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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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정은 부모와 자식들로 구성된 가장 기본인 소단위 집단이다. 할아버지, 할머니도 그들의 아들딸이 있고, 다시 아들딸은 그들이 낳은 자식으로 구성된다. 이런 소집단 중 집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위상은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한 가정에서 자식들이 부모를 대하는 데 있어 감정이 다른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대부분 자식은 엄마와 더 밀착되어 있고, 아버지는 특별한 일 외에는 상의의 대상에서 밀린다. 이런 현상에 충분히 이해는 간다. 

세상에 태어나기 전 어머니와 일심동체로 10개월을 함께했고 자라면서도 거의 모든 수발을 어머니가 전적으로 담당했으니 그 정이 어디 가겠는가. 수유기는 어떤가. 하루에도 어머니 젖이 없으면 생존할 수 없으며, 성장하면서 어머니는 자식이 필요한 세세한 것까지 자상스럽게 챙겨 주고, 가장 중요한 음식을 매일 준비하여 건강을 지켜주는 것은 엄마의 중요한 몫이다. 이 시대에 들어서는 학교생활은 물론이고 과외 수업의 선택, 이어지는 특활까지 거의 어머니 몫이 되고 있다.

학원가를 지나가면서 보면 자동차로 아이들을 이동시키는 것은 거의 어머니의 역할이고, 자식들도 이런 보살핌에 전연 낯설어하지 않는다. 그 중요한 입시는 어떤가. 초, 중, 고등까지는 거주지에 따라 강제 배분을 하니 선택의 폭은 좁아지며, 학군에 따라 학교가 배정되는 제도이니, 8학군이 인기의 대상이고, 기회가 닿으면 이 지역으로 이사하거나 주민등록지를 옮기는 것은 일반화된 현상이 되었다. 애꿎게 학군 때문에 위장전입으로 고위직 선임에서도 밀려나고,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는 대상이 되기도 한다. 

청문회에서 답변 중 백미는 자신의 주민등록이 옮겨진 사실을 알지 못했었다는 답변이었다. 전적으로 아이들 교육을 어머니에게 맡긴 아버지의 처지는 십분 이해하나, 그렇다고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는 없으니, 애꿎게 자기에게 온 천재일우의 고위공직 지명에서 밀려나는 불명예와 사회의 지탄을 받는다. 그래서 고위직 공직에 꿈이 있는 예비 주자들은 처음부터 이런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철저히 수신제가(修身齊家) 한다니, 꿈은 이루어지리라 믿어본다.

살아가면서도 아이들이 제 엄마와 아빠를 대하는 자세는 크게 다르다. 자식들이 세세한 고민과 일거리 등의 상의는 거의 모두가 엄마 몫이고, 아버지는 그냥 들러리, 혹 재정 지원이 필요할 때는 엄마를 통하여 간접 요구가 들어온다. 아들과 딸 구분 없이 이런 관계는 계속되고, 결혼 후에도 별반 차이가 없다. 자식들의 소식은 제 엄마의 입을 통해서 간간이 듣는 것이 대부분이다. 옛날 가부장 제도에서도 가족 분위기에서는 상당히 다른 것 같지만, 그 실은 그때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자식들의 옷가지, 음식, 등교준비 등은 온전히 어머니의 몫이고, 모든 뒤치다꺼리도 어머니가 맡았다. 

그래도 과거 교육에 있어서는 아버지의 몫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여겨진다.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도 아들들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교육의 기본뿐만 아니라 공부하는 방법까지 세세히 글로 써서 보내준 것은 자식들 교육에 관심의 정도를 알 수 있다. 우리 민족이 존경하는 영웅인 이순신 장군께서도 아들 사랑이 묻어나는 서찰이 수록되어 있어 교육에 있어서는 옛 아버지들의 역할이 크게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예외적으로 신사임당은 이율곡 교육에 깊이 관여했다는 것이 곳곳에서 보인다.

지난 세기 조선조 전체를 조망해 보면, 자식 교육에 아버지가 깊이 관계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때는 교육에 있어 남녀 차별이 심하여 특수한 경우를 빼고 여성 교육에 대해서는 기록된 것이 많지 않다. 지금에 이르러 자식들의 대소사는 대부분 자기 어머니와 상의, 결정하고, 가끔 아내를 통하여 간접으로 소식을 전해 듣는 처지가 되었다. 

일상적으로 아버지는 밖으로 나가 가정을 유지할 재원 마련에 집중하고 사회활동이 많은 편이니, 자연 가정일에 별로 신경 쓰지 못하는 것이 이전까지 일반적인 형상이었으나, 근래 들어 이런 양상도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곳곳에서 실감하고 있다. 유치원 부모 초청 행사에 아버지가 나가는 경우가 늘고 있으며, 애들 학교생활에도 상당히 깊게 관여하는 예들을 보고 있다. 심지어 공식적인 행사 불참 이유를 자식 유치원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참석하지 못한다고 얘기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은 분위기다. 그러나 “나 때” 아버지들은 자식들과 대화는 극히 드물었고, 아이들 문제는 어머니 몫으로 치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것이 전연 이상하지 않은 우리 가정 풍조였다.

어느 날 자식에게서 전화가 왔다.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맞아 아버지가 묻는 말, “웬일이냐?” 대답, “아버지와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아버지 대답, “너 지금 술에 취했냐?” 그래 아버지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들과 언제 통화했는지가 기억이 나지 않고, 모든 것은 제 엄마를 통하여 들었으니 이상할 수밖에. 이제 아버지의 역할도 크게 달라졌지만, 그래도 자식들은 엄마와 가깝다. 그게 아비로 봐서는 편할는지 모르겠으나, 가끔은 서운한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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