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쌓아놓은 그 깊은 음덕이 아들인 나에게 미치고 있고
지금도 그 보이지 않은 에너지가 내 뒷배를 담당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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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에 대해 애틋하고 가슴 저린 사랑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찍 어머니를 여의거나 불행한 사정으로 어머니의 사랑을 받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고 일생 어찌 어머니를 머리에서 잊을 수 있겠는가. 살아생전에는 당연한 관심과 사랑이려니 여기고 그냥 평상의 생각으로 살다가 어느 날 어머니가 곁에 계시지 않았을 때 가슴 저리는 그 허망함과 상실감, 허허한 그 감정을 어디에 비유할까.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나의 지원군을 잃었고 항상 편안히 쉴 수 있는 마음의 안식처를 상실하였으니. 그와 함께 어머니가 계셔서 고향이었던 그 따뜻함이 차가워짐을 아쉽게 느낀다. 

돌아가신 후 깊은 아쉬운 생각으로 같이 모셨던 그때의 깊은 정을 아프게 느끼는 나이로 들어섰나 보다. 하긴 90세를 넘겨 임종 앞두고도 어머니를 부르는 경우가 있다니 어머니와의 끈끈한 정을 내색하지 않지만,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가 가장 어려울 때 불쑥 나타나는가 보다. 내가 외롭고 쓸쓸함을 느낄 때 따뜻한 마음 밑에서 올라오는 훈풍은 어머니 입김임을 이제는 알고 있다. 그럴 때는 따뜻한 손을 잡을 수 없는 아쉬움에 울컥 마음이 일렁인다.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우리 형제자매가 살던 집인 초가집이 연상되고 반질거린 마루와 집 앞 흙 마당, 항상 뛰고 놀았던 기억이 되살아나며 그때로 휙 되돌아가고 만다.

지금 생각하니 특히 어머니의 손님 접대는 남달랐다. 물론 할아버지, 아버지의 손님들도 가끔 있었지만, 특히 걸인들에 대한 접대는 깍듯하였다.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라 밥을 얻어먹어야 하는 분들이 크게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보통 아침, 점심때쯤 하여 하루에도 몇 명씩이 찾아오곤 하였다. 그런 분들을 위하여 어머니는 그 바쁜 일과에서도 정성을 다하며 그분들을 대접하였다. 그냥 밥 한 사발을 말아주는 것이 아니라 개다리 밥상(작은 일인용 밥상)에 밥 한 그릇, 국 그리고 반찬 한두 개, 정갈스럽게 준비한 숟가락과 젓가락을 오른쪽에 준비하여 대접하였다. 밥상을 받는 분들도 처음 대하는 듯 어리둥절하다 곧 감사의 마음을 안고 기쁜 마음으로 한 상을 받아 즐기는 모습을 봐왔다.

어찌 어머니는 그들을 그렇게 깍듯이 대하셨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 바탕에 이 세상에 태어난 모두는 서로 다름이 없다는 깊은 뜻을 터득하진 마음에서 그렇게 하셨으리라 믿는다. 특별한 종교는 없었지만 찾아오는 스님에게도 항상 쌀과 다른 곡식으로 시주하셨고 초파일에는 가까운 절에 가셔서 자손의 안녕을 빌고 오셨다. 

생의 후반기에는 동네 가까운 교회 목사님의 권유로 주일마다 예배에 참여하셨고 돋보기를 쓰시고 성경을 열심히 봉독하셨다. 자식 된 입장에서 어머니의 종교가 무엇이든 어머니가 편한 마음을 갖게 되면 그 어떤 것을 더 바랄 수 있겠는가. 기력이 쇠해지셨을 때도 설이나 추석에는 동네에 어려운 분들에게 쌀, 보리 등 곡식을 조금씩 나눠주고 떡을 하거나 별식이 생기면 동네 연로하신 어른들에게 보내드리는 정성을 쏟으셨다. 이미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나눔의 기쁨이 자리 잡고 있었다고 여겨진다.

이 세상에서 내가 가진 것을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기쁨만큼 아름다운 정경이 또 있을까, 꼭 쥐고 내 것만을 챙기다가 생을 마감할 때 하나도 가지고 가지 못할 것을 내가 가지고 있을 때 서로 나눔은 얼마만 한 기쁨이랴. 어머님이 걸인들에게 최소한의 예를 갖춰 밥상을 챙겨줌도 마음속에서 진솔하게 우러나는 나눔의 생각, 그리고 배고픔을 달래주어야 한다는 순수한 사람으로서의 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순수한 본능에서 우러나는 맑고 아름다운 인정의 발로다.

그간 어머니가 쌓아놓으신 음덕으로 어머니가 그렇게도 아끼고 사랑했던 아들, 딸들이 모두 한 가정을 이루고 다시 그 자식들이 자식을 낳아 종손들까지 합하면 40명이 넘게 번성하였으니 인구가 줄어들어 고민하는 이 나라에 크게 이바지하였다고 여겨진다. 

나는 아직도 운명이나 사주팔자를 그렇게 신뢰하지는 않는다. 내가 하는 행동과 마음, 그리고 내 노력으로 내일이 오고, 새로 맞는 미래는 다시 그 결과로 다음을 기약한다고 믿어 살아왔다. 그러나 이 나이 먹고 지나온 내 과거 생활과 지나온 궤적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외줄 타기의 생을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있다. 어찌 그때, 그 시간에 내가 그 자리에 있었고 주어진 좋은 기회를 잡았을까 하는 생각에 머물면 아! 나를 보살펴주는 큰 힘이 내 등 뒤에 계셨구나 하는 생각을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렇다. 어머니가 쌓아놓은 그 깊은 음덕이 아들인 나에게 미치고 있고 지금도 그 보이지 않은 에너지가 내 뒷배를 담당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종교적인 믿음을 떠나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나를 감싸고 있는 아우라 같은 것을 느끼고 스스로 인식하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어머니를 넘어 이 세상에 같이 사는 모두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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