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애착
물건과는 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봉선화에서 느낀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89)

우연히 봉선화와 인연을 맺어 한겨울을 함께 하고 있다. 지난 늦은 가을 길가에서 자라던 봉선화 꽃씨를 얻어 내년을 기약하고 앞뜰에 뿌려놓았는데, 이 녀석들이 계절을 잘못 알고 새싹을 틔워 떡잎이 커지기 시작했다. 별수 없이 심어 놓은 업보로 겨울을 대비, 내가 일하는 사무실 화분에 옮겨 심었다. 이 어린 묘가 튼튼히 자라면서 줄기를 힘차게 뻗어내는데, 한 달이 지나니 꽃망울이 맺히고 조금 지나니 자기 부모가 물려준 그대로 모습, 붉은색 꽃을 피우기 시작한다. 매일 매일 새로운 잎의 겨드랑이에 망울이 달리고, 순서대로 시차를 두면서 꽃이 되기 시작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상당 부분 봉선화 꽃에 대해서는 아련한 기억 속, 친근감이 있을 것이다. 나도 봉선화를 보면 고향에서 나를 있게 해주신 어머님과 정이 담뿍 든 누나들의 기억들이 뭉클하게 가슴에 와 닿는다. 아마도 창가에 놓여 있는 이 봉선화 화분은 나에게 잊고 있었던 희미한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기 위해서 계획되어 이 자리에 있지 않나 하는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사무실 창가에서 자라기 시작하여, 한 달 두 달 그리고 석 달 동안 숱하게도 많은 꽃을 틔워 낸다. 한동안은 화분 전체가 붉은 봉선화로 화환을 만든 것 같이 꽃 잔치를 벌였다. 꽃이 지고 나면 이어서 꽃자리에 갸름한 미식 축구공 같은 열매가 계속 맺히고, 또 그 위에서는 이어서 새로운 꽃이 핀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하여 지금 봄 3월이 되었으니, 거의 6개월을 나와 함께 생활하고 있다. 저들이 살았던 밖과 같은 여건과 같지 않은, 사무실 내에서 어색하지만 그래도 조금 다른 환경에 잘 적응하여 제 몫을 다하고 있으니 얼마나 대견한가. 특히 겨울에 봉선화를 본다는 것은 예상하지 못하여 사무실에 들르는 손님들도 겨울꽃이라니, 신비하고 색다르게 여기면서 관심을 갖는다. 우리 노래에 ”동지섣달 꽃 본 듯이 날 좀 보소”라든가, 처음 맞는 겨울 봉선화에 관심을 두는 손님들에게 내심 흐뭇한 생각도 든다. 관심이 없어 보이는 방문객에게는 일부러 인도하여 꽃의 정취를 느끼도록 귀띔하기도 한다.

생명체는 모두가 생이 있으면 마무리하는 끝이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 3월 들어 봉선화 전체가 서서히 푸르른 잎사귀가 황갈색으로 변하면서 꽃들도 생기를 잃어간다. 줄기도 점점 약해지고 맺혀있는 씨들은 그래도 착실하게 다음을 이으려는 노력이 힘에 부치는 것 같아 안타까워 보인다. 처음 틔웠던 꽃에서는 이미 검고 알찬 작은 씨를 받아 놓았으니, 이 봉선화의 다음 세대는 착실히 이어질 것이라 여겨진다. 이 씨를 다시 날씨가 따뜻해지면 앞뜰에 심어서 겨울을 나와 함께한 자기 선조의 기억을 되새겨보려 마음먹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얘기해 준다.

노쇠해 가는 화분에 있는 봉선화 모습을 보면서 우리 인간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줄기는 점점 힘을 잃어가고 위에서 자라고 있는 순을 가누지 못하며 비틀거리고 있으니 내가 받침대를 해주지 않으면 중심 잡기가 어렵다. 우리도 늙어지면 지팡이에 의존하고, 그것도 어려우면 움직이는 것을 포기하고 집안에 들어가 있는데, 이 봉선화는 움직일 수는 없으니 자기가 자란 자리에서 연약한 꽃을 피워내고 있다. 자기 선대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생기가 없이 쇠잔해 보인다. 생의 마지막 수순을 밟고 있는데, 이 봉선화의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까 하는 것이 요즈음의 고민 사항이다. 아직도 위 순에서는 꽃이 피고 난 꽃에서는 연약한 씨가 맺히고 있는데 이들과 어떻게 작별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니 다시 내 삶과도 연결된다. 

살아 있을 때 곱게 마무리해야 할 터인데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타의에 의해서 마지막을 결정한다고 생각하면 괜히 서글퍼지기도 한다. 내 경우도 의식과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 마무리를 해야 할 터인데 의식이 없는 딴 세상에서 머물다 최후를 맞는 불행은 없어야 했는데. 이것을 생각하니 이 봉선화도 의식이 있다면(식물도 의식이 있다는 것이 학자들의 의견이다) 내 고민을 이해할 것이라 여겨진다, 살아 있다는 것에 대한 애착은 물건과는 다른 감정이 있다는 것을 이 봉선화에서 느끼고 있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비슷한 생각이겠지. 며칠사이 이 봉선화의 조촐한 장례식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마음속에서 갈등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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