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29)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에 바탕해 가장 절실하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어
고난과 어려움에서 힘겹게 경험하며 느끼고, 마음으로 되새기는 과정 거쳐야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 단계를 높일 수 있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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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시대에 접어들어 다양한 정보가 쉽게 손안에 들어오고 어느 때나 간단한 조작으로 꺼내 쓰는 편리한 시대에 살고 있다. 즉 정보가 지식으로 축적되고 그 지식이 개인의 일상생활에서 폭넓게 쓰이고 있다. 과연 이들 정보와 지식만으로 우리가 사람답게 살아가는 조건을 모두 충족시켜 삶을 만족스럽게 영위할 수 있겠는가. 결코, 아니다. 정보와 지식은 관찰이나 측정을 통하여 수집한 자료를 실제 문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정리한 것, 또는 그 자료라 일컫는데 그냥 밖으로 나타난 현상을 수집하여 기억한 것들이다. 

이 사회에는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많은 지식을 가진 사람은 넘쳐난다. 지식은 책이나 전자매체, 선지자, 선생을 통하여 전달되고 그 정보를 흡수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 지식화한다. 교육이나 입시과정에서 필수로 채택한 각종 시험평가는 각자의 지식 정도를 가늠하는 수단이다. 평가를 통하여 지식의 수준은 쉽게 수치화할 수 있으나 평가하는 대상의 정신영역의 능력은 완전히 다른 차원이 된다. 그래서 진정한 교육은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정신영역인 지혜를 갖추도록 인도하는 과정이고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로 승화하여 내 것으로 만들어야 인간으로서 품격을 지니게 된다.

지혜란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 사리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처리하는 정신적 능력이다. 지혜는 지식과 다르게 남에게 전수받을 수가 없어 오롯이 자신의 노력으로 내면에 쌓인다. 물론 지식이 바탕이 되겠지만 그 지식을 삭히고 소화하여 내 것으로 만들고 내 정신영역에 스며들게 하여 나만의 것으로 만들 때 지혜화 하여 내면에 숙성되면서 축적된다. 지식은 유형적인 것이나 지혜는 무형의, 순전히 사람의 정신영역에 바탕을 둔다. 예를 들면 의사가 행하는 치료는 자신이 가진 의료지식을 바탕으로 한 물리적 현상만을 개선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반면 치유는 치료의 단계를 넘어 정신적인 문제까지를 밝히고 이를 보듬는 과정이다. 그래서 가장 윗단계의 의사를 심의(心醫)라고 하지 않는가. 특히 각종 만성병 환자의 경우 치료의 단계를 넘어 치유로 접근해야 육체적 교정과 정신의 치유가 가능하다. 아무리 지식이 풍부해도 지혜의 단계를 높이지 않으면 물리적 치료로는 한계가 있다.

우리 사회는 지식의 정도는 여러 방법으로 가늠할 수 있으나 지혜의 정도는 측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모든 시험에서 지식의 정도는 쉽게 점수화할 수 있으나 지혜의 영역을 나타내는 숫자는 아직 보이지 않고 앞으로도 결코 정립되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각자가 품고 있는 지혜의 영역은 객관적으로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각 종교에서 수행하는 명상, 기도, 참선 등은 물론 입문하는 과정에서 시작하는 방법, 절차 등은 지식으로 배울 수 있지만 진정한 정신세계에의 몰입은 순수하게 자기 몫으로 남는다. 즉 깨달음은 정신영역이고 지혜의 영역을 넓히는 절차이기 때문이다. 

지혜는 삶의 시간과 비례하는 것으로 성현들은 말씀하였다. 공자님도 50이 되어야지 지천명(知天命)의 경지에 들고 60이 되어서 이순(耳順)이라고 하여 모든 것에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상태, 즉 나름대로 세상 이치를 판단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다고 생각하였다. 지혜는 지식을 바탕으로 한 경험으로 겪는 시간의 축적이요 정신적으로 이치를 통합하고 통섭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고와 사유의 폭이 넓고 깊어지며 내 주위와 무한 신비를 갖춘 자연에 대한 경외심도 한층 두텁게 된다. 내면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외부의 요인에 의해서 흔들리지 않는, 중심이 서게 된다. 이런 정신적인 안정감은 지혜의 산물이고 지혜가 바탕이 되었을 때 삶은 풍요로워지고 치우치지 않고 평정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런 경지에 이르면 진정으로 흔들리지 않는 마음의 행복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공자님이 생존해 있었던 기원전 500년경에는 인간의 평균 수명이 지금보다는 훨씬 짧았을 터이니 나이 50이나 60에 이르는 경우가 많지 않았고 그 나이에 이르는 사이 세간의 굴곡을 더 많이 겪었으리라 짐작된다. 지금 현실은 어떤가. 먹는 것이 안정되어 있고 주거환경이 안락하며 사회여건도 안정된 상태, 정신적으로 나를 단련할 기회가 별로 많지 않게 되었다. 사람은 자기가 경험한 것에 바탕하여 가장 절실하게 정신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고난과 어려움에서 힘겹게 경험하면서 느끼고 마음으로 되새기는 과정을 거쳐야 흔들리지 않는 지혜로 단계를 높일 수 있을 것이다.

지혜를 바탕으로 해야 흔들림 없는 주관이 형성되고 행동에도 거침이 없다. 지혜는 끊임없는 사색과 자기 정신관리를 통해서만 이룰 수 있다고 여겨진다. 지혜를 갖춘 경지에서는 안정되고 평화로우며 결코 치우치지 않는 사고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매일 접하는 일상생활은 나에게 지혜를 갖추도록 자극을 주고 기회를 주는데도 우둔하며 깨닫지 못하는 아둔한 삶의 연속 선상에 있다고 느끼고 있다. 아직도 삼독(三毒)인 탐진치(貪瞋癡-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으니 생을 마감하기 전에 삶의 참뜻을 아는 경지에 이를 수 있을는지 조바심이 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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