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는 시작과 마무리가 있다는 자연의 순리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자연의 선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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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와 가을비, 가만히 마음속으로 뇌여 보면 감정이 확실히 다른 것을 느낀다. 한쪽은 생기가 돋으면서 힘이 치솟는 느낌이 들지만, 다른 쪽은 스산하면서도 움츠려 하는 감정이 인다. 그렇다 두 계절의 비가 여름의 소낙비와는 다르게 실비이거나 가랑비 혹은 부슬비라고 표현하는 여린 비다. 봄비, 잠자던 만물을 일으켜 깨우면서 잠자고 있는 나무를 고루 부드럽게 쓰다듬어 생명을 불어 넣어주는 역할을 한다. 땅속에서 쉬고 있는 씨앗들을 흔들어 깨우고 생명의 입김을 불어 넣는다. 봄비를 맞으면 이때를 기다리고 있었던 버드나무 가는 줄기는 겨우내 감춰놓았던 초록의 자기 본래 색을 다시 내보이며 작년에 마련해 놓았던 눈을 일깨워 먼저 꽃을 피울 준비를 한다. 개나리는 어떤가. 봄비와 입맞춤하다 보면 작년에 간직한 그 감정이 되살아나 누구보다 먼저 꽃대를 아니 밀 수가 없다.

봄비는 항상 춘풍과 함께 온다. 아침과 저녁의 감촉이 다른 바람, 그 차이를 느끼게 한다. 온 세상 생물이 다시 기지개 켜서 삶의 훈풍이 돌게 한다. 매일매일 달라지는 대지의 풍경은 봄비의 역할이 아니면 그 변하는 광경을 설명할 길이 없다. 짙푸른 녹음이 있기 전에 전주곡으로 대지를 향하여 연둣빛 교향곡을 불러대는 역할을 봄비가 독특히 한다. 봄비는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마력을 갖고 있다. 깊은 잠에 취해 있었던 대지와 그 대지가 품어 안고 있는 생명체에 생동감을 불어 넣어 깨어나게 하는 힘, 대자연의 흐름이면서도 봄비가 안고 있는 무한의 저력이다.

봄비는 보리밭과 뗄 수 없는 깊은 인연을 맺고 있다. 겨우 내 웅크리고 있었던 보리잎이 드디어 생기를 찾고 겨울의 묵은 때를 털어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봄비가 와야 봄이 온다는 것을 대자연이 알아차리고 곧 펼쳐질 자연의 무한한 변신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생명이 많다. 봄비는 생명을 불러와서 싹 틔우는 촉매제이면서 살아있는 생명체의 희망이자 전령사이다. 가느다란, 부드러운 빗줄기는 결코 세차지는 않지만, 어느 것보다 강한 힘으로 자연을 깨우는 무한의 힘을 갖고 있다.

봄비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없지만, 소리 없는 가슴의 울림으로서 계절이 사각사각 다가오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다. 어찌 보면 봄비는 겨울을 견딘 기다림이 새신랑을 맞는 신부가 갖는 기쁨과 설렘의 마음 표현이다. 이런 마음을 알리려 많은 시인이 봄비를 그렇게도 애절하게 노래했는지 모른다. 아마 대표적 작품 신중현 씨가 작곡한 노래 봄비는 우리 가슴에 촉촉히 봄비를 내리게 한다. “~ 나를 울려주는 봄비, 언제까지 내리려나/마음마저 울려주네.” 얼핏 슬픔을 안고 있으나 그것만이 아닌 내일을 기약하는 노랫말로 이해가 된다.

봄비는 애틋한 사랑을 말하는 뜻이 있지만 마음속 정다움의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가늘게 조용히 내리는 봄비는 있으라고 이슬비라고도, 가는 것을 독촉하는 가랑비로도 우리 뜻을 전달하기도 한다. 숨죽이고 소리 없이 조용히 내리는 봄비는 결코 홍수 져서 피해를 주는 여름비와는 다르다. 조금씩 서서히 내려 땅을 적당히 적시고 땅에 품은 생명체를 깨우는가 하면, 겨우내 움츠렸던 마른 나무를 부드럽게 어루만져 새싹을 돋게 하는 어머니 같은 부드러운 손길이다. 그래서 봄은 봄비와 가장 잘 어울리고 감사하는 마음이 일게 한다.

봄비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가을비는 또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매체가 된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24절기 중 입춘은 기이하게도 봄의 따뜻한 기온이 돌 때가 아니고 겨울 추위의 끝자락에 있고 입추도 한더위를 같이하는 끝자락에 같이 온다. 기와 맞지 않는 그 전의 계절 끝부분에 있다. 그래 계절 변화에 둔감하나, 곧 올 계절의 변화를 미리미리 알려주어 준비하라는 귀띔이런가 보다. 입추가 지난 날씨는 그 말에 어울리게 서서히 날씨의 변화를 느낀다. 남은 무더위 속에서도 선뜻한 기운을 끝에 달고 온다. 그리고 가을이 오고 있음을 조용히 느낀다. 그 알림의 가을비가 소리 없이 내린다. 그리고 미처 알아차리지도 못하게 여름의 뜨거움을 서서히 물러가게 한다.

가을비는 여름의 산물로 한창인 농작물을 마무리하라고 독촉한다. 그래야 알찬 결실을 기대할 수 있다고 알려준다. 가을비는 생명의 멈춤, 마무리를 독촉한다. 한여름 무더위를 잊게 하면서 다음 계절이 오고 있음을 조용히 알려주는 매체이다. 봄비가 희망을 안고 온다면 가을비는 마무리하라는 독촉의 메시지를 전한다. 지난밤 촉촉이 내린 가을비는 해맑은 아침 해를 선사하긴 했지만, 그 비를 맞은 나뭇잎은 갖고 있는 색깔을 뒤로하고 작년에 입었던 옷으로 갈아입을 준비를 한다. 변색의 마술을 부리는 것도 가을비이다. 그리고 삶의 생기를 마감하고 또 다른, 아니 생명의 쉼을 준비한다. 삶의 시작 아닌 마무리로 인도한다. 

대지에 싸늘한 기운을 불러일으키면서 스산함과 쓸쓸함으로 움츠리게 하는 매체가 가을비다. 이 비를 맞으면서 뒤따라오는 겨울을 미리 준비한다. 생명의 탄생보다 마무리를 도와주는 역할을 하려 보낸 자연의 전달자이다. 가을비는 하루 다르게 찬바람을 몰고 오지만 시작이 있으면 마무리가 있다는 자연의 순리를 감각으로 느끼게 하는 자연의 선물이다. 가을비가 있어 알찬 수확을 기대할 수 있으며 겨울을 대비한 채비를 할 수 있다. 자연의 순환으로 우리 삶은 지루하지 않고 생명력 넘치는 생활을 할 수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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