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산한 쌀 모두 국내에서 소비하여 수입곡물량 줄이고
쌀값이 떨어져 시름에 젖은 농민을 도와줄 방법 찾아야 할 때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12)

추수가 시작되는 가을에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은 올기쌀이다. 아직 완전히 여물지 않은 벼를 베어 훑은 다음 솥에 넣어 찐 후 살짝 말리고 절구에 찧어 올기쌀을 만든다. 조금은 부드럽게 느껴지는 올기쌀을 한 입 털어 넣고 씹는 맛이라니, 지금도 군침이 돈다.

우리나라 사계절, 어느 절기나 특색 있고 분위기가 다른 감정을 주고 있으나 햅쌀이 나올 때인 가을철은 풍요의 계절이고 풍족한 인심이 물씬 돋아나는 절기이다. 모든 과일이 넘쳐나고 여기에 날씨까지 우리가 살기에 적당한 기온까지 마련해주니 어찌 가을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 시기에 백미는 아마도 처음 수확되는 벼로 생산한 햅쌀이 될 것이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면서 찰진 햅쌀밥은 보리밥이 주식인 여름을 지나 드디어 쌀밥을 먹을 수 있다는 큰 계절의 변화를 의미한다.

농가에서는 벼 품종을 선택할 때, 올벼(이른 벼)와 늦은 벼로 구분하여 심는다. 올벼는 일찍 익으니 먼저 수확하여 우선 식량으로 하고 조금 늦게 나오는 늦은 벼는 수확량이 많아 소득을 올리는 데 기여한다.
보통 올기쌀은 올벼를 사용하고 많이 베지도 않는다. 아직 덜 익었기 때문에 수확량이 많지는 않으나 가을이 왔다는 징표로 가족들에게 특별한 선물을 마련하기 위함이다. 이렇게 만든 올기쌀은 어린애들과 어른까지 특별한 간식이었고,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서 심심풀이로 먹는 특별식이었다. 

올기쌀을 만들기 위하여 일찍 베어낸 논의 빈 자국은 쥐 뜯어 먹은 머리카락처럼 보이나 바로 우리가 쌀밥을 먹을 때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별로 특별한 간식이 없는 농촌 생활에서는 자기가 생산하는 농산물을 여러 모양으로 처리하여 만든 것이 어린이들의 좋은 주전부리가 되었고, 지금도 그 추억으로 슈퍼에서 이때쯤 나오는 올기쌀을 사다가 먹어 봤는데 어릴 때 먹었던 그 맛을 살리기엔 역부족이고, 옛날 먹었던 맛과는 너무 차이가 난다. 물론 나이 탓도 있으나 어찌 내 고향에서 어머니가 정성 들여 만들어 주신 올기쌀의 그 정취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농촌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서로 통하는 감정이 있을 것이라 여겨진다. 가을이 되면 하굣길에는 먹을 것이 여기저기 널려있다. 길가 밭에는 먹음직스럽게 머리를 녹색으로 이고 있는 무가 있고, 고구마를 심은 밭에는 내가 여기 있다고 두렁 밖으로 골 터진 모습을 보이는 고랑이 보인다. 바로 여기에 미리 커진 고구마가 숨겨져 있으니 쉽게 구분이 된다. 지나면서 무 하나를 뽑아 개울물에 씻고 바로 씹어 먹는 맛이나, 그 정취, 고구마는 어떤가? 두렁에서 갓 뽑아낸 햇고구마의 아삭한 조직과 달콤한 맛은 지금도 그 느낌이 와 닿는다. 

어린애들이 이렇게 축내는 농작물을 심어놓은 주인은 애들의 장난기에 크게 탓하지도 않는다. 뽑아먹는 애들이 내 마을 이웃이기도 하고 또는 사촌이나 친척일 수 있으니 그냥 넘어가고< 어린애들이 즐기는 모습을 더 귀엽게 느끼는, 사람으로서 정이 서로 통하였다. 살기가 지금보다 훨씬 어려웠을 그 시기에 같이 살았던 우리네 인정은 지금과 같은 삭막함은 없고 넉넉한 마음을 간직하고 살았다.
수확하여 처음 나오는 곡식을 어려운 사람들과 나눠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었고, 감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감을 따서 동네 어른들에게 먼저 드리는 예의를 차렸다. 부족함 속에서도 서로 나눔의 마음 여유, 그것이 동물과 다른 큰 차이점이 아니겠는가. 

내 자식, 내 가족만을 제일 우선하는 이 시대의 각박함에 어떨 때는 심한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재물의 여유는 훨씬 나아졌지만 반비례하여 마음의 넉넉함은 훨씬 줄어들어버린 지금의 세태에 큰 아쉬움이 남는다. 아파트라는 조밀한 주거환경은 시멘트 굳기만큼 서로에게 담장을 둘러치고 살면서 내 가족만 즐기면 된다는 이기심이 삶의 우선이 되어가고 있는 세태가 되었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많은 사람은 쌀은 아무 때나 시장에서 사서 먹을 수 있으니 그 쌀이 어떻게 생산되어 내 손에 닿는가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해볼 필요가 없어져 버렸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이상하게 여겨지는 사회, 그래도 아직 우리에게는 시간의 여유가 있다. 사회운동으로 이웃돕기라든가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에게 온정의 손길이 가는 것을 보면 인간이 갖춰야 할 인정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 

우리 식생활도 많이 변하여 쌀이나 보리가 아니면 먹을 것이 없는 시절에서 이제는 밀가루로 만든 빵, 국수, 과자 등이 풍부해지면서 점점 쌀의 귀함이 잊혀가고 있다. 우리 쌀 소비가 80년대까지만 해도 일 인당 연간 100㎏이 넘었는데 작년 조사결과에 의하면 56㎏ 수준으로 떨어지고 있다. 이렇게 소비량이 줄어드니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이 남아도는 해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외국에서 계속 밀, 옥수수, 콩은 1800만 톤 정도를 수입하면서도 말이다.

올기쌀과 햅쌀밥의 향수에 젖기 전에 우리가 생산한 쌀을 모두 국내에서 소비하여 수입곡물량을 줄이고, 쌀값이 떨어져 시름에 젖은 농민을 도와줄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식량과 자원은 우리가 필요한 양을 스스로 확보하여 먹고 이용할 수 있어야 국가 자립이 가능할 것이다. 특히 식량은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생명선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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