. 꽃이 지고 난 잎사귀는 얼마나 싱싱한가. 가을까지 그 모습을 가지고 가다가 추위에 견디지 못하고 시드는 모습을 볼 때 안타까우면서도 조용히 말을 건넨다. 겨울잠을 편안히 자고 내년 봄에 만나자고, 그 약속을 계속 지켜주는 것이 대견스럽다. 이렇게 옥잠화를 좋아하다 보니 여기저기 옮겨심기도 한다. 마침 사무실 화단에 다시 꽃을 심는 경비원에게 부탁하여 건실한 묘를 두 주 얻어서 내가 사는 아파트 좁은 화단 햇볕 잘 드는 곳을 골라 심었다. 묘가 아주 튼튼하니 물론 잘 활착할 것이라 믿고 정성을 다하여 꽃삽으로 파고 심었다. 물도 푹 주고 출근할 때나 퇴근할 때 인사하고 상태를 봐서 물도 주고 1주일 좀 지나서 제법 생기가 돌고 이어서 새싹을 삐죽이 내는 모습이 얼마나 대견한지.
작년에 심어놓았던 녀석은 아마도 겨울 추위를 이기지 못하고 생을 다한 것이라 여긴다. 올해는 그러지 않도록 덮게도 해줄 생각이다. 이렇게 내 관심의 대상이고 매일 살피는 즐거움을 어느 날 완전히 뺏기고 말았다. 퇴근길에 옥잠화 있는 자리에 눈길을 두니 아뿔싸, 빈 공터가 나를 맞는다. 어찌 된 일인가 밤사이 나보다 더 이 녀석을 사랑할 사람이 모셔간 모양이다. 뿌리를 채낸 흔적도 말끔히 뒤처리한 것을 보면 아마도 좀 여유롭게 모셔가지 않았나, 나대로 생각하고 있다. 이제 아침저녁 인사할 대상을 잃어버렸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내 옥잠화를 가져간 사람이 아무쪼록 잘 키워 그 가족에게도 사랑을 받기를 기대하는 마음으로 안타까움을 달래본다.
그래도 나에게는 사무실 앞 화단에 여러 포기의 옥잠화가 잘 자라고 있고 매일 다르게 싱싱한 초록색 잎을 새롭게 일어내고 있으니 아쉬움은 크게 없다. 꽃을 보면서도 나만의 즐거움을 위해서 꽃을 가꾸는 것은 이기심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집 안에 있는 화분의 꽃은 나와 내 가족이 가장 우선이지만 공용 정원이나 산이나 들에 피어있는 꽃들은 만인을 위한, 이 자연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 창조물이라는 것에 경외감을 금할 수가 없다.
계절을 가려가며 싹을 틔우고 싱싱한 줄기를 뻗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눈길을 끄는 꽃을 피워 조금은 어설픈 주위를 환하게 변화시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이 행성에 식물과 이들이 만들어 내는 오묘한 꽃들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한지 생각해본다. 숲속을 거닐고 넓은 초원에서 느끼는 그 가득하고 가늠하기 어려운 행복한 감정은 사람으로 태어난 축복을 다시 느끼는 순간이다. 오늘도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고 있을 떠난 옥잠화를 생각하며 소유의 감정에서 털어버리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싶다. 이 세상에 나만의 것은 없으니.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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