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선화 꽃 따서 손톱에 물들이는 세대 보기 어렵지만
그 정취는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있어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84)
우리 민족의 애환이 깃든 봉선화(봉숭아)는 김형준 시인이 쓰고 홍남파 작곡인 우리나라 최초의 가곡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로 시작하는 노랫말로 더 정답게 가슴에 와 닿는다. 여름철 봉선화는 시골이 아니라도 도시 좁은 땅에서도 마음만 있으면 키울 수 있고 땅 가리지 않고 잘 자라 때가 되면 꽃을 피운다.
좀 나이 든 세대에서 봉숭아는 나름대로 떠오르는 자기만의 아련한 추억과 마음속 정다운 느낌을 갖고 있을 것이다. 여름날 저녁 봉선화 꽃을 따 거기에 잎사귀 몇 잎과 백반을 넣고 곱게 찧어 반죽을 만들면 재료는 준비되었고. 이제 각자 손가락을 내밀면 어머니는 준비한 피마자 잎에 이 반죽을 손톱 위에 조금 나눠 올리고 손가락을 감싸 삼끈으로 묶는다. 보통 양손 약지와 새끼손가락이 선택된다. 곱게 자야 묶음이 빠지지 않는다고 주의를 준다. 자고 아침에 일어나 손가락에 묶은 끈을 풀면 아름다운 붉은 색이 손톱에 곱게 배어 있다. 신비하고 아름다웠다.
남자애들은 조금 꺼렸으나 어린 여자애들이나 처녀들은 여름에 꼭 거쳐야 할 연례행사였고, 할머니들은 봉선화 물을 들여야 저승길이 밝다고 믿었다. 말갛고 곱게 붉은색으로 물들여진 손톱은 가을, 겨울까지 계속 남아있고 손톱을 자르면서 겨울을 지나는 동안 초승달 모양으로 손톱 끝에 흔적이 남는다. 그 모습은 지난여름의 추억이 담긴 아름다움을 곱게 선사한다. 이 자연의 선물을 어찌 매일 바르는 인위적인 매니큐어와 비교할 수 있겠는가. 봉선화 물을 들이고 조금씩 손톱이 자라면서 달라지는 모습은 시간이 지나면서 내가 커가고 있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자매간에 봉숭아 물들여진 손톱을 비교하면서 서로의 모습을 견주어 보기도 한다.
이 봉선화가 내가 출근하는 길, 카센터 건물 옆 작은 빈터에 모종을 해서 자라고 있는 모습을 봄부터 눈여겨 봐왔다. 마음의 여유가 있는 분의 배려이겠지. 무럭무럭 탐스럽게 자라서 한여름이 되니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튼튼한 줄기에 싱싱한 잎사귀들 사이로 붉은색, 흰색 그리고 분홍색 등 꽃 색깔도 다양하다. 내가 시골에서 클 때 보았던 그 모습을 여기서 다시 보니 정답고 살뜰하다. 매일 출퇴근하면서 자라는 봉선화와 안부를 주고받는다.
어느 날 월요일인가. 며칠 비가 오지 않고 더위가 계속되었는데 아뿔싸, 봉선화 몇 그루가 더위에 지쳐 늘어져 바닥에 거의 닿을 만큼 누워버렸다. 안타깝고 답답하다는 생각으로 주위를 둘러봤으나 카센터나 옆 가게들도 너무 일러 문을 열어놓지 않아 물을 얻을 수 없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을 안고 지나칠 수밖에. 하루 일하면서도 드러누운 봉숭아가 자꾸 눈에 밟혀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퇴근 후 재빠르게 봉선화를 보러 갔다. 아 어쩐 일, 카센터 직원이 봉선화 옆에 앉아 담배를 피운다. 그런데 아침에 누워버렸던 봉선화가 싱싱하게 제 모습으로 실하게 서 있지 않은가. 너무나 고마워 그 직원에게 물어봤더니 아침에 와서 바로 물을 주었다는 얘기이다. 토요일, 일요일 쉬기 때문에 관리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분도 시골에서 봉선화를 가꿔봤고 식물에 대하여 관심이 많아 잘 관리하고 있었다. 한동안 봉선화에 대하여 가벼운 대화를 나눴고 역으로 내가 부탁을 하였다. 가물면 잊지 말고 물을 줬으면 한다고. 그렇게 하겠다는 말을 진심으로 한다.
이제 봉선화 꽃을 따서 손톱에 물들이는 세대는 보기 어렵지만, 그 정취는 많은 사람의 머릿속에 남아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길에 손톱 관리하는 가게의 이름이 봉숭아손톱이다. 봉선화를 쓰는지는 모르겠으나 이름이 정다워서 기억에 남는다.
봉선화 꽃은 꽃 끝에 깜찍스러운 공작 꼬리를 갖고 가을까지 계속해서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 열매 또한 어릴 때 가까이 한 신비한 경험이다. 다 익은 길쭉한 꼬투리열매는 옅은 줄이 세로로 나 있고 살짝 손을 대도 툭 터지면서 까만 씨를 쏟아낸다. 어린 마음에 신기하였고, 완전히 익지 않으면 터지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봄부터 시작한 봉선화는 다음 세대를 이어갈 자손을 생산하고 가을 막바지에 서리와 함께 삶을 마감할 것이다. 하긴 여름 내내 싱싱한 줄기와 잎 그리고 꽃까지 선사하였고 씨가 터지는 모습까지 우리에게 보여주었으니 봉선화로부터 받은 기쁨은 충분하다고 여긴다.
식물을 가까이하다 보면 자기가 가진 본성을 그대로 나타내면서 많은 것을 전해준다. 씨를 심어 싹이 나오는 모습부터 줄기를 뻗고 싱싱한 잎을 펼치는 것 그리고 꽃과 열매, 다년생 나무와 다르게 일년생 식물은 단기간에 탄생과 소멸 그리고 자손으로 이어지는 과정을 보여준다. 삶의 전 과정을 짧게 알려준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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