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고 친근한 좋은 냄새를 통해
오랫동안 잊고 있던 추억 되살리기도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72)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매일 아침 오가는 길가, 건물 옆 비좁은 공터에 장미 한그루가 실하게 사계절 모습을 달리하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장 아름다울 때는 한겨울을 지나 봄에서 새싹을 보여 주면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계절에 탐스러운 꽃을 피울 때이다. 

아마도 관리하는 주인이 장미의 성질을 잘 알아 미리 전지를 해주어 잘린 줄기에서 새싹이 밀고 올라와 연약한 잎을 내밀기 시작하면 내 관심의 대상이 된다. 하루가 다르게 잎이 커지면서 쑥쑥 자라면 며칠이 지나 꽃망울이 보인다. 이때부터 꽃이 될 때까지 일주일은 넘게 걸리나 보다. 

내가 이 장미에 쏟는 관심은 애착 어린 눈길을 주는 것과 함께 꽃봉오리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그 여린 부분에 진딧물이 꼬이기 시작하는데 이를 퇴치하는 일이다. 이 한적한 도시 구석에서 외롭게 자라는 장미 어린순에도 어김없이 진딧물이 찾아와서 함께 살자고 하니, 생명체의 신비를 또 느낀다. 

진딧물에게는 좀 안되었지만, 조심스레 진딧물을 손으로 눌려 더 이상 장미 순을 괴롭히지 못하게 한다. 서너 송이에서 진딧물 퇴치 작업을 하다 보면 손가락에 황색 진딧물 체액이 잔뜩 묻는다. 진딧물은 스스로 이동이 자유롭지 못하여 꽁무니에서 내는 체액을 개미에게 주는 공생 관계로 개미의 힘을 빌려 이동한다는데, 개미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니 나 없을 때 이동을 도왔는지는 알 수가 없다.

드디어 장미꽃이 수줍은 듯 꽃봉오리를 살며시 열 때가 되면 내 후각을 총동원하여 장미꽃 향기를 맡는다. 진하면서도 지나치지 않는 향, 귀족의 자격을 갖춘 고상함으로 나를 환상의 세계로 인도한다. 향수로서 최고의 자리를 차지할 충분한 자격을 갖추었다. 장미의 향은 아침이 가장 강하고 서서히 농도가 약해지다가 다시 아침이면 향을 되찾는다. 

단단하던 봉우리에서 꽃잎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하여 매일 벌어지는 꽃의 모습을 관찰하면서 시간이 지나감을 느낀다. 꽃 한 송이가 환갑을 지나고 나면 옆에 있던 가지에서 다른 젊은이가 고개를 내밀고 앞 선배의 자리를 차지한다. 역시 장미꽃은 너무 진하지 않은 붉은색, 사람의 눈길을 잡을만한 매혹적인 색깔, 그 색이 향과 어울려 더 아름답다.

이렇게 여름 내내 한 송이씩 한 송이씩 나를 맞아주고 새로 피는 꽃에서 신비의 향긋한 향기를 맡으려 조심스레 코를 대면서 감사의 인사를 마음으로 전한다. 아마도 내 마음이 전달되는지 이어지는 개화는 추위가 와서 쌀쌀할 때까지 계속된다. 조금 추워지면 어떻게 꽃을 피울까 하고 걱정하나 장미 향은 이때도 내 감각을 깨우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잎을 다 떨어뜨리고 내년을 기약하면 나와의 아침 만남도 끝이 난다. 가끔 남아있는 줄기를 보면서 내년까지 이 추위를 잘 견디라는 당부의 말을 전하면서.

장미는 꽃향기 중에서 가장 고급스럽지만, 정원이나 아파트 정원에서 울타리용으로 많이 심고 있는 쥐똥나무 꽃은 어떤가, 초여름에 삼각추 모양 무더기로 작은 꽃송이로 이루어졌고 흰색의 네 잎 꽃은 태어난 순서에 따라 위로부터 아래로 피기 시작하여 내려가는데 이때 뿜어내는 향기는 또 다른 감흥을 준다. 장미 향과는 다르게 독특한 향을 내면서도 우리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킨다. 바람에 실려 오는 은은한 쥐똥나무 꽃향기는 한동안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한 1~2주는 지나다니면서 이 향기를 감상하다 보면 이 꽃향기에서 내가 살아있다는 행복감이 살아난다. 

한 심리학자는 냄새에는 외로움을 달래는 특성이 있다고 하며 우울한 사람은 후각 기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무력함을 느낄 때도 냄새 맡는 세포가 무디어진다고 한다. 이런 어려움을 겪는 사람은 의식적으로라도 피어나는 꽃의 향기를 맡아 무디어진 후각 기능을 회복하여 가라앉은 마음 상태를 기쁨을 받아들이는 심리상태에서 긍정 쪽으로 방향을 바꿨으면 한다. 

익숙하고 친근한 좋은 냄새를 통하여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추억을 되살리기도 한다. 기억에 남는 냄새, 꽃향기도 좋지만, 특히 뇌리에 깊이 박혀있는 태어날 때 각인된 어머니의 냄새는 어느 꽃향기에 비유할 수 없는 최고의 향기일 것이다. 그 어머니 향기를 다시 맡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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