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동반자 수많은 곤충, 서류... 다시 우리 곁에 불러들이고 
삶을 같이하는 평화로운 지구 만드는 데 노력해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75)

가을의 첫머리, 뜨거운 태양이 조금 열기를 멈추고 어둠이 깃들 때 초가집 대나무로 엮어 만든 창문을 장식한 창호지가 여유롭게 내준 틈새로 호롱불이 비친다. 이 불빛이 한지 틈새를 비집고 나오면 은은한 황금색 물결이 인다. 이 색을 닮아 아침에는 돌담에 의지한 호박이 어제저녁 눈여겨 봐둔 호롱불, 그 은은한 빛깔의 꽃을 피운다. 탐스러운 몸통과 틀스러운 날개를 뽐내는 호박벌이 분주히 이 꽃 저 꽃에 인사하며 인사 값으로 주는 꿀같이 단 선물을 챙겨 나른다. 

가없는 자연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나도 이 순간 존재가 흐려져 큰 흐름으로 한 몸체가 된다. 마음이 평화스럽다는 분위기는 이런 것을 말할 것이다. 한낮, 먹구름이 갑자기 일고 세찬 소나기가 소리치며 달궈진 흙 마당에 뿌려지면, 빗방울에 놀란 흙이 튀어 오르고, 전에도 맡아봤던 익숙한, 진하고 쌉쌀한 흙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소나기가 지나고 난 후 그 시원하고 상쾌함이란. 작위가 머물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지극한 선물이고, 이것이 스스로 그러한 자연이리라.
 
이삭을 자기 속에 안고 있는 통통한 벼 줄기 사이로 부지런히 뛰어다니며 배를 태우고 있는 메뚜기는 먹이 짓을 잠깐 멈추고 빠르게 날갯짓을 하며 자리를 비켜준다. 이 속에서 메뚜기를 먹이로 삼는 개구리나 뱀은 삶을 같이하는 동무이자 천적이 된다. 이같은 먹이사슬이 이어져야 건강한 자연의 고리가 만들어진다. 해 뉘엿거리면 철 이른 고추잠자리가 아름다운 그들 나름 본능의 춤을 추며 하늘에 아름다운 수를 놓는다. 그 위에 빠르게 나는 제비는 엄마를 기다리는 새끼들을 위하며 잠자리를 낚아채어 제집으로 향한다. 시골 들녘에서 매일 일어나는 낯익은 풍경이다.
 
못줄을 놓아 손으로 심었던 벼가 이제는 이앙기로 사람의 손길이 가지 않는 공산품같이 되어가고 낫질이 필요 없는 가을걷이 과정은 벼에 대한 애착의 강도가 달라지고 있다. 더욱이 잡초와 벌레 그리고 식물에 붙는 병들을 없애기 위하여 시시때때로 무작위로 뿌려대는 농약은 우리 농촌의 생태계를 완전히 바꿔버렸다. 기술 발달의 변화이긴 하지만, 인간이 수천 년 이어 오는 자연의 습성을 단 100년도 안 된 사이에 이렇게 바꿔 놓아 버렸다니 아쉬움과 두려움이 같이 온다. 

메뚜기 등 곤충이 없어지니 개구리나 뱀 같은 파충류가 흔적을 감추었고 제비도 떠났다. 정다웠던 따오기며 저어새 등도 종적을 찾기 어렵다. 수천 년 이어 왔던 농촌 들녘의 풍경을 살벌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 흔하게 듣던 모심기 전 개구리의 우렁찬 합창은 기계 녹음에서나 들을 수 있고, 귀에 익은 종달새 등 여러 새소리는 옛 추억이 되었다. 

어찌 보면 적막의 농촌 들녘, 과연 이런 현상이 인간이 지향하는 자연의 모습일까.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자연은 한 종의 생물이 독점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공유하면서 같이 살아야 건강한 삶이 이루어진다. 메뚜기가 뛰어다니고 잠자리가 하늘을 나는 정다운 모습에서 인간도 건강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깊은 생각에 빠진다.
 
그런데 요사이 희망적인 현상을 가끔 본다. 여행하다 보면 모심은 논이나 한창 자라고 있는 볏논에서 해오라기를 심심치 않게 보게 된다. 논에 그래도 무엇인가 살아있는 먹이가 있다는 증거다. 너무나 반갑다. 야산 한편에 지어놓은 민가에서는 저녁에 소쩍새가 울고, 꿩 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더 반가운 일은 몇 년 전까지도 흔적을 찾기 힘들었던 꿀벌이 꽃을 찾아 이 꽃 저 꽃 날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꽃과 벌이다. 한쪽이 빠지면 너무나 슬프다. 짝을 잃어 외로워 보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탐욕에 의해서 각종 농약이 자연에 미치는 끝없는 해악은 곤충과 새의 멸종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그 폐해는 결국 포식자의 정점에 있는 인간에게 온다는 것을 지금 보고 있다. 환경오염은 기후를 변화시키고 동식물의 변이까지 이르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농약을 개량해야 한다. 수확을 탐하기 위해서 별수 없이 특정 대상을 억제할 필요는 있으나, 무작위로 생명체를 멸종시키기보다는 선택적으로 억제하는 방법이 시급히 연구되어야 한다. 발전된 생물공학 기법을 동원하여 대상을 정해 관리하는 맞춤형 방법이 연구되어야 한다. 특히 미생물을 이용한 천적의 기능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
 
오랫동안 이 자연의 동반자, 수많은 곤충, 서류, 들짐승들을 다시 우리 곁에 불러들이고 삶을 같이하는 평화로운 지구를 만드는 데 노력해야 한다. 더 늦기 전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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