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74)
비대면의 사회가 되면서 핸드폰의 위력은 더해지겠지만
사람과의 접촉, 교류는 점점 멀어질 테니
이런 현상 더 지속되면 어떤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려는지 걱정
휴대폰, 문명의 이기이며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하고 효율을 높인 매체라는 것에 이의를 달 생각은 없다. 나도 핸드폰이 없으면 일과를 제대로 할 수 없는 처지로 몰렸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건, 버스를 이용하건 승객의 80~90%는 핸드폰을 들고 열공을 하고 있다. 눈길을 잡고 있는 대상은 별로 차이가 없다. 이런 현상은 참으로 이상하게도 남녀노소 구분이 없다.
이렇게 온 국민이 장난감 같은 도구에 열중하는 경우가 있었는가. 나이 드신 분들은 그렇게 급한 일이 아니면 조금 점잖게 눈을 감고 지공대사라는 말에 걸맞게 사색의 흉내라도 내면 나이 먹음에 일말의 경외감이라도 느낄 터인데. 안경을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작은 화면에 몰입하는 것을 보면 애잔한 마음까지 든다. 이런 국민적 열풍에 힘입어 우리나라 IT나 전자제품이 세계를 향하여 1, 2위를 달리고는 있지만, 국민 정신 건강과 사고의 깊이는 과연 이런 외형적 발전에 비례하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확실한 것은 핸드폰의 화면을 통해서 현시적인, 눈으로 보고 느끼는 감정은 즐길 수 있으나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은 사고는 결코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우리는 속 깊은 생각을 할 때 보통 눈을 감는다. 명상할 때도 대부분 눈을 감으라고 한다. 이는 눈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여 빛과 함께 오는 영상을 차단하고 우리 뇌가 하는 사고의 영역으로 내 생각을 몰입시키는 한 과정이다. 시각으로 들어오는 영상이 강하게 계속되면 우리는 깊은 사고를 할 수 없다. 시각의 방해도 있지만, 청각 또한 깊은 사고를 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소음이 가득 찬 속에서 명상하지 않는다. 소음이 거의 없는 한적한 곳, 숲속이나 외딴 절 등 그리고 외적 요인에 의한 방해가 없는 신당은 우리가 선호하는 기도처요 명상할 수 있는 장소로 선택된다. 그만큼 보는 것과 들은 것은 우리의 생각을 한 곳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조용한 음악이나 독경을 통하여 마음의 안정을 찾고 깊은 사색으로 이끄는 매체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핸드폰의 경우 빛과 소리로 그 효과를 극대화하고 전달하려는 의도를 더욱 부각시키기 위하여 빛과 소리의 차별화를 꾀하고자 계속 노력하고 있다. 핸드폰은 이제 일상생활에서 뗄 수 없는 필수품이 되어 버렸고 이의 폐해를 아무리 강조해도 이 큰 흐름을 막을 수는 없는 단계에 이르러 버렸다. 길거리를 걸어가면서 눈은 핸드폰에 붙박여 있고 애인과 데이트하는 데도 핸드폰이 메신저 역할을 한다니 모든 우리 생활에서 중요사들이 핸드폰이 매체가 되었다는 생각을 지을 수가 없다. 심지어 점점 많아지는 혼밥의 모습을 보면 실로 기가 찰 광경을 본다. 밥그릇에 수저를 놓고 한쪽 손으로는 탁자에 있는 핸드폰을 보거나 움직여 화면을 찾고 있는 모습을 본다. 참으로 몰입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여겨진다.
길거리 다니면서 핸드폰에 집중하는 행인을 미리 봐서 내가 부딪치지 않도록 신경을 써야 한다. 잘못 충돌이라도 일어나면 넘어지는 것은 둘째고 떨어져 부러질 핸드폰 보상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될 것이기 때문이다. 일이 있어 지방에 여행을 하다 보면 옆자리에 앉은 사람이 앉자마자 핸드폰과 씨름하여 3시간이 넘게 여행하는 동안 한순간도 눈을 다른 데 돌리지 않는다. 심지어 휴게소에서 화장실을 가는 시간도 아까운가 보다. 그 끈기와 인내, 그 자체는 마음에 드나 과연 이렇게 온 정신을 쏟아 내 마음, 정신에 남은 것은 무엇인가 묻고 싶다. 자기 취미도 시대조류이기는 하지만 앞으로 국민 의식 수준이 어떻게 변할까 심히 두려운 생각이 든다.
아편이나 마리화나만이 마약이 아니다. 이들은 체내에 흡수가 되어야 혼돈의 정신상태가 된다. 그런데 핸드폰 중독은 눈을 통하여 뇌를 마비시키는 또 다른 경로를 거친다. 중독은 물질적인 중독과 함께 정신적인 부분이 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 더욱 조바심이 난다. 내 곁에 있어야 하고 벗으면 불안증세를 보이는 대상이 많아지고 있다. 핸드폰이 그 대상 제일 위에 놓일 것 같다. 이제는 내가 핸드폰을 쓰는 것이 아니라 핸드폰이 나를 조정해버리는 단계까지 발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사랑에 빠진 남녀가 상대를 만나지 못하고 보이지 않으면 불안증세를 보이는 것과 비슷하나 근본적인 차이는 한편은 사람으로 변화가 있을 수 있으나 기계와의 교류, 중독은 해결방법이 마땅히 없다는 것이다.
핸드폰에 빠지다 보면 사회적 교류도 월등히 떨어지고 다른 사람과 교류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단계까지 이르지 않을까 염려된다. 비대면의 사회가 되면서 핸드폰의 위력은 더해지겠지만 사람과의 접촉, 교류는 점점 멀어질 테니 이런 현상이 더 지속되면 어떤 새로운 사회가 형성되려는지 참으로 걱정이 된다. 인간은 태생적으로 같이 살면서 협동하고 힘을 합침으로써 결과를 극대화할 수 있고 행복도 기쁨도 사람 수에 비례하는 것을 겪어왔다. 지금의 세태는 인간사회가 아닌 삭막하고 살벌한 딴 세상이 오지 않을까 노파심이 인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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