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세근 명예총장
식품안전상생재단

요즘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이란 책이 인기다. 원작자는 일본의 칼럼니스트인 이나다 도요시이고, 황미숙씨가 번역하여 작년 11월에 출간된 책이다. 이 책은 43일만에 3쇄에 돌입하였는데, Z세대의 영상 콘텐츠 시청 습관을 중심으로 관찰한 기록을 토대로 하여 라이프 스타일 전반의 트렌드 변화를 정확하게 읽어내고 있다. 

영화 등 영상물을 시청하는 MZ세대의 소비행태는 상당히 즉흥적이고도 적극적이다. -대사 없는 일상적인 장면은 건너뛴다 –10분 요약 영상을 선호한다 -영화관에 가기 전 결말을 알아둔다 -인터넷에 올라온 댓글을 찾아보면서 콘텐츠를 본다 -처음엔 빨리감기로 보다가 재밌으면 보통 속도로 다시 본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기능은 OTT 서비스의 대표 주자인 넷플릭스가 2019년에 재생속도를 자유자재로 선택할 수 있는 기능을 도입하면서 본격화되었다. 여기서 OTT 서비스란 ‘over-the-top media service’의 약자로 TV 셋톱박스와 같은 기존 단말기 범위를 넘어 인터넷을 통해 각종 미디어 콘텐츠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MZ세대가 TV 대신에 OTT 서비스를 선호하는 이유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시청 속도를 조절하며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광고도 건너뛸 수 있다.

과거의 안정적인 소비행태를 벗어나 액체 상태처럼 자유롭고 빠르게 변화하는 소비를 ‘리퀴드(liquid) 소비’라고 한다. 이는 2017년 플로라 버디와 기아나 애커트라는 두 명의 영국 경제학자가 제창한 개념인데, 위 책에서는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행태를 아래와 같이 ‘리퀴드 소비’의 현상으로 설명하고 있다.

소비 주기가 짧다
화제가 된 콘텐츠를 서둘러 시청해야 친구들의 이야기에 낄 수 있기 때문에 빨리 감기, 건너 뛰기 등의 기능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콘텐츠 수요가 아닌 구독
소유에 대한 압박이나 의무감에서 벗어나 필요할 때 내 마음대로 선별하여 본다.

물질적 소비보다 경험 소비
물질적인 콘텐츠의 소유보다는 현재 유익한 가치를 주는 가를 판단하여 ‘순간을 즐기기 위한 소비’를 선호한다. 

엄청난 양의 콘텐츠가 매일 양산되고 있는 현실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소비시간을 최대한 절약하여 단시간에 많은 콘텐츠를 습득하고 소비해야만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일본에서는 ‘가격 가성비(Cost Performance)’에서 ‘시간 가성비(Time Performance)로 진화된 신조어가 탄생하기도 했다(일본식 발음으로는 ‘타이파’).

‘90년생이 온다(임홍택 지음)’란 책에서는 정성일 영화평론가의 말을 인용하여 10대들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를 ‘두 시간 동안 휴대폰을 꺼놔야 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태어날 때부터 인터넷 환경에 익숙하고 모바일 기기를 신체의 일부처럼 항상 지니며 활용하는 Z세대를 최재붕 교수는 ‘스마트폰이 낳은 신인류’라는 개념의 ‘포노사피엔스’라고 명명하였다. 이처럼 모바일과 인터넷에 익숙한 MZ세대가 OTT 서비스를 선호하며 자유롭게 현실적 실리를 추구하는 소비행태인 리퀴드 소비는 점차 큰 물결로 자리 잡아 가고 있고, 계속 진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리퀴드 소비는 비용 대비 효율성을 높이는 행위가 될 수 있지만,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하는 기업은 소비 예측이 어렵다는 점에서 대응하기가 매우 어려울 수 밖에 없다. 한순간 소비자로부터 큰 주목을 받다가 갑작스럽게 열풍이 사라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허니버터칩’이다. 

허니버터칩은 해태제과가 2014년 8월에 출시하였다. 꿀과 버터향을 더한 단맛의 이 감자칩 제품은 SNS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두 달만에 업계 랭킹 1위 제품으로 등극하여 극심한 품귀현상을 빚기에 이르렀다. 이후 배송 지연, 발주 중단, 끼워팔기 등 유통과정에서 문제들이 악화되고, 경쟁사로부터 유사품이 출시되면서 인기는 주춤해 졌지만, 아직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인기의 거품이 꺼진 시점이 품귀현상을 해소하고자 제조사가 증설공사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여서 리퀴드 소비의 파고 속에서 수요 예측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할 수 있었던 사례였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급성장한 밀키트시장도 엔데믹 시대가 되면서 오프라인 외식 수요가 늘어나자 성장세가 둔화되고 있다. 기업이 선뜻 투자와 인력을 늘리는 결정을 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고 있다. 리퀴드 소비의 물결 속에서 기업들은 트렌드와 수요 변화에 좀 더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손세근 식품안전상생재단 명예총장은 ‘트렌드 변화를 주시하며 활기찬 삶을 영위해 가는 베이비부머’를 뜻하는 ‘트렌드부머’란 퍼스널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CJ제일제당(주)에서 CCO(고객만족 총괄책임자) 등의 임원을 역임했으며, 트렌드 변화 연구와 청년 멘토링 등에서 왕성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개인 블로그: blog.naver.com/steve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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