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 없이 좋은 결과 바랄 수 없고
보살핌 없이 저절로 온전한 결실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30) 

신동화 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씨앗 뿌리기, 무엇인가 새로움이 솟아나는 기분이 드는 말, 모든 생명체의 근원을 농축하여 작은 씨알에 품은 신비의 창조물, 이 우주의 비밀이 작은 알맹이에 모두 들어있다. 이 씨앗을 대지에 뿌림은 생명체를 눈뜨게 하고 새로운 생명체를 창조하는 거룩한 순간이다. 씨앗이 있어야 모든 생명체가 탄생하고 지금이 아닌 다음 생을 이어갈 수 있다. 씨앗 뿌림의 마음은 우주의 기를 받아 생의 이어가게 하는 거룩한 행위이다. 지구에 같이 살고 있는 식물 등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자기 종족을 다음 세대로 이어가고 번성시키기 위하여 씨를 만들고 이 씨를 뿌려 다시 자신을 이어가게 한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이 자연의 순리를 모방하여 필요한 씨를 제철에 받고 그 씨를 관리하면서 자기들의 목적에 맞게 심고 관리하는 슬기를 발휘하고 있다.

인류 생활과 물질문명을 송두리째 바꿔버린, 의도적으로 작물을 생산하는 농업의 도입은 결국 씨 뿌림부터 시작하였다. 식물에서 한 번 맺힌 씨는 다시 대지에 씨 뿌림으로 자기와 같은 후손을 낸다는 것을 알아차린 인간의 지혜가 먹이 확보의 큰 사슬을 연결시키는 농업으로 발전시켰다. 씨앗을 뿌린다는 말은 물리적 행위를 떠나 정신영역에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마음에도 옳은 씨를 뿌리고 잘 가꿔야 완전하고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다고 가르쳐 왔다. 우리 속담에도 뿌린 만큼 거둔다는 얘기는 원인을 만들고 그 원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는다는 깊은 뜻이 담겨있다. 농부는 씨뿌리기와 일생을 함께하고 그 뿌린 씨를 잘 가꾸고 키움으로써 그 과실로 생을 함께 해왔다. 자연에서 씨가 맺고 떨어져 다시 나는 순환을, 농부의 손으로 씨를 거두고 다시 제철을 기다려 씨 뿌리는 행위 바꿔 농업으로 발전하였고 이제 인류의 먹이를 얻는데 결코 없어는 아니 되는 직업군이 되었다. 그래서 씨앗 뿌림은 인류발달사에서 획기적으로 변화를 불러온 전기라 할 수 있다.

어릴 때 볍씨를 큰 통에 넣고 물을 붓고 싹을 틔운 후 매끄럽게 잘 정리한 모판에 뿌릴 때 다가오는 희망을 보았다. 이 볍씨가 커서 어린 모가 되고 옮겨갈 때가 되면 논에 심어져 벼로 성장하는 과정이 눈에 보이듯 상상이 되곤 했다. 모판에 고루 뿌려지는 움튼 볍씨는 그 행위 자체가 생명을 탄생시키는 거룩한 과정이었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이 굶지 않고 지금까지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지금이야 먹는 것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곡물의 중요성이 가슴에 와 닿지는 않지만, 인류 역사의 99%는 먹이를 구하기 위한 투쟁이었고 먹이를 더 얻기 위한 쟁탈의 연속이었다. 또한, 모든 동물의 먹이 원천은 식물이고 그 식물재배의 시작은 씨앗 뿌림이다. 넓은 평야에 꽉 찬 황금벌판도 씨 뿌림에서 시작되었고 아무리 넓고 좋은 터전이 있어도 씨 뿌려 작물이 성장하지 않으면 빈터로 생명이 없는 죽은 땅이다. 

씨앗 뿌림은 인간의 몫이고 가꾸고 보살핌도 같이해야 하지만 이 결과로 얻어지는 최종산물은 자연, 하늘의 몫이라 여긴다. 아무리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발달했어도 하늘의 조화, 기후의 변화에 인간의 힘은 한없이 미약할 수밖에 없으니. 그래서 인간은 하늘의 뜻을 따랐고 하늘을 경배하면서 제천(祭天)행사를 그리도 경건히 올리지 않았는가. 결국, 씨앗 뿌림은 인간의 행위에 들지만, 그 결과는 하늘에 맡기는 겸손을 배워온 과정이기도 하였다. 이런 자연의 순리는 인류가 이 행성에서 생명을 유지하는 한 계속될 것이다.

가끔은 화초도 가을에 받아 놓았던 씨를 봄에 시기 맞춰 적당한 공터에 뿌린다. 한동안 물을 주고, 먼저 재빠르게 머리를 내밀어 자리 잡으려는, 원하지 않은 경쟁자를 솎아내면서 보살피면 어느 날 내가 한눈파는 사이 삐죽이 어린 떡잎을 내민다. 정성을 들인 것에 보답하듯 여린 연두색 새싹은 어느 식물이건 경이의 대상이 아니 될 수가 없다. 물론 커가는 과정도 관심의 대상이긴 하지만 씨 뿌린 후 나오는 새싹이야말로 경이의 순간이고 생명 탄생을 같이하는 거룩한 순간이기도 하다.

씨앗 뿌림은 희망을 심는 것이고 그 희망이 싹트는 것이며 얻어지는 열매는 내가 보라는 희망의 결실이다. 동물의 세계도 어찌 식물의 세계와 다르겠는가. 씨앗 뿌림의 방법이 다르고 자라나는 바탕이 같지 않겠지만 씨앗에서 성체가 나오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여긴다.

씨앗 뿌림은 준비와 기다림 그리고 보살핌이 어우러져야 바라는 결과물을 얻는다. 준비 없이 좋은 결과를 바랄 수 없고 보살핌 없이 저절로 온전한 결실을 바라는 것은 헛된 욕심이다, 우리 인생도 씨앗 뿌림과 돌봄의 과정에서 비교해 보면 하나도 차이가 없다고 느껴진다. 단 차이점은 식물과 다르게 각자의 마음에 간직한 고유하고 강한 의지가 정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골라준다고 여겨진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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