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337)
살다 보니 고개를 넘고, 넘어 나이 숫자 80을 뒤로한 지 몇 년이 흘렀다. 지난 시간을 되짚어보니 하루하루, 순간순간을 맞고 떠나보내다 보니 찰나가 쌓여 세월이 되고 그 세월이 나이로 변하여 오늘에 와 있다. 흘러가 버린 지난날을 조용히 생각해보니 정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기억해 보면 어찌 지나온 시간에 나름대로 어려움과 아쉬움이 없었으랴. 그래도 멀쩡히 지금 이렇게 숨쉬기에 지장이 없고 제한되기는 하지만 내 발로 가고 싶은데 가면서, 생각하며 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 대견하지 않은가. 이런 삶이 특별하지도 않고 평범함에서 벗어나지도 않은, 그렇고 그렇다고 여겨지지만, 이 긴 시간을 견딘 것에 내가 나를 칭찬하고 있다.
지난 겨울, 여러 사람을 한껏 움츠리게 했던 폭설에 강추위도 있었으나 이제 물러날 기미가 보인다. 응달진 산 밑 한구석에는 아직도 때를 놓친 잔설이 남아, 가는 겨울을 배웅하고 있는 모습이, 눈 밑에 봄을 기다려온 별꽃의 앙증스러운 보라색 꽃잎과 마주 보려는 욕심으로 느껴진다. 항상 햇볕을 향해 가장 일찍 손을 내미는 꽃잎에서 이른 봄을 느끼며 새로운 계절이 왔음을 알아차린다. 냉이와 쑥도 있다고 눈짓을 한다. 이들 이른 꽃과 나물은 수십 년 이곳에서 봐 왔고 앞으로 얼마나 더 이어지려는지 궁금해진다. 아마도 절대자의 시계에 나에게 보내는 마침표가 있는 날이 있겠지.
이런 자연의 순리에 적응하다 보면 오가는 것에 그렇게 큰 의미가 주어지지 않는다. 흐르는 여울물을 말끔히 쳐다보면서 물이 흐르는 것인가 내가 지금 지나는가를 헷갈리는 순간을 맞기도 한다. 졸졸 소리 내며 흐르는 개울가에는 잠에서 깨어난 버들강아지가 봄바람에 손 흔들어 인사하고 깨어나는 대지의 숨소리가 한가하게 들린다. 온 세상, 이른 봄의 정기가 가득 차서 새봄을 맞고 있는데 나는 새로움이 아니라 묵은 것에 낡은 것을 덧대고 있지 않나 자책을 하는 마음이 든다. 수백 년의 음양을 맞고 보냈을 저 소나무는 오늘도 청청하게 솔바람을 일으키면서 나를 굽어보고 있는데, “그래 내 나이를 네 나이와 비교해 봐라” 하고 넌지시 말을 건넨다. 살아가면서 어찌 모진 바람과 혹독한 추위가 덮치는 날이 없었겠는가. 그 어려움을 이기고 견디면 스스로 내가 커지고 더 알찬 자세가 된다는 것을 은근한 몸짓으로 전해 준다.
지나온 내 삶을 돌아보면 행복과 성공, 그리고 이를 맞이하기 위한 아픔, 고통, 어려움, 그것들이 응어리지면서 만들어진 내 흔적이 이제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머릿속 한쪽에 켜켜이 쌓여 마음의 창고를 채우고 있다. 지나온 시간을 곰곰이 돌이켜 보면 뭐 하나 잘났다 으스대본 적도 없고, 그런 자질도 없지만, 최소한 같이 살아가는 내 이웃과 주변 사람들에게 해 끼치지 않고 크게 마음 상처 주지 않으려 노력했고 도움은 아니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 같이, 이 세대를 살아왔음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있다. 아마도 남은 시간에도 이런 생각의 틀은 크게 변화되지는 않겠지만 내 의지가 내 마음과 육체를 제어하는 때까지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갑자기 찬바람이 가슴을 스친다.
내 의지대로 생각하고 활동할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과연 어떤 마무리가 될까 하고, 앞서 초조한 마음이 든다. 지나온 시간은 내 의지대로, 나름 옳다고 여긴 길을 찾아 걸어왔다고 여기는데 앞으로의 길은 밝음이 있을까, 어두움에서 갈 길을 찾으려 허둥댈까, 어느 쪽이든 내가 갈 길이니 오늘은 오늘로써 주어진 여건에 순응하고 마음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따라 나머지 주어진 몫을 충실히 하고 싶다. 헛된 욕심이나 바람을 내려놓고 나에게 주어진 순리를 따르고 지키면서, 또 내일 떠오르는 태양을 볼 수 있는 행운을 즐기고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관련기사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