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89)
인도 옆 가로수로 심어놓은 느티나무, 우리 곁에서 쉽게 접할 수 있으나 나에게는 오랜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나무이다. 내 가슴 속 깊은 곳에 묻혀있는 고향을 떠오르게 만드는 당산나무이다.
이 지구에 사는 어느 생명체 하나라도 귀하고 신성하지 않은 게 있으랴. 하나하나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나름대로 특성과 고유함, 어디에서도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자신만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동식물은 물론 작은 벌레까지도 애착이 가는 이유다. 나이 먹음의 징표인가, 내 생각의 범위가 넓어졌다는 의미인가는 잘 모르겠으나 살아가면서 내 주위에 있는 사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근래 들어 부쩍 식물에 대한 관심과 이들의 변화에 민감해졌다는 것을 느낀다. 특히 봄이 조금 무르익어가는 시기, 느티나무를 보면서 이 나무에 깊은 애착을 갖게 된다. 느티나무는 시골 내 고향의 동네를 지켜주는 당산나무였고 절기마다 동네 사람들이 모여 인줄을 치고 동네의 안녕을 비는 제를 올리곤 했다. 그 당산나무는 수백 년은 족히 넘었을 것 같고 우리 동네가 자리를 잡은 때부터 앞을 내다본 우리 조상께서 묘목을 심었고 그 묘목이 지금 이렇게 우람한 거목으로 의젓한 모습을 하고 있지 않겠는가.
느티나무는 우선 그 수명이 수백 년을 넘어 천년을 몸에 담을 수 있으며 세월을 더 할수록 우람하고 의젓한 모습이 더 두드려진다. 또한, 다른 나무같이 인위적으로 모양을 만들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적당한 간격으로 가지를 뻗고, 다시 순을 내어서 아름다운 전체 모습을 갖춰간다. 봄이 오면 먼저 싹 트는 다른 나무를 앞세우고 조금 늦게 연둣빛 여린 잎사귀를 삐죽이 내민다. 그 연두색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정감 가는 색감인가. 진한 검은 갈색의 나무 둥지에서 고르게 위로 뻗은 가지의 끝에서 돋아 오르는 새순은 경이롭다는 말로밖에 표현할 수가 없다.
느티나무는 산속에서 고고하게 자라는 비자나무와는 차이가 있다. 침엽수로 겨울에도 푸른색을 띄우는 비자나무는 아마도 산속 고요한 곳이 어울리는 나무다. 한적한 내장산 골짜기에 눈이 쌓이면 흰 눈을 소복이 이고 있는 비자나무는 그 자체로 아름다움의 상징이고 고결한 품격이 돋보인다. 그 자태에 한동안 눈을 돌리지 못한다. 그러나 느티나무는 겨울의 눈과는 별로 친하지 않다. 초봄의 여린 잎이 서서히 진초록으로 변하고 커가는 나뭇잎이 촘촘히 들어서면, 나무 하나로 숲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여름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밑에서 올려다본 경험이 있다면 겹치지 않게 빽빽이 들어서 있는 나뭇가지에 촘촘히 공간을 채우고 있는 싱싱한 잎들이 어찌 숲을 이루고 있다고 여기지 않겠는가. 봄의 기운을 받고 이어서 여름의 정기를 담뿍 안은 느티나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예술작품이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여러 마을에는 몇 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어 정성스럽게 가꾸고 신령스러운 기운을 받으려 늘 마음으로 모셨다. 지금도 내가 컸던 동네의 아름드리 느티나무는 내 머릿속 깊은 곳에 거목으로 영상에 남아있다.
그 싱싱하고 생기 넘치는 잎사귀들이 가을을 알리기 시작하면서 다른 나무들과 같이 앞서거니 뒤따르듯 단풍이 들면, 단풍나무처럼 진하지도 않고 은행처럼 단순한 노란색이 아닌 진한 갈색의 느티나무 잎사귀는 말 그대로 색깔의 잔치를 벌인다. 크지 않은 잎의 색깔은 갈색이긴 하지만 엽맥에 따라 색깔이 다르고 잎사귀마다 색을 농도는 다르다. 전체에 번져있는 단풍 모습, 느티나무의 가을 단풍은 또 다른 감흥을 준다. 늦가을 소소한 바람이 휙 스치면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 휙 가슴이 서늘해 지면서 우수에 젖는다.
몇 아름이 넘는 느티나무를 양손 벌려 안아서 조용히 나무가 전하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도 또 다른 기쁨이다. 내 생각을 느티나무에 전하고 물어볼 것을 조용히 전달하면 무언의 감정을 나에게 전달해준다. 몇백 년을 살아온 그 연륜으로 나에게 지혜를 전해 준다고 여겨진다.
올봄도 어김없이 가로수로 심어놓은 느티나무는 싹을 틔우고 새로운 줄기를 뻗고 있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모습을 변해가면서 조금 지나면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 작디작은 꽃을 피우고 그 꽃에 어울리는 열매를 맺는다. 수없이 많은 열매를 뿌리고 그 열매가 다시 다음 세대를 이을 후손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느티나무는 벌레나 병에 강하고 나무 재질이 단단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지금은 인공소재로 대부분 교체되었지만, 장롱은 느티나무로 만든 것을 제일로 생각하였다. 단단함과 그 아름다운 무늬며 은은한 색택은 세월이 지날수록 그 자태가 더욱 고결스러워진다. 자게 농을 포함 가구는 느티나무로 만든 것을 최고로 쳤고 지금도 고급가구는 느티나무를 쓰고 있는 것으로 안다. 세월의 흔적인 나이테를 보면서 자연의 섭리를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느티나무는 자기 생명을 다하고도 남은 자취로 인간의 감정을 또 다른 세계로 끌고 가는 마력을 발휘하고 있다.
시간이 될 때마다 내 주위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느티나무를 안아보고 내면의 얘기를 나눠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젖는다. 지금 연둣빛으로 단장한 느티나무를 창 너머로 보면서 감상에 젖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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