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가 서둘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듯 
우리도 성장통을 통하여 더 깊은 지혜를 얻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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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탓 이려는가. 내 주위의 외부 변화보다도 나 자신, 어찌 보면 내면의 나를 관찰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늘고 있다. 천년의 의문, 만인이 궁금해하는 나는 누구인가로부터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마음속인가, 머리 안에 있는가. 그리고 어디를 향하여 지금 가고 있는가. 일상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허투루 흘려보내기보다는 그 내면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것에서 나에게 와 닿는 감정이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하고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길가에 외롭게 피어있는 철 늦은 장미 한 송이를 조심스럽게 붙잡고 향을 맡아본다. 나와 장미가 교감하는 순간이다. 그렇다. 장미가 온 힘을 다하여 피워놓은 꽃을 내 안으로 받아들이고 그 뜻을 알아보는 과정이다. 보고 느끼면서 나와 함께하는 순간을 맞는다. 책상에 조용히 앉아 창 너머로 한가롭게 흐르고 있는 뭉게구름을 보고 있다. 눈을 집중하여 보고 있으면 그 구름이 나에게 친숙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속삭인다. 왜 나를 불러냈냐고. 그러면서 감정의 교신이 일어난다. 한시도 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지 않는 변형의 연속에서 내 마음의 변화와 닮았다고 여기나, 원래 변화하는 것이 우리가 접하는 모든 자연물의 본성이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 다시 내 마음속으로 나를 끌어들인다. 

갑자기 오늘 할 일이 떠오른다. 그렇게 중요한 일도 아니나 내가 해야만 하는 일, 그것을 하기 위해서 지금 움직여야 하는데, 마음은 저 푸른 하늘을 헤매고 있으니. 눈에 보이는 주위에 마음을 뺏기면서도 나 자신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나, 물을 손으로 쥐듯 한시도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마음, 잡으려야 잡을 수 없는 하늘의 저 구름 같은 상태다. 

시원하고 상쾌한 가을바람이 살갗에 닿는 기분은 내가 생명체임을 느끼고 즐기는 순간이기도 하다. 생명을 갖고 느낌을 육체로 감지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실감한다. 이 느낌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자신인가, 내 밖 그 어디인가.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모든 감각은 나로부터 시작되지만, 그것이 진실, 그 실상은 내 감각과 꼭 일치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마음으로 청개화성(聽開華聲)이라 했던가. 연꽃 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우리 정신력은 시공을 초월한다는데, 나 같은 범인은 꿈도 꾸지 못할 영역, 가끔은 명상을 통하여 무아(無我)지경에 이르면서 나를 포함한 모든 것을 놓아버리는 순간을 즐기고 싶은데, 도력(道力)이 미치지 못함을 탓하는 수밖에, 지금의 기분이 내 행동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경지에 이르는 것, 내공은 과연 성인들의 전유물인가. 일반 범인은 넘보지 못하는 영역이라고 치부해버리면 조금은 아쉽다. 그래도 육체가 변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그리고 편안하게 보면서 순리대로 받아들이고 억지 부리지 않는 것이 훨씬 매력 있고 중후한 멋을 풍긴다.

외형의 변화는 정신적인 뒷받침이 필수임을 알고 있다. 나이 먹으면서 육체의 변화는 어쩔 수 없으나, 지혜의 축척은 각자 나름의 노력으로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내 내면을 관찰하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불교에서는 탐ㆍ진ㆍ치(貪瞋癡)라고 했던가. 탐욕, 성냄 그리고 어리석음이라는 범인의 굴레, 이 속박에서 벗어나야 인간이 가진 기본 성정을 털어내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고 가르치는데, 육체를 갖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을 내 바람대로 이겨내기는 그렇게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어려워도 그 헛된 욕심을 억제하고 나를 다스리는 삶을 이어나가고 싶다.

풀을 깎는 작업현장을 지나가본 적이 있을 것이다. 표현하기 어려운, 잘라지는 풀이 내는 독특한 고통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풀은 자기 살이 잘려나가는 아픔을 안고 있으나, 그 아릿한 향으로 자기 고통을 조용히 알리고 반항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상처도 풀이 내는 고통의 향처럼 아픔을 안고 조용히 내부로 삭히는 마음가짐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여러 굴곡진 삶의 여정을 지나면서 온갖 경험을 하고 지금도 그것을 기억하고 있지만, 나무가 서둘지 않고 조금씩 성장하듯 우리도 성장통을 통하여 더 깊은 지혜를 얻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언젠가 내 껍데기가 활동을 마감하는 날을 하염없이 기다리기보다는 순리를 그대로 받아들이며 여일(如一)한 마음으로 오늘을 맞고 싶다. 지금의 여러 어려움을 우환여산 일소공(憂患如山 一笑空)으로, 얼핏 가벼운 웃음으로 날려 보내려 한다. 우리 몸은 하드웨어이고 껍데기이다. 진짜 주인은 마음이다. 이 마음을 잘 다스리려 노력하며 살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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