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구름에 가린 햇볕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따뜻함을 기대하는 여유를 보이는 계절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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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내 곁으로 슬그머니 다가와 조금 노닐더니 갈 채비를 하는 눈치다. 아쉽다. 이 나라에 찾아오는 계절마다 서로 다른 느낌이 들지만, 가을은 유독 사람들에게 감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여름 불볕 같은 태양의 열기는 한풀 가시고 그의 곁으로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들도록 햇볕이 따사로워진다. 

선뜻선뜻 부는 가을바람은 물 먹은 여름의 축축한 느낌과는 확연히 다른, 다시 맞고 싶은 상쾌함을 안긴다. 한창 알찬 열매를 맺고 있는 벼 이삭을 쓰다듬으며 내가 떠나야 하니 어서 속 알을 채우라고 독촉하고 과수원 사과 알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색을 내주고 속을 채워 제 꼴을 갖추게 도와주고 있다.

가을은 소리 없는 하늘의 울림이 가슴으로 읽히는 계절이다. 가을은 올 때 미적대지 않는다. 어느 날 하루, 아침에 일어나 이마에 와 닿는 바람이 계절이 바뀌었음을 선뜻하게 알려준다. 겨울이 끝나고 찾아오는 봄과는 크게 다른 바뀜의 모습이다. 그렇다. 봄은 올 듯 말 듯 찬바람을 뒤에 끌고 망설이면서 애를 태우나, 가을이 오는 소리는 눈과 귀 그리고 온몸으로 한꺼번에 느낌으로 크게 다가선다. 

어느 날 그렇게 여름 한낮의 열기를 노래했던 매미나 쓰르라미의 귀에 익은 음률이 멎으면 여름이 끝났음을 알리고, 이어서 가을의 소리, 귀뚜라미와 여치가 자기 소리로 귓전의 영역을 차지한다. 봄은 여성의 계절이고 가을은 남자에게 제철이라는 속뜻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인류 탄생의 바탕인 여성은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후손을 이어갈 생명의 여건을 마련하는 봄이 제격이다. 한편, 결실을 거두어 이 산물로 자손을 보살피고 살찌우는 역할은 남자의 몫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계절의 특성에 맞게 여성은 봄을 타고, 남자는 가을에 준비하기 위한 감정의 기복이 심한가 보다. 

가을의 소리는 자연의 울림으로 들리지만 많은 사람의 마음속에서도 공명현상으로 느끼는 것이라 여긴다. 계절의 변화를 느끼기 어려운 도시의 소음은 계절의 소리를 없애버린다. 자연의 변화를 느끼기보다 인위적인 환경의 변화에 더 익숙한 도시인의 감정은 무디어져 가슴 속 감정의 우물을 들여다볼 여유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가을은 밝은 보름달을 있는 그대로 품어 안을 수 있으며 달빛을 조심스럽게 밟아 볼 수 있는 여유로움의 터전, 시골이 제격이다. 소슬바람을 맞는 정취는 나 홀로, 조용하면서도 소음 없는 한적한 자연 속이 제격이다. 풀숲에 맺힌 아침이슬이 바짓가랑이에 묻어나는 찬 경험을 해봐야 오는 가을을 제대로 느끼는 것이다. 가을은 구름에 가린 햇볕을 조용히 기다리면서 따뜻함을 기대하는 여유를 보이는 계절이다. 말리려 널어놓은 볏가리 한쪽에 자리하고 해바라기를 하며 시간을 잡는 연습을 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다시 구름에 가린다 해도 또다시 햇살이 비치리라는 기대와 바람을 여유롭게 즐긴다. 

이제 가을이 다음 계절로 자리를 넘기려 고개를 넘어가는 숨찬 소리를 내는 것도 가을이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또 다른 풍경이다.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달라지는 내일을 다시 기약하는 가을의 정취에서 이들이 움직이는 소리를 듣는 것은 내 마음의 여유에서만 느낄 수 있다. 여기에 가을의 향기, 국화의 청순하고 소박한 자태와 오묘한 향기가 겹치면 더욱 지나는, 소리 없는 가을의 소리를 즐길 수 있다. 

계절의 소리는 각기 다르다. 봄은 사뿐사뿐 오고 여름은 투박하면서 요란하고 진하다. 가을은 바람을 닮아 가볍고 경쾌하면서 가슴에 파고드는 아쉬움의 소리로 답한다. 겨울은 가다가 멈춤의 정적을 준다. 가을의 소리는 자연에서만 느낄 수 있으나 이 울림은 마음속으로 잔잔히 전달된다. 자연은 풍요로우나 마음은 쓸쓸함으로 무언가 채워지기를 기다리는 계절이 가을이다. 

자연 속에 먼지보다도 작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들이 하나 되어 같이 공감하는 순간은 결코 잊을 수 없다. 탐스러웠던 오동잎이 뚝 떨어지는 소리, 댓잎이 서로에게 나누는 대화, 어느 것 하나 가을 소리에서 빼놓을 수 없다. 그리고 그 푸르렀던 가로수 잎이 길바닥에 떨어져 바람에 날리는 스산한 소리, 이들 가을의 소리를 조용히 가슴에 담는 요즈음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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