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46)
꽤 오래전 겪었던 일이 지금도 뇌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내가 맡고 있던 대학 내 국가지정연구소, 이 연구기관은 필요에 따라 국가에서 공모하는 연구 과제를 신청하고 심사를 받아 선정되면 연구비를 지원받는다. 1년 차를 끝내고 2년 차 연속사업으로 이어지도록 연속과제로 신청했을 때였다. 발효식품 분야 육성과 관계되는 과제로 내가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고 전공했으며 또 애착을 가져 왔던 분야였다. 많이 안다고 엉덩이 뿔난 듯 건방을 떨기도 한 시기였다. 발표 자료는 시간을 들여 알차게 만들었고 내용도 흡족하다고 여겼다. 조금 이르게 발표장소로 동료 몇 사람이 같이 이동하여 준비하였다.
드디어 내가 발표할 차례, 심사위원이 예상하지 못할 정도의 대집단이었다. 20명 정도, 글쎄 이렇게 많은 심사위원이 필요한가 하는 생각도 잠시, 30분 발표에 10분 토론이라는 사회자의 안내가 있고, 그에 맞추며 발표를 진행하였다. 연습한 대로 주어진 시간대에 실수하지 않고 발표를 끝내고 질의응답 시간. 일상적인 질문에 정확하고 명쾌하게 대답하였는데 다음 한 심사자에게서 예상 밖의 질문이 나온다. 발효식품을 제시하면서 설명한 품목 중 유과(산자)가 있었다. 그 유과가 발효식품이냐는 내용이었다. 보통 일반인의 경우 발효식품은 김치, 간장, 된장, 고추장, 청국장이 떠오르고 젓갈과 식초, 더 나가면 막걸리 정도는 금방 발효식품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뚱맞게 유과라니, 아마도 자기가 잘 알고 있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발언이 아닐까 여겨졌다.
그런데 이때 내 객기가 발동하여 질문한 심사자를 무안 주기를 시작하였다. 질문 자체는 미루어 놓고 “발효가 무엇인가요?”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심사위원도 순간 당황하는 눈치였고 아마도 그 분야 전문가는 아니라고 판단되었다. 순간 발효에 대하여 나름대로 전문지식을 동원하여 설명하고 유과가 발효식품 아니라는 근거를 대보라고 윽박질렀다. 어찌 보면 심사자와 논쟁을 벌이게 된 것이다. 내가 이 분야에서는 꽤 많이 아는데 네가 내 권위에 도전해? 하는 덜 익고 섣부른 오기가 작동했다고 여겨진다. 심사받는 사람으로서는 결코 해서는 안 되는 객기를 부린 것이다. 한참 젊고 미숙한 자만심의 발로, 내 위치를 착각한 행동이었다.
전체 분위기는 일순 싸늘하게 식었고 질문한 심사자는 더 이상 대답이 없었다. 나는 더 나아가서 유과 만드는 과정을 설명하고 쌀을 물에 담가 하루 저녁 놓아두면서 미생물작용을 유도한다는 얘기를 덧붙였다. 그러나 이 자리는 이론으로 상대를 이겨내자는 학술발표장이 아니었다. 내 과제를 선정할 것이냐 탈락시킬 것이냐를 심사위원들이 결정하는 자리고 내 발표를 들고 각자 판단으로 당락이 결정되는 심사장이었던 것이다. 심사를 받는 사람이 오만의 극치를 보였으니 심사결과는 보나 마나였고 돌아오는 길에 내 행동을 가만히 되새겨 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미숙한 처신이었다는 것을 느끼고 후회했으나 화살은 이미 날아간 후였다.
살아가면서 겸손과 겸양, 나를 낮추는 행동은 결코 손해 볼 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 후 매일 접하는 일상에서 깊이 되새기면서 살고 있다. 벼가 익으면서 고개를 숙인다는 평범한 현상은 아는 데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끼면서 벼는 스스로 고개를 숙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벼 알 속에 내용물을 쌓다 보니 그 무게로 자연히 자세가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 식물도 자기가 가진 것이 많아지면 자연스레 고개를 숙여 그 무게를 감당한다. 인간도 꼭 같은 논리가 적응되리라 여겨진다. 시간이 축적되며 얻는 경험과 삶의 지혜가 쌓이고 생활하면서 겪는 모든 일상이 차곡차곡 쌓이면서 나름의 생활방식이 정립되고 나만의 살아가는 길이 만들어진다고 느끼는 나이가 되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가진 것이 완전하고 완숙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항상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다. 지금 가진 것의 가벼움을 스스로 느끼고 더 나은 삶을 위하여 내 마음을 다독거려야 함을 매일 느끼면서 그렇게 살고자 노력하는 과정이다. 성인(聖人)을 제외하고 일반인의 경우 어찌 완벽한 삶을 살아가겠는가. 허물을 안고 살아가지만 나를 내세우기 전에 상대의 장점을 찾아 배움의 자세를 갖는 태도, 그런 자세로 살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옛말에 광이 불요(光而 不耀)라 말했던가. “밝기는 하되 번쩍거리지 마라.” 그렇다. 어둠을 밝히되 번쩍거려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서서히 익혀가고 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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