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24) 

믿음과 약속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 아니 이 순간도 결코 편안하게 맞을 수 없다. 
모든 자연현상도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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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맞고 있는 나의 안전한 일상생활은 대부분 여러 사람의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보살핌으로 가능하다. 아침 식사에 나온 밥과 반찬은 농업과 수산업 종사자들의 숨은 노력으로 생산되어 식탁에 올랐다. 이 산물의 생산자들을 암묵적으로 믿기 때문에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로 밥상을 차지하고 있다.

사회구성원의 한 사람인 나는 일과를 시작하는 모든 과정에서 다른 사람을 믿고 신뢰하지 않으면 생활이 불안하여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금방 일어났던 잠자리는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난방을 책임지고 있었으며 수많은 사람의 숨은 노력으로 생산되는 전기가 있어야 안심하고 엘리베이터를 이용한다. 출근할 때 전철을 타는 것은 운전자는 물론이지만 거대한 운송시스템을 운용하는, 얼굴을 맞댈 수 없는 많은 사람이 정상적인 사고로 주어진 자기 업무를 충실히 하고 있다고 믿기에 전철에 타고 내가 가야 하는 목적지까지 시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같이 타고 있는 승객은 어떤가. 이들이 나를 해치지 않을 것이라는 신뢰가 있으니 안심하고 차에 오른다. 자동차 운전은 어떤가. 나라마다 주행 방향이 다르지만 우리는 오른쪽 운전을 통행 기준으로 정하고 있으니 그 약속에 따라 모두가 오른쪽 운전을 하면서 상대도 그렇게 하리라는 신의와 약속을 믿기 때문에 안심하고 운전하고 있다. 이 신뢰가 무너지면 큰 사고가 나고 돌이킬 수 없는 불행한 사태가 벌어질 것이다.

비행기로 여행하거나 기차로 이동할 때 얼굴이나 이름도 모르는 파일럿이나 기관사를 믿지 못하면 어찌 내 목숨을 그들에게 맡길 수 있겠는가. 내 생활과 연계된 모든 사람은 내 믿음으로 같이 살고 있다. 점심을 먹기 위해 식당에 가서 맛있는 식사를 할 때 내가 먹는 음식이 안전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에 즐거운 마음으로 음식을 즐긴다. 의식하든 그렇지 않든 온전히 그 식당의 주방장이나 총 관리자인 주인을 믿고 신뢰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회활동은 나 혼자만의 독립된 일이 아니라 얼기설기 고기 그물같이 여러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느낀다. 조금 폭을 넓히면 너무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있어 내 일상생활이 연관된 모든 사람이 안전하게 나를 보호해주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 사회와 국가는 질서유지를 위해서 법과 규정을 만들어 사회구성원이 지켜야 할 원칙을 만들고 이들 법을 지키지 않으면 징벌을 하는 강제적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 강제 법과 규범 위에 도덕적 기준을 갖고 있다. 즉 강제하지 않아도 내가 지켜야 할 규범을 나름대로 마음속에 갖고 있다. 

본능적이건 교육에 의한 후천적 지식에 바탕을 두었건 옳고 그름 그리고 해서는 아니 되는 기준을 나름대로 갖고 있다. 이를 우리는 양심이라고 한다. 어찌 보면 사람으로서 해야 하는 암묵적 규칙이 있고 모두가 정해진 규칙을 따르리라 믿고 서로를 신뢰하기 때문에 전면 알지 못하는 타인과 한 공간에 안심하고 상당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물론 이들 무언의 약속이 깨져 불행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으나, 그런 확률은 살아가면서 지극히 예외적인 사건들입니다. 예를 들면 교통사고를 당할 경우나 밀폐된 전철 안에서 폭행을 경험하는 일 등은 일생에서 지극히 드물 때가 될 것이다.

법이나 규칙은 살아가는 구성원에게 울타리를 쳐두는 것이고 그 안에서 벗어나지 말라는 강제적인 지침이 포함된다. 사람 간 약속이나 신뢰는 과거에 의존하지 않고 미래에 올 일에 대한 대비의 성격이 크다. 서로 부대끼며 살 수 있는 것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를 앞두고 시간을 뛰어넘어 미래의 일을 현실로 만들려고 하는 것이 약속이다. 미래에 올 것을 현실화하고 실행하는 것은 약속할 능력을 갖춘 사람으로 우리는 서로를 믿기 때문에 가능하다. 약속이나 믿음은 지금 당장 일어나는 것은 아니나 앞으로 정해졌거나 그렇지 않은 미래에서 일어날 일에 그렇게 되리라는 마음을 주고받는 것이다. 

이 사회는 지금 당장의 일보다는 앞으로 일어날, 혹은 벌어질 일에 대해서 대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거는 지나가 버린 것이고 현재는 과거의 연장선에 있으나 미래는 올, 그리고 내가 맞을 곧 닥칠 현실이다. 앞으로 다가오는 현실에 대하여 믿음과 약속을 하는 것이다. 믿음과 약속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오늘 하루, 아니 이 순간도 결코 편안하게 맞을 수 없다. 모든 자연현상도 그렇게 되리라는 믿음,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내가 상대하고 있는 모든 사람도 상대가 정상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어 필요한 약속을 할 수 있다. 혼자로만 살 수 없는 인간은 더불어 같이 있는 이웃에 믿음을 바탕으로 크고 작은 약속을 하며 그 약속으로 정해진 일을 해낸다. 협력은 기본적으로 상대에 대한 신뢰가 바탕이 된다. 신뢰는 협력의 전제조건이며 인간사회가 발전해 가는 기본이다. 근래 사람 간 이 신뢰와 믿음이 약해지는 것 같아 걱정되는 요즈음이다. 신뢰와 믿음이 사라지면 동물사회가 된다. 그러기 전에 살 맛 나는 세상으로 발전시켜야겠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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