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을 때 정신적 여유
지금과 비교해 더 나아졌는가 생각해 봐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28) 

신동화 한국식품산업진흥포럼 회장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생리적으로 가장 급한 문제를 해결해주는 곳, 처음 불가(佛家)에서 통용되고 이제 일반인에게도 친근한 이름이 된 해우소(解憂所),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장소라 그 뜻에 불교 교리와도 상통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 말은 한국전쟁이 끝날 때쯤 통도사 극락암에 계시던 경봉 스님이 작명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당시 큰일을 보는 곳을 해우소, 간단하게 처리하는 곳은 휴급소(休急所)라 이름 붙였는데 휴급소는 그 뜻이 실감 나게 전달되는데도 널리 통용되지 못하고 해우소는 일반화된 이름이 되었다.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지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생리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만큼 급한 일도 없을 것이다. 매일 잡다한 음식물을 몸속으로 밀어 넣었으니 필요한 것은 골라서 간직하고 여분이나 필요치 않은 것은 내놓아야 쌓이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것이다. 큰일이야 대부분 하루 한 번이 정상이지만 작은 일은 몇 시간에 한 번은 배출해야 편안해진다.

해우소란 말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랫동안 일반적으로 사용했던 변소(便所)와는 그 뜻이 일맥상통하나 편안함을 넘어 마음속 걱정거리를 해결한다는 의미가 있어 훨씬 더 깊은 뜻을 안고 있다. 생리적인 불편을 넘어 정신영역까지 어려움을 아울러 해결한다니 육체와 정신을 아우르는 넓은 영역이다. 변소 대신에 널리 통용되는 명칭으로 된 화장실은 글쎄, 변소라고 부르기 거북하니 조금 더 순화된 말로 우리 심정을 표현한 것인데 해우소와는 품격이 다르다.

속담에 똥 누러 갈 때와 나올 때 생각이 다르다는 속담은 일상에서 겪는 인간의 심성을 나타내는 참으로 절묘한 비유다. 한 나라의 생활 정도나 문화는 그 나라의 화장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저개발 국가를 여행하면서 처음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화장실 이용이다,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큰일 보는 장소가 완전히 개방되어 있는가 하면 불결한 주위라니, 이런 환경을 접해보지 않고 살아온 경우 께름칙하지 않을 수 없다. 거의 없어졌지만 좌변식이 아닌 초등학교 화장실에서 학생들이 일을 보지 못한다는데 이해가 간다. 

멀지 않은 지난날, 조선조 말 선교사들이나 외국인이 한양을 찾아 길거리를 다닐 때 가장 불편한 것이 길거리에 널려 있는 배설물이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대소변을 버리고 배설했으니 그 광경은 상상이 간다. 

우리나라 화장실 문화가 세계적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것은 88올림픽을 거치면서 정비한 덕이다. 많은 외국인을 맞이하고, 우리 것을 세계에 알리는 자리를 마련했는데 가장 지저분하게 치부가 되는 화장실 정리가 급선무였을 것이다. 그 당시 여러 바쁜 일 중에서 화장실 정비사업을 선택한 것은 참으로 혜안을 갖고 있었던 선지자의 덕이라 여겨진다.
지금은 모든 건물이나 많은 사람이 함께 사용하는 고속도로 휴게소나 공원에 있는 화장실은 개인 안방처럼 깨끗하고 잘 정리되어 있다. 화장지는 물론이고 손을 씻을 수 있는 세면대에는 비누가 준비되어 있고, 손을 말릴 수 있는 설비나 휴지가 준비되어 있다. 더 감탄스러운 것은 겨울, 공원이나 공중화장실에 있는 세면대에 더운물이 나올 수 있게 배려하면서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은 금상첨화이다.

가장 외진 곳, 사람 왕래가 없는 한적한 곳을 골라 화장실을 만들어 놓았던 우리 선조들의 개념에서 이제는 가장 가까이, 그리고 가장 청결하게 관리하는 장소가 화장실이 되었다. 각 가정에서도 화장실 관리는 안방 못지않게 관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기면서 삶의 질을 높이는 한 과정이 화장실 문화였고, 더욱 이런 문화의 촉진제가 된 것은 공중화장실 경연대회를 하고 경쟁을 통하여 더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공중화장실의 건물 디자인부터 그 안에 배치와 편의 시설을 종합하여 평가한다고 한다. 물론 경제적 여유에 따른 자연스러운 변화이기는 하나 우리 생활에서 절대로 없어서는 안 되는 화장실에 관심을 두는 것은 위생 측면은 물론 우리나라 품격을 높이는데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은 꼭 경제적 여유만이 아니라 우리 주위에서 살아가는 여건을 편하고 안락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라 여겨진다. 옛말에 변소와 처가는 멀어야 좋다고 했는데, 이제 이 말은 “나 때”의 개념으로 넘어갔고, 오히려 더 가까이 있어야 나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그 혜택 또한 크다. 요즈음 젊은이들에게는 본가보다는 처가 옆으로 가려는 경향이 뚜렷하고, 화장실도 가장 가까이 두어야 하는 세대가 되었다.

여러 많은 사회 변화 중에서도 우리 화장실 문화는 근세사에서 가장 큰 혁신을 거친 사례 중 하나이다. 외형적으로 달라졌지만, 이 변화의 추세는 밖으로 내보이는 것에서 내면, 즉 정신영역으로 확대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했을 때 정신적 여유가 지금과 비교하여 더 나아졌는가는 각자 한 번쯤 생각해 봐야겠다.

지리산 한 암자를 방문하며 주지 스님께 화장실을 물었더니 안내해주시면서 간판을 잘 관찰하라는 당부, 조금 돌아간 외진 곳에 한문으로 多佛留是(다불유시)가 달필로 적혀 있다. 해학적인 표현이다. W.C.는 다 아는 일반 명칭이나 이를 주지 스님의 기지로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그 스님의 위트가 머리에 남는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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