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유일하고 독특하다
같은 것이 없는 이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귀한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귀함을 존중해주어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57) 

<br>

내가 생명을 받아 이 세계에 태어난 것은 우주의 섭리 결과이다. 내 의지와는 전연 상관없이 탄생하였지만 여러 굴곡을 지나 지금 존재한다는 것은 현실이다. 이 지구에 같이 사는 모든 다른 생명체도 똑같다. 이는 동물이나 식물을 통틀어 같은 개념이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동물과 식물 등 생명체의 특징은 후손을 이어 간다는 것이다. 즉 생명체는 자기와 같은 생명을 갖는 개체를 생산 가능하며 그 생명체에게 자기 유전자를 이어주는 영속성을 갖고 있다는 것이 공통점이다. 이런 기준이라면 번식능력이 있는 미생물도 분명 생명체임은 분명하나 단지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는 한계가 있다. 

미생물과는 다르게 동‧식물은 실체가 있어 감지할 수 있고 시력의 한계로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 그 모양과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다. 동물과 식물의 가장 큰 차이는 움직임과 의사전달의 능력일 것이다. 대부분 동물은 어떤 형태이건 움직일 수 있고 자기 의지에 따른 뜻을 상대에게 전달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또한, 인간으로 범위를 좁히면 말과 함께 문자를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원시시대에는 말은 있었겠으나 문자는 일반화되지 않았다고 본다. 지금 남아있는 암각화는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강한 의지를 감지할 수 있다. 인간의 지능은 말과 글을 통하여 자기 생각을 다른 대상에게 알리려는 본능을 마음속에 갖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동일한 모양의 것이 하나도 없다. 모든 대상은 자기 스스로 결코 똑같은 복제품을 만들어내지 않고 있다. 동물은 물론이지만, 식물에서 특징인 잎사귀와 그들의 꽃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결코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는 완전한 쌍둥이를 볼 수 없다. 봄의 전령사인 철 이른 꽃인 벚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을 몇 개 손바닥에 올려놓고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그렇게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지.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나 일란성 쌍둥이도 어머니는 정확히 구별한다. 무엇인가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생명체는 유일하고 독특하다. 이 지구상에 하나뿐인 이런 생명체의 존귀함을 존중해주고 예우해 주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런 생각은 동물이나 식물을 따로 구별할 수는 없다. 모두 오직 유일한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같은 것이 없는 이 세계에서 오직 하나뿐인 존귀한 생명체라는 것을 인정하면서 그 귀함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요즈음 영‧유아나 어린이 학대행위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심지어 극단적인 지경까지 이르게 한 것을 보면 인간이기를 포기한 인간말종이라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생명체 이전에 자기에 의해서 탄생한 생명체를 학대하고 생명까지 잃게 하는 것은 평범한 우리 인륜의 기준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조금 넓게 생각하면 자기가 애지중지 키워왔던 그 맑은 눈을 가지고 있는 애완견을 유기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거나 인간 기피증을 유발하게 하는 것을 보면 같은 인간임을 부끄럽게 여겨진다. 한 언론매체에 나온 한 개는 몇 년을 같은 자리에서 주인이 자기를 찾아오길 기다리는 모습이 보였다. 인간은 버렸지만, 그 개는 결코 주인을 버리지 않고 마음속에 담고 있으며 언젠가 자기를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어 한 자라를 지키는 모습이다. 다른 예로는 주인이 아파서 입원한 병원 인근에서 굶어가면서 병원 문을 뚫어지게 매일 바라보고 있는 그 모습에서 너무나 짠한 생각을 한다. 가슴 안 어디에 숨겨져 있는 안쓰러움과 슬픔이 나도 몰래 솟아오른다.

우리가 평소 개보다도 지능이 떨어진다는 소나 돼지 등도 자기 의지가 있고 생각이 뚜렷하다는 것을 새끼 돌봄에서 보고 있다. 새끼와의 이별을 아프게 느끼고 주인을 따르는 모습이 어찌 인간과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한 생명을 같이 타고 난 이 지구의 우리 이웃, 동료, 생명체는 모두가 나와 함께해야 하는 생명체다. 불교의 윤회 사상의 기본은 내가 이생을 마감하고 내 업보에 의해서 다시 태어날 때 인간이나 동물로 환생한다는 교리다. 우리 부모가 쌓은 몇 겁의 인연으로 내가 사람으로 태어났고 돌아가신 부모님이 내 눈에 보이는 소나 염소로 태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증도 없다. 그래서 불가에서는 육식을 철저히 금하고 생명체를 존중하는 교리를 받아들이고 있는 모양이다.

근래 동물생명권을 존중하여 육식을 피하고 식물성으로 바꾸려는 노력이 진행되고 있다. 건강상 이유도 있지만 같은 생명체가 가진 생명을 빼앗아 그 고기를 먹고 있다는 것에 대한 죄의식의 발로라고 여겨진다. 과학기술이 더 발전하여 육류를 대신할 수 있는 대체식이 일반화되기를 기대해본다. 이는 생명존중과 건강을 모두 생각하는 가장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어릴 때 놀이로 내가 생명을 빼앗았던 개구리나 뱀, 그리고 여러 곤충도 지금의 생각으로 용서를 빌어보지만, 어찌나, 그 생명체가 다시 살아올 수 있겠는가. 지금이라도 나와 더불어 살고 있는 생명체들, 동물이나 식물에 대하여 경외감과 유일성을 인정해주면서 이들 생명과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다.
 
모든 생명체에 대한 폭력을 내려놓고 살아있는 어떤 대상도 해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나무 한 가지도 의미 없이 꺾기가 조심스럽다. 이제 나도 나이 들어가나 보다. 철이 들어가면서 조금 더 마음의 폭을 넓게 가져 모든 생명체를 경외의 마음으로 품어보련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저작권자 © 식품저널 foodnews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