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일,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갔지만
씨 뿌리고 성장조건 맞춰준 후 기다리는 과정은 변화 없어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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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은 글로만 남고 몇 사람의 머리에 머무는 생기 잃은 글이 되어버렸다. 지금 우리나라 농업에 종사하는 인구는 5%에도 미치지 못하며 5200만 인구 중 겨우 200만을 조금 넘고 있다. 그나마도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대부분이어서 귀농하는 젊은이가 늘지 않는 한 농민은 해마다 줄어드는 추세를 멈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긴 농업국인 미국도 농업을 생계로 하는 인구가 전 국민의 1% 정도이니, 비교하면 아직도 우리 비율이 높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수천 년간 농업을 생업으로 했고, 조선 초만 해도 국민의 거의 90%가 농사일에 종사하였다. 자연환경과 토지 여건상 농업을 생계 수단으로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생존 방법이었을 것이다.

따뜻해진 봄에는 씨 뿌리고, 햇볕 풍부하고 비가 많은 여름에는 키워서, 곡식 익기에 좋은 가을을 지나 수확하고, 바깥일 하기 어려운 겨울에는 쉬면서 다음 계절을 준비하였다. 수천 년 계속됐던 이런 농경민족의 형태가 50년도 안 된 세월에 완전히 탈바꿈하고 있다. 

봄의 모판도 형태가 바뀌었다. 5, 6월에 모내기하면서 부르는 권농가와 구성진 풍악은 사라진 지 오래다. 그 자리에 상품화된 모판이 거래되어 농부의 손질을 떠났고, 이앙기는 농부의 모심는 손놀림을 빼앗아버린 지 오래다. 가을 황금벌판에 낫질하는 모습은 나이 먹은 농부의 머릿속에만 남아있고 줄아리, 바라리로 볏단을 말리는 여유로운 풍경은 빛바랜 사진에만 남아있다. 

콤바인은 하루 사이에 그 넓은 황금 들판을 일거에 빈터로 만들어 버린다. 벼 탈곡을 위해서 사용했던 홀태는 농가 창고에 묵혀 있으면서 괜히 자리를 차지하여 폐기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훑은 나락을 말리는 데 사용했던 덕석(멍석)은 이제 제 일을 멈춘 지 오래되었고, 창고에서 할 일을 잃어 눈칫밥을 먹고 있다. 가을 따뜻한 볕에 말리려 널어놓은 벼를 뒤집는 데 사용했던 당그래는 지금 이 글을 읽는 몇 분이나 그 모양을 머리에 그릴 수 있을까? 

세월이 지나면서 모든 것이 변화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과정이다. 하지만, 전자기기 등 컴퓨터 사회는 우리가 한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신문명이어서 그런대로 낯설게 경이의 눈으로 접하며 선택의 여지 없이 받아들여 우리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농사일은 우리 민족의 생존 역사와 함께하여 그 뿌리가 하도나 깊은데, 그냥 흘러 보내버리기에는 너무나 털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는다. 하긴 농사일에 경험이 없는 신세대는 딴 세상 얘기로 전연 피부로 느끼질 못할 것이다.

산업구조와 사회환경의 변화에 따른 큰 흐름은 지금을 사는 인간의 의지만으로는 변화의 바람을 바꿀 수는 없는 롤러코스터에 탄 시점에 이른 것 같다. 250만 년에 이르는 이 지구의 인류 역사에서 최근세, 20세기 후반부터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물질문명의 발달은 전 인류사의 기간에 비하여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하였다. 물질의 풍요는 물론이고 정신문화에까지 영향을 미쳐 가파른 변화 곡선을 그리고 있다. 단 몇십 년 사이에.

아무리 산업화, 물질문명이 발전해도 생명을 추슬러야 하는 인간에게서 먹이는 뗄 수 없는 생리적 필연적 관계를 맺고 있다. 과학기술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한 지금 이 시점에서 그 어느 사람도 쌀 한 톨 인위적으로 만들지 못하고 달콤한 사과를 공장에서 만든다고 꿈을 꾸지는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우리 식량자원은 땅과 햇빛에 의존하고 있으며, 하늘이 주는 비가 없으면 단 며칠을 견딜 수 없어 생명을 부지할 수 없게 된다.

농산물 생산방법이 농민의 손에서 스마트팜 등 기계의 영역으로 넘어간 것은 어쩔 수 없는 변화이나 농업, 즉 농산물을 생산하는 직업은 태초의 일이었고,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한 영원히 존재할 일의 영역이다. 이제 농사일이 인간이나 가축의 힘에 의존하는 시대에서 영역이 전연 다른 기계로 넘어가 버렸지만, 씨를 뿌리고 성장의 조건을 맞춰주고 난 후 기다려야 하는 이 과정은 변화가 없고, 앞으로 오는 시대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이다. 

단지 농사일에 수천 년 젖어있던 방법의 변화에 따른 향수를 놓기 어려운 아쉬움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어찌하랴. 이렇게 변화되고 있는 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는 수밖에. 이런 변화된 상황에 적응한 세대에게는 과거의 미련이 없으니, 지금 그리고 앞으로 오는 모든 것에 친숙하고 그 현상에 익숙해지겠지. 단지 시대가 변하는 속도가 너무 빠름에 추억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느끼는 어지러움과 아쉬움을 남몰래 되뇌는 넋두리일 뿐.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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