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54) 

이 세상 어느 것도 모양과 특성이 꼭 같은 것은 없다. 이런 차별성은 생명체인 동식물은 물론이고 무생물에서도 비슷하다. 냇가 모래를 한줌 쥐어 한 알 한 알을 잘 관찰해보면 같은 모양의 알갱이를 하나라도 발견할 수 있는가. 없다.

하물며 최고의 인지능력을 갖춘 동물 중 최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인간이 어찌 꼭 같은 특성을 갖는 사례가 있다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천인천색(千人千色)이 딱 맞는 말이다. 그래서 다름은 특징을 만들고, 같지 않음은 개성의 근본이 된다. 그 다름은 다름으로 충분히 존중받아야 한다. 그런데 이 차별화된 다름을 자기의 우월성을 과시하는데 사용하는 것을 접하면 썩 유쾌하지 않다.

잠시 주어진 권력이 영원할 것처럼 거만을 떠는가 하면, 졸부(머릿속이 빈)가 재물이 영원히 자기 것인 양 으스대는 것을 보면 참으로 한심한 생각이 든다. 지금은 그렇지 않겠지만 30살도 안된 아들뻘인 검사를 “영감님”이라 부르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 들였던 시대도 있었다. 자기는 특별하다는 선민의식이 깔려있었다. 지금은 많이 바뀌었는지 모르나 그 바탕이 그대로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볼, 민주사회에서 고쳐야 할 폐습이다.

권력과 재산은 자기가 임시 보관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에 생각에 이르면 행동은 달라질 것이다. 더욱 공권력은 국가, 즉 국민이 일을 하라고 잠시 빌려준 도구에 불과하다. 공직자는 국가라고 하는 거대집단을 운영하가 위하여 용도에 맞게 빌려 쓰고 있는 손발이고 그 기한은 한정되어 있다. 공무원은 국가 권력이라고 하는 큰 사자 앞에 앉아있는 여우와 같다. 이솝 우화에 나오는 얘기다. 사자 앞에 앉아있는 여우에게 인사 하는 것은 사자가 뒤에 있기 때문이다. 사자가 자리를 비우고 나면 여우의 민낯이 나오고 간교한 재주만이 남아 자기 생명을 부지하기도 어렵게 될 것이다.

서로 다름은 그 다름을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정착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오랜 우리 생활슬기에서 나온 말, “직업에 귀천은 없다“. 왜 이런 말이 사회 통념으로 받아들여졌을까. 각자의 능력과 특성에 맞게, 하고 있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함으로써 이 사회에 꼭 필요한 일을 해 내고 그 역할이 빠지면 사회는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매일 살아가고 있는 환경에서 오직 내 힘으로만 나를 지탱하는 것이 얼마나 있을까? 지금 앉아있는 나는 과연 나만의 힘으로 생활을 하고 있는가. 결코 아니다. 오늘 직장까지 안전하게 실어다 준 전철과 버스기사, 일찍 출근하여 사무실을 덥혀 준 얼굴을 한 번도 대하지 못한 보일러 기사의 노고 덕이다. 길거리를 걷다 보면 깨끗하게 청소된 거리, 누가 이렇게 깔끔히 청소해 놓았는가. 저녁에 퇴근하다 보면 공중의식이 부족한 흡연자들의 소행, 꽁초가 길바닥에 널부러져있다. 그런데 아침 오다보면 깨끗이 치워져있다. 분명 새벽에 지저분한 거리를 치운 미화원의 애씀이다.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한동안 모든 국민을 불안하게 하는 의료계 파업사태를 보면서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 집단행동이다. 물론 그들이 요구하는 주장은 이해할 수 있으나 볼모의 대상이 어느 것에 비교되지 않는 존귀한 인간의 생명이라는 것에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욱 이해하기 쉽지 않은 처신은 이 사태 최고 책임자의 폭탄선언,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이 말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면 우리 집단은 정부 위에 존재한다는 나름의 특권의식, 잘못된 우월감이 작용하지 않고는 감히 대중매체에 쏟아낼 말은 아닌 것 같다.

정부는 한 나라의 국민들이 이 나라를 관리하기 위하여 해야 할 국가업무를 위탁한 최고 기관이다. 이 집단 위에 있는 집단은 어디에 뿌리를 둔 것인가.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우월감은 나만의 능력으로 이루어진 것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것이다.

같은 직업군에 속하는 원로의 얘기는 “마지막에 가서는 국민과 환자가 이겨야 한다”. 옳은 말이다. 의사 선생님은 선생님으로 존경받아야 한다. 그 존경에는 무한한 책임이 따른다. 누구나 현재 받고 있는 많은 혜택은 국가가 있고, 국민이 있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은 경중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어느것 하나 빼놓아도 좋은 것은 없다. 자동차를 굴러가려면 수만 개 부품이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이들 부품 하나 하나가 제대로 주어진 역할을 했을 때 자동차는 정상적으로 굴러간다.

더욱 인간이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존귀한 생명 그 자체로 최고로 존중받아야 하고, 배려해야 살 만한 세상이 된다. 내가 중하면 내가 대하고 있는 상대도 그 만큼 존중 받아야 할 대상이다. 자기의 다름이 우월하다는 오만한 생각을 바르게 잡으면 같이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이 된다. 그래야 자기도 존중받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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