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는 이들 모두가
내가 간직해야 할 결코 바꿀 수 없는 보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87)
살면서 가장 큰 인연은 내게 생명을 주신 부모님과 피를 나눈 형제들이고 이들은 평생 이어지는 천륜으로 내 의지로 달라지지 않는 필연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 삶의 과정을 함께한 동료, 선후배들과 공유한 경험은 내가 스스로 만든 인연이다. 이렇게 관계를 맺은 동료, 친구들은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마음의 공백과 허전함을 채워주는, 목마를 때 물과 같은 역할을 해 주고 있다.
부모는 조건 없는 사랑과 보살핌이라면 동료, 선후배는 내가 가꿔온 그리고 알뜰한 정을 세월과 함께 쏟아부어 자라게 한, 마음에서 성장하는 말이 없는 식물 같은 존재이다. 있는 그대로가 좋고 아무 때나 마음으로 불러내어 내 사정을 하소연하면 귀담아 들어주는 마음의 안식처 역할을 한다.
학교생활에서도 어깨 나란히 교정을 누비었던 친구들 그리고 직장생활과 여러 연관된 사회생활에서 만났던 많은 선후배는 나이 들어가면서 영역이 겹쳐 계속 가까이할 수 있는 때도 있으나, 연이 다하여 희미하게 기억에서 사라지기도 한다.
부모 형제 간에는 피를 받고 나눈 하늘이 준 관계가 있으나 학창 시절, 직장 등 사회생활에서 만난 모든 사람은 내 의지로 마음을 나눴고 경험을 함께한 동시대를 살아온 동료들이다. 이들을 만나면 같은 시간을 공유했던 우리만 아는 이야기가 있고, 그때의 감정을 같이하면서 생각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
며칠 전 50년도 넘은 군대 생활에서 고락을 같이했던 친구의 전화를 받았다. 전방 생활에서 여러 어려움을 같이했고 도움을 주고받았던 관계가 저 밑에 간직되었던 그의 이름이 잊히지 않고 걸려 올라와 반가움을 표시할 수 있었다. 삭막할 것 같은 군대 생활에서도 같이 느끼고 생활했던 친구의 전화는 갑자기 시공을 넘어 매일매일 정해진 삭막할 것 같던 군 생활 속에서도 같이 만든 추억이 주절주절 마음의 사슬에 걸려 올라왔다.
매일 생활했던 군 막사며 내 개인 물건을 넣어두었던 사물함의 모양까지 선하게 떠오르는 것은 도대체 무슨 조화일까. 이렇게 내가 지금 만나고 있는 친구들, 이웃들도 같이했던 여러 생활에서 함께한 경험이 차곡차곡 쌓여가는 과정이 아닐까 여긴다.
한동네에서 오래 살아왔던 내 어린 추억에는 이웃 간 음식 나눠 먹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물론 결혼식이나 환갑잔치 등은 동네잔치가 되지만, 몇 대에 걸친 선형들의 저녁 제사를 모시고 나서 늦은 시간에 차려진 제물을 동네 어른들에게 나눠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그 음식을 나르는 역할은 발 빠른 어린이들의 몫이었다. 그때의 정경이 지금도 선하다.
이런 잊지 못할 정경이 마음 밑에 남아 고향을 잊지 못하고 고향 친구를 만나면 너무나 많은 추억이 함께 따라 올라온다. 이들과 함께한 추억이 내 가슴 속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잊힌 듯 아스라하지만, 언뜻 기회가 닿으면 표면으로 올라와 내 생각을 풍요롭게 하는 내 삶의 밑바탕을 받치는 한 지주대가 되고 있다.
이제는 고향 생활보다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더 많이 해온 지난 삶에서는 자연히 직장의 동료들이 더 많이 내 삶 속에서 자리를 같이하고 있다. 여러 즐거움과 함께 어려움을 같이 해결하고, 밤새워 주어진 일을 해내고, 그 결과를 뿌듯하게 공유하는 자리를 마련하면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즐거운 일을 공유하고, 어려움이 있을 때 마음을 다독거려 위로하기도 했었다.
학교 동기나 선후배는 어떤가. 같은 선생님 밑에서 공부했고, 그분들의 지식과 지혜를 나눠 가졌다는 것에 동료의식을 넘어, 같은 부류라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제 시간과 공간을 같이 하는 이들 모두가 내가 간직해야 할 결코 바꿀 수 없는 보물들이다.
인연 있는 내 친구와 동료들에 대한 애틋한 정과 함께 이제는 단순한 이해의 폭을 더욱더 넓혀야 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어는 보는데, 원래 가진 작은 그릇의 범위를 넘어나지 못할 것이라 스스로 가늠해본다.
존경의 대상인 세계 종교 지도자들이나 우리에게 큰 영향을 주었던 역사에 남아있는 성현들의 말씀은 나를 버리는 순간에 더 큰 세계를 만난다고 하는데, 속 좁은 나는 아직도 내 울 안에서 내 것만을 챙기려는 이기심을 이타심으로 바꾸지 못하고, 작은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도 선후배와 친구들, 내 옆 이웃에게 적어도 불편만은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을 뿐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