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삶의 여정도 버스 여행과 비슷하지 않을까?
많은 것을 보고 즐기며 감상하는 여유를 갖고 싶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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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가지 일로 지방으로 여행을 하게 될 때가 많다. 이럴 때 내 차를 가지고 가거나, 대중교통인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한다. 자가용 승용차를 몰고 가는 것은 이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사양해야 할 나이가 되었다.

가장 편한 것이 기차인데, 이용에 어려움이 있다. 상당한 기간을 두고 예약하지 않으면 주말 가까이는 남은 좌석이 없고, 예약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계층은 미리 역에 가서 표를 구매하여 내 주머니에 있어야 안심이 된다. 이런 이유로 여러 교통수단 중에서 버스 이용을 선호하는 편이다. 기차는 예약의 어려움도 있으나 출발시각 전 적어도 20~30분 전에는 도착해야 안심하는 성격이라 시간 낭비가 심하다. 더욱이 내가 사는 지역에서 역까지 가는데 적어도 1시간은 걸리니 이 또한 괜스레 시간 낭비라는 생각이 든다. 

고속버스는 특별한 시기, 방학 중이나 그 지역에 특별 행사가 없는 한 내가 편리한 시간에 터미널에 도착하여 창구에서 표를 사면 된다. 가끔은 여유를 부려 차 한잔하려면 그다음 시간을 봐서 결정해도 된다. 이런 여유, 마음 조급하지 않음을 나는 즐긴다. 물론 기차 이용보다 버스는 시간이 더 걸리고 도로 혼잡도에 따라 도착시각을 예측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기는 하지만, 편안한 버스 의자에 앉으면 마음이 가라앉는다.

차 타기 전에 준비해온 온  신문을 들추면 국내는 물론 세계의 소식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에 띄는 기사를 읽다 보면 자동차의 움직임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것을 이 차를 운전하는 기사에게 맡기고 마음 놓고 내 일을 할 수 있으니. 가끔은 미루어 놓았던 읽고 싶었던 책을 꺼내 표시해 놓은 책갈피를 열어 지난번 읽었던 부분에서 더 나아가면서 저자와 무언의 교신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러다 조금 눈이 피곤하면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내 어머니 품 같은 자연에 눈을 맡긴다. 정말 아름답다. 울창한 숲이 스쳐 지나가는가 하면, 한참 자라는 논의 벼가 손을 흔든다. 갑자기 오래 전 내가 논에 들어가 김매는 순간이 떠오른다. 논에 있는 부드러운 흙의 촉감과 막 연하게 자라 있는 벼의 촉감, 그리고 잡초를 제거하는 손놀림이 어제 일같이 내 피부에 와 닿는다.

더욱 정다운 것은 논 가운데 한가롭게 큰 발로 성큼성큼 걷고 있는 해오라기가 보이면 아! 아직도 자연이 살아 있구나 하는 안도감이 든다. 더욱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차창에 조용히 비 뿌림을 관찰할 때이다. 빗방울이 창에 부딪혀 빗금 모양으로 스치는 모습, 여러 형태를 그린다. 그리고 그 창을 통하여 흐릿하게 보이는 비를 맞고 있는 숲, 그리고 옹기종이 모여 있는 작은 도시의 집들, 개라도 한 마리 뛰어다닌다면 더없이 좋은 경치가 펼쳐진다.

이런 감상과 내 할 일을 하다 보면 어느새 3시간, 예정된 시간보다 20분이 늦었지만, 별도 약속 시각이 없으니 크게 불만이 없이 도착한다. 이렇게 해서 여행이 끝난다. 물론 기차보다 시간이 더 걸리기는 하지만 30여 명의 단출한 동승자, 그리고 버스 기사의 친절한 육성 안내, 탑승할 때나 내릴 때 건네는 간단한 인사, 인간의 냄새가 난다. 기차 여행에서 느끼는 감정과는 다른 느낌을 버스 여행에서 받는다. 

사실 속도가 너무 빠르면 창밖의 경치를 즐기기가 쉽지 않다. 빠른 순간 스치는 광경을 어찌 감상할 수 있겠는가. 빠름의 장점, 인간의 끈질긴 바람이긴 하지만 그래도 조금의 여유를 갖고 내 주위에서 숨 쉬고 있는 자연과 조금 더 가까이, 좀 더 긴 시간을 함께해 보고 싶은 심정으로 고속버스를 이용하고 있다. 아마도 수십 년 이용했으니 더 이상 버스를 접하기 어려울 때가 되면 나를 싣고 날라 주었던 기사님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해야 할 터인데. 내 의지대로 되려는 지를 확신할 수가 없다.

며칠 내로 내가 좋아하는 버스 여행을 다시 해야겠다. 우리 삶의 여정도 버스 여행과 비슷하지 않을는지.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을 보고 즐기고 감상하는 여유를 갖고 싶다. 얼마의 시간을 나에게 허용할는지 모르지만. 여정의 중간에 갖는 15분의 휴식, 생리적 어려움도 해소하고 지역의 특산품을 사거나 구경하는 것도 버스 여행에서만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재미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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