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347)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우리나라 결혼풍속의 변화를 돌아보면, 근대화의 격랑 속에서 삶의 모습이 어떻게 달라져 왔는지를 읽을 수 있다. 조선 시대까지는 ‘결혼식’이 아니라 ‘혼례식’이라 불렀다. 절차 하나하나가 예(禮)를 근본으로 삼았고, 그 속에는 단순히 두 사람의 결합만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 나아가 사회와 맺는 질서가 담겨 있었다. 혼인을 정하는 의혼, 납채, 납폐, 그리고 친영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모두 엄숙했다. 

혼례 당일, 신랑은 사모관대를 갖추어 입고 말을 타고 신부 집으로 향했다. 신부는 족두리를 쓰고 화려하게 단장했다. 신랑이 혼례장에 들어서면 볏섬을 딛고 멍석 위에 섰고, 그 앞에는 과실과 곡식이 정갈하게 놓였다. 대나무 두 개를 세워 그 사이를 오색실로 연결했는데, 이는 다산과 화합을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이어 집사장의 집전으로 신부는 네 번 절하고, 신랑은 두 번 절한 뒤, 마지막으로 합근례에서 술잔을 주고받으며 부부의 연을 맺었다. 전 과정이 실로 경건하고 장엄했다.

오늘날의 결혼식은 이런 의례에서 많이 달라졌다. 호텔 예식장에서 짧게 치르는 서양식 예식이 대세가 되었고, 최근에는 아예 주례 없이 치르는 경우도 생겨났다. 형식은 점점 단순해지고, 때로는 결혼식이라기보다 하나의 이벤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시대가 변하면 의례도 변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생을 함께할 배우자를 맞이하는 일생일대의 의식이니만큼, 지나친 간소화는 다소 아쉬운 마음을 남긴다. 참다운 예식의 본질이 잊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다고 옛 형식만을 고집할 필요는 없다. 옛날에도 어려운 집안에서는 물 한 그릇을 개다리상 위에 놓고서도 예를 다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겉모습이 아니라, 두 사람이 인생을 함께 걸어가겠다는 마음의 자세일 것이다.

교직에 있으면서 졸업생들에게 주례를 부탁받은 적이 자주 있었다. 내겐 그것이 또 다른 교육의 연장이었다. 특별한 일정이 겹치지 않는 한 기꺼이 수락했는데, 경사스러운 자리에 함께한다는 것이 큰 보람이었기 때문이다. 예식 전에 신랑과 신부를 따로 불러 각자의 집안 사정과 결혼을 결심한 동기, 앞으로 살아갈 계획을 묻곤 했다.

그 대화 속에서 두 사람의 진심을 확인하고, 그 이야기를 주례사에 녹여내 주었다. 어찌 보면 주례사에서 전해줄 내용을 미리 나누는 셈이었다. 엄숙한 자리에서 주례사의 긴 문장으로 말하는 것보다,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의 속내를 들어 주는 시간이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간다고 느꼈다.

나는 주례사를 늘 손 글씨로 썼다. 컴퓨터 자판으로 치면 편리하겠지만, 직접 손으로 써 내려가면 글자마다 마음이 담기고 정성이 배어든다. 신랑·신부가 결혼 후 오래도록 간직하면서 주례자의 온기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랐다. 그렇게 쓴 글은 단순한 원고가 아니라, 그 부부를 향한 나의 작은 축복이자 살아가면서 다짐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겼다.

나 자신도 대학 은사님이 주례해 주신 말씀을 녹음으로 간직하고 있는데, 오래전 결혼식 날의 설렘이 그 음성을 들을 때마다 다시금 되살아난다. 은사님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지만, 그 음성은 내 삶의 한자리에서 여전히 살아 있다.

주례를 하다 보면 민망한 실수도 있었다. 오래 교류해 온 기업인의 아들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았는데, 혼인서약문을 읽는 중에 신부의 성을 그만 신랑의 성으로 바꾸어 읽고 말았다. 신랑과 신부가 모두 큰 소리로 “예”라고 대답하니, 그 자리에서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예식이 끝나고 신부 쪽 친척이 불쾌한 얼굴로 지적해 주었을 때야 비로소 알았다.

나는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진심을 다해 사과했으나, 마음의 빚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신랑 아버지가 “교수님, 미국식으로는 결혼하면 신랑 성을 따르니 미리 미국식으로 하신 거네요.” 하고 웃으며 위로해 주셨다. 단순한 농담이었지만, 그 말이 큰 위안이 되었다. 그래도 지금도 그날의 실수는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또 다른 기억도 있다. 한 제자의 결혼식 주례를 마치고 나오는데, 그의 동기들이 잔뜩 와 있었다. 반가운 얼굴들을 맞으며 인사를 나누다가 한 학생에게 “자네도 이제 결혼해야지.” 하고 덕담을 건넸다. 그러자 그는 웃으며 “교수님, 작년에 제 주례도 해주셨잖아요.”라고 했다. 순간 얼굴이 붉어졌다. 그냥 “잘 지내나?” 하고만 말했더라면 좋았을 것을, 괜한 한마디가 민망한 장면을 만들고 말았다.

세월이 흐른 지금, 그 제자는 자녀를 훌륭히 키워 얼마 전 대학 합격 소식을 전해왔다. 졸업생들에게서 이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주례자로서의 보람을 새삼 느낀다. 직접 아이들을 만날 일은 거의 없지만, 언젠가 내가 축복해 주었던 가정이 세월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하다. 그것은 교직에 있었던 사람에게 주어진 특별한 기쁨이다.

돌아보면, 주례를 맡는 일은 단순히 결혼식을 진행하는 역할을 넘어서 있었다. 젊은 부부가 인생의 첫걸음을 떼는 순간 곁에서 축복의 말을 건네고, 그들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며, 훗날 다시 소식을 전해 들을 수 있는 인연을 맺는 것이었다.
교직은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지만, 주례는 그 삶을 축복하는 일이었다. 나는 이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할 수 있었으니, 그것이야말로 내 인생의 큰 행운이 아닐까 싶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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