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그러나 살뜰한 행복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18)

우리는 각자 소망과 희망은 다르겠지만, 공통적으로는 정신의 밑바닥에 간직하고 싶은 마음을 채울 수 있는 행복의 감정이 없다면, 태산 같은 재물이 있고 세상을 떨게 하는 권력이 있다 한들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 본다. 행복이 결여된 삶은 영원한 것이 아닌 일시적인 허상이 아닐는지. 행복은 느낌이요 그 느낌을 내가 안을 때 만족감으로 나에게 전달된다.
 
시원해진 가을, 둥근 보름달을 기다려 맞으며 소원을 빌 때 내 마음이 그냥 충만해진다. 멀리 떨어져 있다 모처럼 찾아온 어린 손녀가 살며시 다가와 고사리손으로 내 손을 잡을 때 온몸에 전달되는 행복감이라니, 이 감정을 어디에 비길꼬. 심하게 추운 날 시장 양철통에 가득 모닥불을 피워 놓는 모습을 보고 다가가 불을 쬐면서 추위를 녹일 때, 순간 내가 살아있는 즐거움에 쌓인다. 자라는 모습을 곁에서 조마조마하게 지키면서 학교에 다니고 제 마음에 맞지 않으면 투정을 부렸던 녀석이 여기저기 기웃거려 취직했다고 좋아하고 정성 들여 차려입은 옷을 뽐내며 첫 출근하는 모습을 보며 지나온 추억을 넘어 뿌듯한 마음이 들 때, 내가 존재하는 기쁨을 느낀다. 

그래 기쁨이 행복을 불러오는 것인지, 행복이 기쁨과 같이 오는 것인지 확실하지 않다. 그러나 그 느끼는 감정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이 된다. 기쁨이 없이 어찌 행복할 것이며, 행복이 기쁨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찌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겠는가. 
 
한참 더운 여름, 헉헉대며 급하게 집안으로 뛰어들어 나무 그늘 밑 평상에 앉을 때 어머님이 주시는 시원한 설탕물 한 그릇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 속에 행복을 안겨준다. 무더위가 한창이라 짜증스러운데, 먹구름이 몰려오고 세찬 소나기가 스치더니, 푸른 하늘을 보이면서 서쪽 하늘에 영롱한 쌍무지개가 뜨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면 내가 살아있다는 행복감에 젖는다. 한순간이긴 하지만, 지금도 그 순간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상상만 해도 그 감정이 살아난다. 
 
읽고 싶었던 책을 손에 들고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저자와 닮은 속마음을 들키는 듯 교감하면서 느낌을 나누는 순간은 어찌 행복이라고 아니할 수 있는가. 멀리 떨어져 있는 마음속의 친구를 불러와 같이 나눴던 추억을 되새기면서 우리만이 알고 있는 비밀스러운 생각을 나누고 입가에 떠오르는 미소를 느낄 때도 잔잔한 행복이 스며든다. 어느 날 녹음된 어머님의 목소리를 듣다 보면 나도 모르게 마주할 수 없다는 아쉬움에 눈이 붉어지면서도 내 어머니가 곁에 계시고 있다는 따뜻함이 전달해와 한순간 행복에 젖는다. 미소가 번진다. 

그래 이런 것이 내가 간직하고픈 행복이다. 어찌 물질이 정신영역을 넘볼 수 있을까. 물질은 유한하고 깊고 진한 감동을 주지 못하지만, 정신의 만족은 가없고 그 깊이를 가늠할 수가 없다. 이는 오직 나 하나만을 위해서 만들어준 보물이고, 그 누구와도 나눌 수 없는 오롯이 내 것이기도 하다.

이제는 행복의 순간도 점점 내 몸 가까이에서 느끼는 때가 되어 가는가 보다. 소변이 급한데 둘러보니 해우소가 없어, 급히 두리번거리다 안내 표지가 보일 때 반가운 마음과 안심, 그리고 일을 보고 난 후 느끼는 시원함. 그것을 그렇다고 느끼는 것 또한 나만이 느낄 수 있는 기쁨이요 만족감이기도 하다. 삼복더위에 훌떡 벗고 시원하게 개천에 몸을 담글 때 그 기분을 느끼지 못해본 사람이 어찌 그 즐거움과 행복감을 같이 할 수 있을는지. 모든 것을 내려놓은 해방감과 몸에서 느끼는 시원함은 누구도 같이할 수 없는 나만의 기쁨이요 즐거움 그리고 잔잔히 살아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든다. 

행복은 내가 불러들여야 찾아오는 동무이다. 결코, 스스로 나를 찾지는 않는다. 어떤 기회가 되건 내가 초청해야 흔쾌히 내 마음속으로 비집고 들어가 나와 함께 한다. 불러들이는 기술은 나에게 있다. 한겨울 군고구마 장수가 건네주는 따뜻한 고구마 봉지를 받아 안고 그 따뜻함에서 행복을 느끼지 못하면 나만 손해다. 결코, 행복은 강도와 비례하지 않는다. 순간순간 내가 느끼고 받아들이는 감정의 총화다. 첫눈을 맞으며 잊고 있었던 옛 애인을 그리고 함께 나눴던 순수하고 정답던 속삭임을 다시 뇌며 그 순간으로 돌아가 흐뭇함을 느끼면 행복을 받아들일 자격이 있다. 이른 봄, 그래도 바람이 귓가에 차갑게 느껴지는데도 눈을 돌려 갈색으로 변한 풀 사이로 파란 잔디 새싹을 보면서 곁에 다가오고 있는 봄 냄새를 맡는 것은 인간만이 갖는 특권이다.
 
우리는 너무 재산이나 물질적인 것에 매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물질이라는 한정되고 유한의 범위에서 이제 무한의 영역으로 내 생각의 폭을 넓혀 마음속 행복을 찾아가는 연습이 필요한 때이다. 가끔은 순리대로 흘러가는 시냇물의 흐름과 파란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구름에 내 마음 전부를 실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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