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55) 

우리 일상에서 서로 간 의견이 다를 때 보통 삼세판에 결정하자고 한다. 왜 3번일까. 그 외에도 세 번이라는 개념은 우리 생활에서 많이 접한다. 3과 같은 아라비아 숫자를 발명한 것은 인도인이었고, 이후 0에서 9까지가 사용되었다. 숫자가 발명되어 사용되지 않았다면 우리 인간의 물질, 문명이 지금같이 발전했을까. 어림도 없는 얘기다. 수학의 기본이고 금융은 숫자가 없으면 생명을 잃는다. 과학기술은 숫자 없이 존재할 수 있을까. 

이들 숫자 중에서 ‘3’은 우리의 정서에, 아니 세계인에게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때가 많다. 술자리에서 늦게 온 친구에게 술을 권하면서 후래삼배(後來三杯)는 일상 쓰는 말. 왜 석 잔을 먹어야 할까. 빨리 취해서 일행과 같은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이 아닐까. 시조(時調)의 경우 보통 3행시가 정착되어 있다. 세 절로 되어 있다. 왜 4행시는 환영받지 못할까. 좋은 보약은 재탕, 삼탕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렇게 해야 진액을 모두 뽑아 먹을 수 있다는 경험의 산물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천·지·인(天·地·人)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셋이 결국 지구와 우주를 구성한다는 얘기이다. 주역의 괘는 효(爻-막대 형태)가 3개다. 주역을 바탕으로 점을 칠 때 3개의 효가 기본이 된다. 남녀의 성기를 닮았다고 하는 효는 음양의 이론이 스며들었지만, 효는 3개가 되어야 하고 이 조합이 4괘(乾, 坤, 坎, 離-태극기의 4괘 모습), 다시 조합하여 8괘, 더 나아가면 64괘가 된다. 이들의 기본은 3개의 효다. 왜 3개일까. 불교에서의 불신관은 법신, 보신, 응신 또는 화신이라고 하며 기본 개념을 불어넣고 있다. 예수교에서도 예수, 성령, 하느님으로 나눠 숭배의 대상을 구분하고 있다. 왜 3으로 구분했을까. 

우리 역사는 어떤가. 우리 조상은 한인, 환웅, 단군 세분으로 이어지면서 9천년 역사의 우리 배달민족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세분이 없었다면 한민족은 존재하지 않았겠지. 절에 가서 눈여겨보신 분은 알아차리겠지만 대웅전이나 불당 제일 위쪽 꼭대기에 도교에 기초를 둔 삼성각을 모시고 있다. 신선과 호랑이가 가장 눈에 띄고, 수명을 담당하는 칠성, 재물을 관장하는 산신, 복을 내리는 독성을 모셔 놓았다. 왜 삼성만을 모셨을까.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왜 3분야로 나눠 놓은 것인가.
 
우리 대화에서도 3은 중요하다. 대화하는 주체인 나와 말을 듣는 대상이 있어야 하고, 그 매체로 말이나 글이 필요하다. 여기도 3가지 요소가 구비되어야 대화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생활에서 처음과 중간 그리고 끝이라고 구분한다. 글을 쓸 때도 서문(서론), 본론, 결론으로 구분하여 정리한다. 이 세 가지 구분은 우연에서 온 것일까. 무슨 뜻이 있는 것일까. 하나는 너무 외롭고 둘은 심심하고 그래서 하나를 더한 3을 선택했다고 하면 그저 꿰어 맞추기식 논리라 여겨진다. 

예부터 인간의 도리를 얘기할 때 군사부일체(君師父一體)라는 말을 자주 본다. 왜 어머니는 없고 아버지만 있나.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가 된다. 영어를 쓰는 나라에도 ‘3’을 좋아하나 보다. Third time's a chance. 세 번째 시도는 행운을 가져온다는 얘기다. 그래서 나라마다 좋아하는 숫자가 있는가 하면 아주 싫어하여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한국인에게 좋아하는 숫자는 3과 7. 그러나 4는 많이 싫어한다. 죽음을 의미하는 한자와 음이 같기 때문이다. 심지어 엘리베이터에도 4층이 없는 경우가 있고 아파트는 아예 4동을 빼 버리고 1~3, 5동으로 이어지는 경우를 보고 있다. 
 
기하학에서 한 형태를 이루는 기본은 삼각형이다. 직선이 3개가 모여야 드디어 공간이 만들어진다. 이 삼각형이 진화되어 4각, 5각, 6각형으로 번져간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현생(미생)이라고 하고, 태어나기 전을 전생, 죽은 후를 내생이라 하여 3분야로 구분하고 있다. 이 구분에서 더 끼어들 여지는 없어 보인다. 즉 3생이 우리 생명체의 전부라는 뜻이다. 이 3생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 어릴 때 놀이 중 가위, 바위, 보는 3가지 다른 형태다. 서로 물고 물리는 절대 승자가 없는 관계이며, 승부를 가리는 데 아주 유용하다.
 
왜 3가지 형태만을 만들었을까. 지금까지 ‘3’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제시하였는데 행운의 숫자가 아닐까 한다. 7은 영어의 영향을 받았으나 ‘3’은 순수한 우리의 일상 개념에서 우러나온 개념으로 지금도 ‘3’에 대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통념을 같이 가지고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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