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하며
신뢰가 바탕이 되는 도구가 됐을 때 안정된 사회 이룰 수 있어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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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쓰는 우리말에 “어” 다르고 “아” 다르다고 한다. 말을 할 때 사소한 차이가 전달하려는 뜻에서 크게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말을 할 때 지극히 조심하라는 경구이기도 하다. 더 친근한 예가 “말 한마디에 천 냥 빚도 갚는다”는 속담이 있는 이유다. 말은 감정이 표출되지 않는 글로 쓴 것과는 다르게, 순간의 생각이 배어 있어 같은 말이라도 환경과 말하는 사람, 그의 억양, 속도 등에 의해서 의미하는 것이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한 글자 차이로 그 안에 품고 있는 뜻이 완전히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다. 좋은 예가 “일도 잘한다”와 “일은 잘한다”이다. 느낌은 어떤가. 앞에 예는 전체를 긍정으로 표현하며, 그 뜻으로 미루어 볼 때 다른 일도 잘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뒤에 말은 품는 뜻이 다르다. 그는 일은 잘하나 다른 업무는 신통치 않은 것을 은연중 뜻하며, 이번 한 일이 예외적이고 전체를 부정하는 뜻으로 전달하는 예이다. 단지 “도”와 “은”의 차이인데 한 사람을 전체 긍정으로 평가하는가 하면, 반대로 이번 일을 예외로 하고 다른 업무를 신통치 않다는 것을 의미하며 선뜻 전체를 받아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뜻하고 있다. 언어의 묘미이다. 특히 말하는 사람의 감정에 의해 말의 뜻은 그때그때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말을 가장 잘 구사하는 사람은 정치인으로, 대중의 마음을 얻어야 선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1863년 11월 9일, 미국 16대 대통령인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한 연설은 150여 년이 흐른 지금에도 민주주의의 기본으로 많은 사람에 의해서 인용되면서 그 뜻을 길이 되새기고 있다. 대중연설에서의 의미와 개인 간 대화에서 전달의 강도는 다르지만, 말로 자기의 의사를 전달하려는 기본 목적은 다름이 없다.

말은 자기 인격의 표현이라는 말에 우리는 대부분 공감한다. 그러나 말을 번지르르하게 하나 실속이 없고, 그 말을 남을 속이고 유혹하려는데 사용하는 경우도 종종 접한다. 청산유수같이 말 잘하는 사람을 대할 때 경탄하면서도 진정으로 그 말의 가치를 그대로 인정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다. 말을 거침없이 잘하는데 실속이 없고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다면 우리는 믿음을 줄 수가 없다. 말 중에서 상대의 공감을 받을 수 있고 같이 공유할 수 있는 말의 뜻은 신뢰를 갖게 하고 말의 무게를 무겁게 느낄 수 있으며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한다.

지구 모든 생명체 중 인간만이 말로서 의사를 정확히, 폭넓게 전달하고 그 의미를 공유할 수 있는 동물이다. 물론 동물도 자기들만 이해하는 소리는 있지만, 그 소리가 언어로, 말로 인식되지는 않는다. 단지 경고나 친근함을 나타내는 수단과 동료를 부르는 소리 등을 많은 경험에 의해서 인간이 알아가고 있다.

말은 한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고 그 뜻을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며 이 말에 의해서 인류는 발전하였고 지금도 가장 소중한 서로 간 소통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지구상에는 수백에 이르는 언어가 있고 민족이나 부족에 따라 고유한 말이 있으며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는 가장 좋은 매체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 민족이라 하더라도 넓은 땅덩어리를 갖고 있는 나라의 경우 서로 다른 언어가 통용되고 있다. 좋은 예로 거대국가인 인도와 중국을 예로 들을 수 있다. 적게는 몇 개, 혹은 수십에 이르는 언어가 통용되고 있으며 한 국가 안에서 서로 다른 언어를 쓰기 때문에 국민 간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 공용어를 선택하여 사용하고 있다. 인도의 경우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중국의 경우 광둥어가 공식 언어로 채택되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언어의 다양성에서 뒤지지 않는다. 지역별로 고유한 언어가 정착되었고 면면히 이어오면서 정신문화를 형성하였다. 제주도 토속어는 육지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렵고 경상도와 호남인의 말은 타지인에게 정확한 감정이입이 쉽지 않은 경우가 있다. 이제 학교 교육이 평준화되면서 표준말 사용이 보편화됨에 따라 고유한 토속어가 사라지고는 있지만, 아직도 지역별 토속어는 그 지역 사람들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하는데 가장 적절한 언어로 인식되고 있다. 토속어가 갖는 독특하고 고유한 감정은 그 언어를 구사하는 집단에게만 그 뜻이 정확히 전달된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로 자리 잡는 데는 사용하는 인구수와 국력이 뒷받침되었고 이 언어를 통하여 모든 상행위나 국제간 교류가 가능하기 때문에 모국어와 함께 제2의 언어로 세계 사람들이 받아들이고 있다. 

말은 사람이라는 것을 상징하는 수단이기는 하지만, 말을 통하여 나를 알릴 때는 그 말에 책임을 지는 풍토가 필요하다. 말이 그 사람을 믿을 수 있는 수단이 되어야 하며, 신뢰가 바탕이 되는 도구가 되었을 때 우리는 안정된 사회를 이룰 수 있다.

말은 양날의 칼이다. 옳게 쓰면 나와 더불어 주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나 나쁘게 사용하면 최종적으로 본인은 물론 주위 사람들에게도 큰 피해를 주며, 더불어 살고 있는 이 사회에 해악을 끼친다. 더욱 사회 지도층에 있는 사람들이나 말의 영향이 큰 정치인의 말은 실로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근래 정치인들의 믿음을 주지 못하는 말은 모두를 안타깝게 한다. 불행한 일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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