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음은 밖에서 일어나지만
몸 안에 있는 마음은 늙음의 대상 아냐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14)

오랫동안 얼굴을 대하지 못했던 친했던 친구가 반갑게 만나서 하는 첫마디, “너 변치 않았구나!” 그래서 내 대답, “고맙다”, 그렇게 말하고 나를 둘러본다. 이 세상 만물 중 변치 않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물질로 구성된 것은 그 자체로 변화를 운명으로 타고났고 그 법칙에 따른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물질은 원자의 모음이고 이 원자들은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움직이며 외부의 영향에 의해서 변화를 거듭하는 전자를 주위에 거느리고 있다. 공기는 물론이요. 빛에 의한 변화, 자체 활동에 의한 자신의 변신,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는 이들 알갱이로 구성된 것이 물질이다. 하물며 육신으로 이루어져 있는 우리 몸뚱이도 연륜에 따라 변함은 자연의 이치일 뿐, 사람이라고 어찌 예외가 될 수 있는가. 

막 태어나서부터 성장하고 그 성장이 멈추면 서서히 늙어감의 과정을 거친다. 하긴 탄생에서부터 노쇠는 일어난다고 봐야 한다.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면서 묵은 것을 밀어내니 이 또한 노쇠의 과정이 아니겠는가. 단지 새로 생기는 것이 월등히 많으니 늙지 않고 성장한다고 착각할 뿐이다. 동물은 물론이고 식물도 자세히 관찰해보면 계속 성장하는 것 같지만 끊임없이 묵고 늙은 세포를 털어내고 새것으로 교체하면서 밖으로 보기에 성장의 모습을 보인다. 이런 성장에 따른 낡은 것의 대체가 없다면 어찌 식물이고 동물이라 하겠는가. 만물의 정한 이치를 따르고 있을 뿐이다.

오랜 세월을 뒤로하고 만난 친구가 “어 변하지 않았구나.”란 말은 육체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속에 품고 있는 우정이 달라짐이 없다는 얘기를 에둘러 표현하는 것이리라. “너 많이 변했고 늙어 버렸구나!”라는 말보다는 얼마나 나를 위로하고 정감 가는 말인가. 저나 나나 우리의 외모가 변했다는 것을 말하지 않아도 어찌 모르겠는가. 그러나 변하는 것을 외형에 두면 그 말이 맞으나 서로가 갖고 있는 마음의 상태를 꿰뚫어 보면 옛 마음이 변하지 않음을 서로 알 수 있다는 무언의 교신이다. 

그렇다, 우리는 보통 외형이나 밖으로 나타난 모습으로 그 사람의 마음까지를 추정하여 짐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가 늙어가면서 하는, 마음은 청춘인데 이 몸이 이 마음을 따라주지를 못하는구먼. 오랜 내 친구는 내 외모를 본 것이 아니라 내면의 내 마음을 보고 그 느낌을 “너 변하지 않았구나.”라고 표현했을 것이다.

마음과 육체는 안과 밖의 관계를 갖고 있으나 몸에 마음을 품고 있으니 일체라 말할 수 있으나 더 들여다보면 항상 변하는 물질로 구성된 몸이지 정신은 아니다. 우리 주위에도 육체적 나이는 상당히 들었으나 마음은 그 세월에 따라 변한 것이 없는 만년 청년 같은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계속 변하는 육체를 벗어나 정신세계를 관장하고 결코 쇠퇴하여 늙지 않는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정신수양에 의한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육체는 나이를 먹지만 정신은 결코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이다. 

정신수양은 늙어감의 과정이 아니라 새로움을 찾아 젊어지는 방법을 터득하여 지혜를 얻는 마음 챙김이다. 보통 사람을 대할 때 육체만 보고 그 안에 간직된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것을 무명, 혹은 미혹이라 부르는데 마음 자체는 결코 나이 먹는 것이 없으니 몸에 의지하여 존재하는 마음만을 보면, 어찌 변했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오늘도 늙지 않는 내 마음을 알아보려 노력하지만, 결코 잡아내지 못하는 것이 내 몸 안에 들어 있는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그러나 그 마음은 내가 관리할 수 있고 내 안에 품고 있으니 어쩌면 서로가 대화로 통할 수도 있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천년의 시공을 넘어 장인이 만든 국립박물관 사유의 공간에 모셔진 반가사유상에서, 득도하여 최고의 경지에 이른 미소를 창조한 정신은 지나온 세월과 함께 늙어왔는가. 아니다, 처음의 그 미소가 지금도 그대로이고 또 앞으로 후손들의 느낌도 다름이 없을 것이다. 단지 바라보는 사람들의 심성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생각의 근원은 어디인가에서 변화 없는 그 정신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눈으로 보면서 아름다움을 느끼고 귀로 들으면서 소리가 주는 즐거움은 마음으로 옮겨간다. 촉감은 어떤가, 부드러움을 느끼면서 편안한 마음을 갖고 안정된 감정으로 변한다. 육체가 느끼는 오감은 그 자체가 근원으로 뇌가 행하는 것이며 여기서 마음이 나온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은 육체를 통하여 얻은 것과는 너무나 다르다. 형체가 있는 것을 느끼고 감상하는 것보다는 없는 것에서 더 깊은 생각을 할 수 있다. 이는 순전히 외부가 아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생각이 정신으로 승화된다. 

늙음은 밖에서 일어나지만, 몸 안에 있는 마음은 늙음의 대상이 아니다. 끝없는 어머니의 사랑이 늙어가겠는가. 어느 시기에 잊히려는 지 모르나 결코 낡고 늙어가지는 않는다. 변하고 달라지며 결국 스러지는 물질을 탐하기보다는 결코 변하지 않는 마음을 잡고, 그 마음을 다스리려 선인들은 그렇게 노력했는가 보다. 언제쯤 변치 않은 마음으로 남아 있는 생을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살 수 있을는지. 오늘도 옛 친구를 만나 변치 않는 마음을 나누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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