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먹음은 육체적으로 늙어 감은 사실이나
조금씩 익어가면서 주위에 좋은 향 선사하는 시기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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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생을 여러 기준으로 나눌 수 있겠지만, 남의 도움 없으면 생을 이어갈 수 없는 시기와 내 능력으로 내 뜻대로 살 수 있는 기간으로 나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동물도 비슷하나 사람과는 다르게 태어나서 몇 시간이면 걸을 수 있고 스스로 어미의 젖을 찾아 먹이를 먹을 수 있으며 긴 시간이 아닌 짧은 시간에 뛰어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태어날 때부터 움직여야만 살 수 있는 동물들의 생존을 위한 본능이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 다른 동물에 비하여 비교적 긴 기간 어머니 배 속에 있다가 태어나서도 자기 스스로는 아무것도 못 한다. 겨우 몇 달 정도가 지나야 누워있는 상태에서 엎드리는 동작을 할 수 있고, 빨라야 돌 때쯤 아장아장 걸어서 자기 돌 떡을 돌린다고 한다. 그래 이 기간, 아니 초등학교를 포함한 이 어린 시절 부모와 온 가족 그리고 주위의 여러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고 제가 맡은 역할을 감당할 수 있는 성인이 된다.

보살핌을 받는 기간에는 생존에 필요한 밥을 먹는 일부터 옷을 챙기는 것, 학교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 어느 것 하나 자기 스스로 만족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어른들이 버르장머리 없이 행동하는 녀석에게 제 놈이 모든 것을 자기 스스로 큰 것처럼 까분다고 야단을 치는 것은 여러 사람의 보살핌을 잊은 듯한 것을 일컬음이요 어릴 때를 모르고 행동한다고 핀잔을 주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아마도 겨우 성인이 될 나이, 20세 넘어야 완전하지는 않지만 제 의지로 제 앞가림을 하게 된다. 공자께서도 이 나이가 되어야 지학(志學)이라고 하여 학문에 눈뜨고 30이 되어야 이립(而立)이라 하여 정신적으로 저 스스로 뜻을 세울 수 있다고 보았나 보다. 
이 준비 기간을 지나야 자기 스스로 자기 일을 해내면서 드디어 남을 보살필 수 있는 여유가 시작된다. 이때를 이립(而立)이라고 구분하여 주위의 많은 사람과 같이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여러 역할을 하고 산다. 아마도 이때가 전체 삶 중에서 가장 보람되고 또 자기가 있는 의미를 가슴 뿌듯이 느끼는 때이기도 하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전체 자기 일생의 모습이 달라지는 중요한 기간이다. 전체 주어진 삶의 기간으로 봐서도 가장 긴 시간이고 체력이나 정신적으로도 활발하고 혈기가 넘치며 자기 의지대로 생활할 수 있는 황금기이다. 그러다 60 고개를 넘기기 시작하면 해마다 체력이 달라지고, 70을 넘기면 달마다, 80을 지나면 매일 육체 상태가 달라진다는 얘기를 듣는다. 모든 생명체와 꼭 같이 성(盛)하면 이어서 쇠(衰)하는 과정을 거치는 천리(天理)를 어느 누군들 피해갈 수 있으리오. 이런 의미에서 기간이 길고 짧은 차이는 있지만, 모두에게 실로 공평하게 주어지는 과정, 너무나 당연한 것에 다른 이의가 없을 것 같다.

여러 사람에게 보살핌을 받다가 성인이 되어 주위나 사회에 보살핌을 되돌려주는 시기를 지나 노쇠한 육체를 감당하기 어려워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가 오면 태양이 아침을 맞고 중천을 지나 석양의 자리로 옮기듯, 결국 주위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보살핌을 받지 않으면 생활하기가 어렵게 된다. 석양이 아름답다고 하나 우리 인생에서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는 석양의 아름다움과는 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석양은 내일 다시 떠오르는 아침을 맞을 기약이 있지만, 우리 인생은 한 번 기울어지면 결코 원상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한쪽 만으로의 여행이라는 것을 모두 잘 알고 있다.

육체적으로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정신영역에서 새로움을 찾아 노력하고 그 결과로 같이 사는 사람에게 혜택을 주기도 하나 뒤에 있는 후손에게 부담을 주는 예도 있을 것이다. 육체는 약해져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거동하기 어려우나 정신영역에서 도움을 주는 방법을 찾아야 삶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원숙하다는 얘기는 설익은 과실이 아니라 시간을 축적하여 좋은 향을 품고 농익은 상태를 말하며 정신적으로 갖춰진, 지혜를 발휘할 수 있는 나이이기는 하나 육체적으로는 남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시기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런 경지가 동물과 사람의 차이가 아닌가 여겨진다. 동물은 나이 먹었다고 하며 보살피는 과정은 없고 육체적으로 밀리면 바로 생을 마감하는 절차에 접어든다. 가끔 까마귀 같은 새가 먹이를 물어다 어미에게 주는 장면을 목격하기도 하나 동물 대부분은 도움을 받는 시기를 거치지 않고 살아온 지난날을 마감한다.

누구나 공평하게 맞이하는 순서이나 내 차례가 아니라고 하여 지난날을 밀치고 찾아오는 미래를 거부할 수는 없다. 다행스럽게 한 기관의 조사에 의하면, 건강하게 늙어가기 좋은 나라로 세계에서 한국이 3위라니 이런 수치에 위안을 받는다. 사회적, 국가적 보살핌 제도와 여건이 비교적 잘 되어있다는 객관적 기준이긴 하지만, 이런 환경도 앞으로 급격히 변해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사실 나이 먹음은 육체적으로 늙어 감은 사실이나 조금씩 익어가면서 주위에 좋은 향을 선사하는 시기라고 위로하면서 살고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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