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21) 

연탄 사용의 역사가 우리 일상 생활형태를 변화시키는 것과 함께
의식주도 이전과 크게 달라져
침체하거나, 긍정적으로 발전하든 변화가 뒤따른다는 것을
연탄의 변천에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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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낯익고 반가운 연탄난로를 분당에 위치한 한 식당에서 만났다. 마침 난로 뚜껑을 열고 연탄을 갈고 있었다. 3구 연탄난로, 난로 하나에 3개의 연탄이 들어간다. 갑자기 수십 년의 세월을 뛰어넘는 정경이 머릿속에서 펼쳐진다. 지금도 불우이웃돕기에 연탄 기부가 계속되고 있으나 연탄을 난방이나 조리용 연료로 사용하는 가구는 급격히 줄었다. 

우리나라 연탄의 역사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 강점기인 1920년 일본에서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당시에는 나무 대신 석탄을 잘 뭉친 후 구멍을 뚫어 땔감으로 사용하였고 그 이후 원통형으로 가운데 구멍이 뚫린 형태인 구공탄으로 발전하였다. 만드는 과정을 보면 형틀에 연탄가루를 넣어 기계로 눌러 성형하면 모양을 갖춘 연탄이 탄생한다. 가루석탄(분탄)에 결착제로 황토를 혼합하고 물을 뿌려 형틀이 있는 기계에서 눌리면 잊지 못할 시커먼 연탄이 탄생한다. 

1980년대까지도 연탄은 극히 일부 가정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도시가구와 심지어 땔감이 있는 농촌에서도 난방이나 취사용으로 연탄을 사용하였다. 겨울 채비로 김장과 함께 연탄준비는 필수 사항이었다. 아파트가 거의 없었고 주거는 단독주택으로 화덕이 있는 지하실은 연탄광이 되었고 연탄용 화덕은 집안에서 관리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연탄은 리어카나 작은 화물차에 싣고 와서 집안까지 배달해 주었고 이렇게 비축한 연탄은 겨우내 방을 덥혀주면서 취사까지를 담당하였다.

연탄용 석탄은 여러 탄광에서 생산하여 연탄공장에 배달되었는데 우리나라 탄광 1호인 화순광업소는 1905년에 시작하여 우리 민족과 애환을 같이 하였다. 1973년과 1978년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연탄의 부흥기를 맞았다. 나라의 큰 행사였던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석탄사용을 규제하고 청정에너지원으로 전환하면서 대체에너지, 즉 액화천연가스(LNG)로 난방과 취사가 바뀌면서 석탄산업은 서서히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이 여파로 117년의 오랜 역사를 가진 화순광업소를 시작으로 강원 태백광업소 등이 차례로 문을 닫는다고 한다. 

연탄은 가장 값싼 서민 에너지원으로 장점이 있는가 하면 연탄가스(일산화탄소)라는 불청객이 따라 들어와 겨울철에는 인명사고가 났고 그 피해도 적지 않았다. 특히 석탄에 함유된 유황은 그 독특한 냄새로 유쾌하지 못한 기억이 있다. 당시 연탄을 사용하는 가정의 주부는 연탄불을 꺼뜨리지 않고 계속 불씨를 이어가야 하는 큰 어려움을 안고 살았다. 연탄을 한 번 갈면 질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2시간 내외 가기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자다가도 일어나 연탄을 갈아주어야 하는 불편을 겪었다. 이런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한 대체연료는 LNG이었다. 기체인 LNG는 관을 통하여 공급되었고 아파트는 물론 단독주택도 가스통으로 배달되어 편리한 연료로 일반화되었다. 

지금 연탄을 사용하고 있는 가구는 전국적으로 10만 가구가 채 안 된다고 발표되고 있으며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소비자들이다. 또한, 소규모 식당 등 요식업소의 가열용으로 극히 일부 사용하고 있으나 대부분 편리한 가스연료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나이 드신 분들은 연탄에 대한 애환이 몇 가지씩은 있을 것이다. 화덕에 연탄불을 꺼뜨려 난감한 경우가 있는가 하면 번개탄을 구하지 못하여 별도 불을 피워 간신히 연탄에 불을 붙인 경험, 더욱 신경 쓰인 것은 날이 궂을 때 잘 일어나는 연탄가스 중독으로 머리가 아프거나 심하면 병원 신세를 져야 할 쓴 경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연탄가스에 아픈 경험이 있다. 60년대 초, 대학 입학시험을 치르기 위해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시던 숙부의 집에 도착하였다. 그날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 일어나 마루에 앉았다가 그냥 고꾸라져 버렸다. 연탄가스 중독이었다. 간신히 버스를 타고 시외에 있는 대학 고사장에 가야 하는데. 난감한 상황, 어렵게 구한 약을 삼키고 아침도 거른 체 숙부님과 같이 고사장에 도착, 멍한 상태에서 시험을 치렀다. 지금도 첫 시간 국어시험에 글쓰기 제목은 생각이 난다. “잔디에 누워 흘러가는 구름을 본다.” 지금 내 처지를 생각하지 않는 한가한 제목, 그리고 수학시험. 어찌 시험을 치었는지 전연 기억이 없다. 결과야 빤한 것이고, 지금도 그 대학 앞을 지날 때는 그때의 아픈 기억이 밀려와 상처가 되살아난다. 그 법석을 같이 겪었던 숙부님은 벌써 다시 못 올 길로 가신 지 오래되어 추억을 공유할 분이 계시지 않아 아쉽다.

시대와 더불어 생활환경도 크게 변하는 것이 정한 이치이며 순리로 여건에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는 것은 당연하다. 역사적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0년대까지 난방, 취사용은 자연에서 얻은 장작이나 농사 부산물인 짚 등이 주를 이루었고 이 연료를 조달하기 위해 산에서 나무를 해 와야 했으며 이 결과 우리 산 대부분을 벌거숭이로 만들어버렸다. 그나마 편리한 연탄이 나오면서 나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정부의 녹화사업으로 지금 우리 산하의 울창한 숲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은 여러 변화를 불어오지만, 세계 유례가 없는 우리나라의 발전은 연료의 대체뿐만 아니라 모든 사회구조와 정신영역까지도 이전과는 크게 다르게 변화시켰고 그 변화가 지금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연탄 사용의 역사가 우리 일상 생활형태를 변화시키는 것과 함께 의식주도 이전과 크게 다름을 경험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나라마다 발전하는 양상은 서로 다르지만 침체하거나, 긍정적으로 발전하든 변화가 뒤따른다는 것을 연탄의 변천에서 보고 있다. 

앞으로 연탄으로 겨울을 나는 분들에게도 이 사회에서 도움의 손길이 따뜻이 뻗쳤으면 하는 바람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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