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옷이 우리가 먹는 음식보다 먼저일 수 있는가
생존에 가장 우선은 음식이고, 음식이 없으면 생명을 부여할 수 없어
집이 아무리 호사스럽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먹지 못하면 굶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이런 이유로 이제는 의식주가 아니라 식ㆍ의ㆍ주(衣食住)가 되어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04)

꼭 순서대로 중요도가 정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먼저 나온 것을 더 중요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일반적인 정서가 아닐까 여겨진다. 이런 통념에 따라 의식주라 할 때 의(衣), 즉 옷을 말하고 우리 몸에 걸치는 것으로, 가장 중요한 기능은 추위와 더위를 막는 등 편안한 생활과 관계되나, 이와 같은 생리적 필요성을 훨씬 넘어 신분과 지위를 나타내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 

옷은 옷감, 옷의 모양, 형식 등에 따라 그 종류를 헤아릴 수는 없으나, 전통적으로 우리처럼 옷의 가지 수가 많은 나라도 흔치 않다. 양복이 들어와 우리 복식문화를 크게 바꾸기 전까지 개개인의 신분과 지위, 의식의 형태에 따라 옷의 색깔과 모양, 격식을 달리했다. 뿐만 아니라 천의 종류, 옷의 색깔과 모양 등에 따라서 옷 입는 사람의 신분이 달라지고 있었다. 더 쉽게 설명하면 개화기 전에는 옷은 신분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도구였다. 그 예로 한복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신분, 사상, 관습, 생활여건 그리고 용도 등에 따라서 옷이 차이가 나고 있다. 임금의 용포, 대신들의 의상, 장군의 복식 어느 것 하나 독특하지 않은 것이 없다. 한복의 미학과 여유를 갖춘 편리함 그리고 옷에 배어있는 민족의 철학이 뒷받침되어 역사와 함께 면면히 이어졌다. 지금은 서양문물이 들어오면서 옷의 형태도 크게 바뀌고 말았다. 양복이라고 일컫는 옷들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아름다운 우리 전통한복은 행사나 특별한 날에 입는 의례복으로만 용도가 한정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것은 별수 없는 추세이나, 조금은 아쉬움이 남는다. 천자문에도 속대긍장 하고 배회첨조(束帶矜莊 徘徊瞻眺)라 하여 예복과 몸가짐으로 사람들이 우러러본다고 했으니 옛날부터 옷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나 보다. 그러나 어찌 옷이 우리가 먹는 음식보다 먼저일 수 있는가. 생존에 가장 우선은 음식이고, 음식이 없으면 생명을 부여할 수가 없다. 더욱 의복은 식물성, 동물성, 광물성 등 많은 대체품이 있으나, 음식은 자연에서 제한적으로 얻을 수 있는 농축수산물로만 한정되어 있다.

인류 기원부터 시작하여 인간의 역사는 옷이 아니라 먹이, 즉 음식의 쟁탈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의 기술과 지혜가 아무리 발전했다 하더라도 음식의 재료는 유사 이래 변함이 없다. 그만큼 대체재가 없는 한정된 자원을 이용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얼핏 지금같이 식품이 풍족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 우리 음식의 중요성을 간과하는 듯하나 전쟁과 자연재해에 의한 굶주림은 지구촌 곳곳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옷 부족으로 죽음을 맞는 경우는 별로 없으나 먹이, 즉 음식 부족에 의한 기근으로 사망하는 숫자는 역사 곳곳에 남아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식량이 풍족해지면서 식생활이 안정되었으나(물론 수입 곡물이 주 역할을 하지만), 그 이전 역사에서 어느 한때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은 때가 없어 보인다.

식은 생물로서 인간의 기본이기 때문에 그 우선순위는 앞설 수밖에 없다. 모든 전쟁 중에서도 군 급식이 가장 우선인 이유이기도 하다. 음식이 부족할 때는 질과 관계없이 양의 중요함을 우리는 몸으로 겪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배불리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라는 얘기가 있었다. 비극의 6.25를 거치고 식량 부족 상황에서 지금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보리가 귀한 식량자원으로 대접을 받았고 보릿고개라는 말로 보리 수확기를 목 빠지게 기다렸다. 빈곤의 시대를 넘어서고, 풍요 시대로 넘어오면서 음식 사치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같은 식재료를 가지고 별난 요리방법을 동원하여 기상천외한 음식들을 만들어 즐기고 있으며, 여기에 각종 조미, 향신료는 우리 오감을 자극하는 매체로 더욱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편, 인류 역사에서 불의 사용은 보온 등 혜택을 뒤로하고 음식에 있어서 획기적으로 변화를 가져왔다. 음식을 불로 익힘으로써 맛을 좋게 하는 것은 물론, 소화흡수율을 높여 영양 개선에 기여하였고, 이 결과 인간은 몸무게 대비 가장 큰 뇌를 갖게 되면서 이 행성의 주인 자리를 차지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뇌 기능의 향상은 순전히 섭취하는 음식 중 영양성분에 의지함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럼 끝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주(住)는 어떤가. 집은 살아가는 데 필수라기보다는 선택의 개념이 크다. 우리 조상은 처음 비바람을 막는 자연 동굴에서 삶을 시작하였고, 서서히 움막으로 발전한 후 나무나 돌, 흙을 이용한 가옥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이제 사는 집도 호사를 넘어 예술의 경지까지 도달하였으나 기본적으로 생명과는 직접 관계가 덜하고, 편리하며 아늑함을 추구하는 수단의 범위를 넘지 못한다. 집이 아무리 호사스럽다 하더라도 그 안에서 먹지 못하면 굶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이제는 의식주가 아니라 식ㆍ의ㆍ주(衣食住)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동의하시는 분이 많을 것이라 기대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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