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람, 한나라, 한민족의 말은 서로 닮을 수밖에 
이런 감정이 서로 통해야 동질성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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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을 가만히 듣다 보면 정다움을 넘어 오묘하면서도 감칠맛이 뒤따라온다. 마음이 스스로 가까이 다가가는 감정이 인다. 내 의사를 전달할 말이 없다면 인류는 지금같이 발전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내 생각을 정확하고 확실하게 전달하고 그 결과로 행동을 같이하는 수단, 말이 품고 있는 마력이다. 정다운 우리말들을 모아본다.
 
한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것은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말 만큼 확실한 것은 없다. 다른 나라 말은 물론이지만 작은 땅덩어리 이 한반도에서도 지역에 따라 말의 억양이나 음색이 다르다. 그 다름으로 고향사람을 즉각 알아보고 반가운 마음이 든다. 물론 외국도 마찬가지다. 우리말은 한문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한문으로 결코 나타낼 수 없는 순수한 우리말들이 무수히 많다. 한문에 기초를 둔 말은 뜻으로 통하나 순수한 우리말은 뜻보다는 소리에 기반을 둔 정을 바탕에 두고 의사를 전달하는 독특한 언어가 아닌가 생각한다. 내가 무심히 사용하면서도 가끔 그 감정을 되뇌어 보면 어찌 그렇게 정감이 가득한가. 알차고 그득하다. 그 가득차고 속이 꽉 차 있다는 것을 감정으로 느끼면서도 비운다는 뜻은 안의 것을 내어놓는 행동의 표현이다.
 
섣달 그믐날이란 말에 지나온 한 해가 저무는 아쉬움이 문득 일고 새해를 맞는 설렘이 같이 마음에 인다. 문득 알알이 박혀 있는 석류의 알맹이가 떠오르면 영롱하게 빛나는 붉은 색을 생각한다. 알알이라는 말에서 그 모습이 훤히 떠오른다. 그리고 아름다운 영상을 그린다. 그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영상으로 저 마음 밑에 그 모습이 떠오른다. 막 피어오르는 장미의 꽃봉오리, 그 자태가 바로 머리에 떠오르지 않는가. 
 
비취색 치마를 곱게 차려입은 처녀가 사뿐사뿐 꽃 신발을 신고 가볍게 걷는 모습을 말하면 선하게 그 모습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하늘거리는 치맛자락의 소리 없는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서 나만의 마음속 고요를 느낀다. 소리가 숨을 죽인 상태, 고요는 마음의 상태이긴 하지만 주위를 일컫기도 한다. 고요한 숲속, 그 속에서 나를 발견할 때 온 우주와 교신하는 순간을 느낀다. 

색깔에 이르러서는 파란 하늘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깊고 깊은 맑은 가을 하늘의 색깔은 파랗다고 하지 않고 어찌 표현할 수가 있겠는가. 그 맑고 파아람을 가슴에 담아 나까지 깨끗해지고 싶다. 가끔은 내가 가지고 있는 나만 간직한 깊은 정을 누구에겐가 나눠주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나눔, 따뜻한 마음이 일고 아무런 잇속을 챙기지 않고 순수하고 맑은 마음으로 상대에게 주는 행위, 나눔이 갖는 뜻이다. 빨래는 달리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마른빨래, 마르다는 자연이 마음속에 그 뜻이 전달된다. 그 반대의 뜻은 ‘젖다’이다. 젖었다. 물기를 많이 먹은 상태이며 ‘마르다‘와는 반대의 뜻이나 젖음은 또 다른 의미를 불러일으킨다. 눈물로 젖은 눈, 측은한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젖었다는 뜻에도 너무나 많은 다른 생각을 떠오르게 한다. 

덜컥 겁이 났다. 덜컥은 예측하지 못한 상황이 갑자기 닥친 것, 어떻게 그 뜻을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탈이 났다. 그게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고 사고를 연상시킨다. 자고 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웬걸, 더 심해지고 있네. 전체가 순수한 우리말로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다. 으뜸가네. 무리 중에서 정상을 의미하는데 최고(最高)로 표현하기도 하나 두말을 조용히 마음속에 놰보면 수용과 배타의 감정이 뒤따른다는 것을 느낀다. 으뜸, 같이하며 높여주는 뜻이나 최고는 밀쳐내고 내가 홀로 선 모습이 아닌가?
 
외국, 현지에서 수십 년 생활하여 토종화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그 나라 말의 깊은 감정을 느끼는데 어려움을 토로한다. 출생 후 처음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받은 그 말소리로 느끼는 그 독특한 감정을 어찌 후천적으로 흉내 낼 수 있겠는가. 언어와 그 말이 품고 있는 뜻과 감정은 어머니에게서 받지 않으면 결코 흉내 낼 수 없다. 비슷하게 소리를 낸다 하더라도 그 진정한 감정을 받아 이해하고 표현하기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형제자매들의 목소리는 닮았다고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같은 어머니에게서 말을 처음 배웠으니 닮을 수밖에. 조금 더 나아가면 고향사람, 한나라, 한민족의 말은 서로 닮을 수밖에 없다. 이런 감정이 서로 통해야 동질성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그래서 동포는 애착이 간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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