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88)
붕어빵 그리고 원추형 봉지 땅콩(지금은 없다)을 보면 내가 생각해도 먼 옛날, 1960년대로 휙 거슬러 올라간다. 모든 것이 어제 일인 듯 환히 보이는 것 같은 것도 있고 기억의 뒤안길에서 자취를 감춘 영상도 있으나 붕어빵은 지금일 같이 느껴진다. 기억이 희미한 것들은 비슷한 상황에 닿으면 문득 저 밑바닥에서 기어 올라오는 것들도 있는데 그 빈도는 그렇게 높지 않다. 그것마저도 접해지는 빈도가 낮아지고 있으니 언젠가는 모두 피안의 세계로 넘어가서 영원히 내 기억의 창고에서 빠져버리겠지. 그때가 언제인지는 아직 가늠되지는 않지만, 특히 붕어빵은 지금도 시장이나 골목길 구멍가게에서 가끔 팔고 있는데 세상이 변하여 대기업이 참여하여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니 식품의 묘미다.
시골에서 올라와 월세방에 얹어 살면서 서울 유학 생활을 했으니 어찌 등록금 외에 용돈이 여유 있게 주머니에 있었겠는가. 한창 젊을 때였으니 밥 한 그릇 먹고 돌아서면 언제 먹었냐고 내 배가 불만을 전하는 때이니. 그때 그 구수한 붕어빵 냄새는 어찌 군침을 참을 수 있겠는가. 큰맘 먹고 몇 환을 투자하며 먹었던 그 맛이라니. 가끔 리어카에 올려놓고 붉은 땅콩을 삼각추로 만든 봉지에 넣어 파는 곳을 지나갈 때도 맛을 떠나 허기를 채우기 위한 방편으로 그 한 봉지를 사서 아껴가며 먹었던 기억이 지금도 어제 일 같이 머리에 와 닿는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재정적 여유가 없는 학생 시절, 더욱 서울로 유학 온 처지에서는 궁핍이 일상화되었고 그것이 아주 정상이라는 생활이었다. 더 실감 나게 느낌을 전달하면 부족과 궁핍 자체를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런 둔감 때문에 어려움을 모르고 그냥 지나친 생활이 아니었나. 여긴다. 하긴 내 주위에 있는 친구들도 몇을 제외하고는 고만고만한 처지였고 지금 살고 있는 것에 불만이라기보다는 주어진 환경을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는 모습이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러나 구미를 당기는 군것질을 한참 젊은 시절에 어찌 그냥 억누른다고 제어가 될 것인가. 그래서 나이를 한참 먹은 지금도 붕어빵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옛 정취는 사라졌지만, 그 냄새를 아니 쫓아갈 수 없다. 아마도 내 기억의 가장 중요한 영역에 이들 기록을 저장해 놓았나 보다. 여기에 추위가 한창인 겨울, 군고구마 냄새라니. 물론 짚불로 구운 우리 고향집 군고구마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 냄새는 옛것을 되살리는 데 결코 부족함이 없다.
인간생존에 가장 중요한 음식에 관한, 어릴 때 기억이 나이 먹어서도 결코 변하지 않고 옛것을 그대로 살려내는 기적 같은 현상이 있나 보다. 어릴 때 먹었던 음식들은 어느 때라 하더라도 전혀 거부감 없이 나에게 다가오고, 그 맛을 반추해내니. 신비한 일이다. 근래 K-food로 해서 세계인을 열광시키는 현상도 한번 익숙해지면 잊지 못하고 그 음식을 찾는 마력을 발휘하는데 그 이유가 있다. 그래 어릴 때 기억은 아마도 무덤까지 간다는 것이 옳은 얘기인 모양이다. 이런 논리라면 우리 음식의 세계화도 성인보다는 젊은이, 더 좋은 것은 어린이들에게 접할 기회를 더 많이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특히 자극적인 맛의 원천인 매운맛과 발효에서 오는 오묘한 향과 맛은 우리 뇌에 자연스럽고 깊게 각인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이들 풍미에 한 번 젖으면 습관적으로 이 맛과 향을 찾게 되는 것이 우리 뇌의 구조라고 여겨진다.
내 머릿속도 내가 어릴 때 먹고 살았던 그 음식에 항상 끌리고 다시 찾게 되는 것을 느끼고 있다. 어머니가 해주셨던 묵은 김치찌개, 연한 호박을 썰어 넣은 오래 묵힌 된장찌개는 지금도 그 맛을 연상하면 군침이 돈다. 확실히 내 몸, 아니 내 유전인자에는 어느 한쪽 구석에 이들 기억의 보고가 있나 보다. 그래서 허기질 때 먹었던 붕어빵과 땅콩, 겨울 군고구마를 잊지 못하나 보다. 가끔 아내와 외출하다 붕어빵 냄새에 끌려 나도 모르게 가게에 들어서면 이상한 눈초리로 나를 보는 눈길을 느낀다. 그러나 어쩌랴 내 의지와는 다르게 본능적으로 발걸음이 그쪽으로 나를 잡아끌고 있으니, 이제 내가 충분히 설명했으니 그 심정은 이해할 것이나 그 깊은 내 본능의 경지까지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또한, 붕어 모양을 한 아이스크림을 집어 드는 것도 이 붕어빵이 연상되어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행동이라는 것이 내 솔직한 마음이다.
일요일 아내와 외식으로 중국집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나오는데 그 익숙한 붕어빵 냄새가 내 본능을 자극한다. 내 위 속의 용량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몇 마리를 사서 길거리 오면서 아주 맛있게 한 마리를 먹는 나를 좀 떨어진 내가 보고 있다. 무엇에 홀린 듯하다. 우리 고향과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마음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모두 내 곁을 떠났지만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이 그 옛날로 나를 순간 끌고 가는 염력, 그것이 있어 내가 지금도 살아있다는 사실을 실감 나게 느끼고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추억을 빼면 내가 존재할 것인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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