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상대가
중요하며 귀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74)

어린 시절을 지낸, 내 젊음을 품어 함께하며 나를 길러준 고향은 마음속에 든든히 큰 자리를 차지하며 변함없이 정신적인 듬직한 바탕이 되어왔다. 살면서 어렵고 무거운 짐이 어깨를 누를 때 그 평화롭던 어머님이 계신 고향을 생각하면 평안함과 따뜻함이 가슴 밑으로부터 솟아오른다. 그리고 새로운 힘을 얻어 다시 뛸 수 있는 에너지를 재충전한다. 그 고향이 이제 마음속에만 있는, 현실에서는 너무나 달라져 버린 것에 아쉬움과 상실감이 겹겹이 다가온다. 

지금도 머릿속에는 쥐똥나무와 흑백나무로 둘러쳐진 생 울타리와 중간에 우뚝 솟은 벽오동나무, 쭉나무(가죽나무)의 의젓한 모습이 그려지고, 쭉나무의 순이 한 뼘쯤 자랐을 때 장대에 낫을 묶어 어린 나무순을 잘라 삶고 말려 일 년의 반찬거리를 만들었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른다. 다 큰 새끼 새가 둥지를 떠나듯 어느 날 당연히 다시 올 것으로 생각하며 이어질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고향 역에서 열차를 탔던 그때, 그 순간이 고향과 멀어지는 갈림길의 시간이었다는 것을 전혀 알지 못하였다. 

한참 세월이 흐른 어느 날 그렇게 훌쩍 떠난 내 젊은 날이 가슴속에 알알이 배어 있는 고향 집에 들어서는 순간, 그 친숙하고 머릿속에 남아있던 모든 것이 바뀌어 버린 환경에 너무나 당황스럽고 어색한 감정에 젖어 든다. 생나무울타리는 시멘트 블록으로 바뀌었는가 하면, 그 우람했던 나무들은 베어져 남은 흔적도 찾기 어렵고, 우리 형제 자매에게 탐스러운 열매를 안겨주었던 대추나무는 생명을 다한 지 오래란다. 더구나 내가 씨를 받아 가을에 땅에 묻어 놓고 정성 들여 싹을 틔워 모종을 키워 심어 놓았던 그 탐스러운 살구를 안겨주었던 나무는 나무 밑동만이 나를 잊지 않고 아린 인사를 전한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여 변화하는 과정이고, 그 변화의 흐름에 나도 끼어 있는 상황인데 가버린 것에 대한 기억을 그냥 떨쳐버리기에는 아쉬움으로 남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내 머릿속 영상인가 보다.

실로 많은 시간이 지난 후 기억에 그려진 옛 흔적을 찾기 위해 고삿 이곳저곳에 혹시 남아있을는지 모를 대상을 마음속 영상과 맞춰보는데, 퇴색한 빈집이 된 옆집 담벼락이 눈에 띄네. 그렇지 저기서 옛 친구와 술래잡기를 하면서 내가 숨었던 눈 익은 구석은 그대로 남아있어!

눈에 보이는 자취는 아쉽고 변화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만, 더욱 당황스러운 것은 지나는 동네 사람이 외지사람인 것 같은데 “누굴 찾으세요?”하고 묻는 말에 흠칫 놀라 내가 정든 내 고향에 와서 낯선 이방인의 취급을 받는다. 어떻게 나를 설명할 수가 있겠는가. 묻는 젊은이의 아버님이나 내가 알 수 있을는지. 고향 방문은 항상 이런 미련과 아쉬움을 안고 떠나지만, 언젠가 또다시 가보고 싶고 가야 할 영원한 내 마음의 안식처이다.

우리 인생의 삶도 비슷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수십 년 봉직했던 직장 그리고 그 건물, 지금도 자리를 지키고 있을지 모를 내 손때 묻은 책상, 그냥 내 머릿속에서만 남아있지만, 그런 것들이 내 삶의 앞 여정에 남아 마음속에서 여울지면서 내 기억의 보고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원천이 되나 보다. 직장생활을 오래 했던 건물 앞에 심어 놓았던 나무는 묘목의 모습에서 제법 큰 굵직한 제 모습을 갖추었고 세월이 지나는 시간만큼 나이를 먹었으니, 이 또한 자연의 흐름에서 받아들여야 할 필연적인 변화이려나. 

이 세상에서 어느 것 하나 변하지 않는 것은 없겠으나, 한순간 담아놓았던 내 마음속 영상과 비교하여 달라짐에 조금은 아쉬움과 미련이 남은 것은 인간의 속성이 아닐까 여겨진다. 지나온 기억에서 만나고 헤어지는 인간관계에서 오늘 만나고 얼굴을 대하는 상대가 중요하며 귀한 존재라는 것을 다시 느낀다. 그 상대가 바로 내 기억에 겹겹이 쌓이고 나의 추억의 보고에 담기기 때문이다. 물질적인 영상보다도 인간이 더불어 같이 했던 정신의 역사는 결코 잊힐 수 없을 것이다. 고향에서 타인 취급을 받아도 내 마음은 하나도 다름이 없다는 것을 다짐해 본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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