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착을 끊고 지나온 미련 털어내면서
내 마음을 점점 가볍게 관리하는 것이
정신세계에서 진정 나를 찾는 길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79)
전북대 명예교수
어느 정도 나이 든 사람들 간에 회자하는 ‘마음은 청춘’이란 얘기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나이 먹어 가면서 육체는 늙어 가지만, 마음만은 그 몸에 어울리지 않는 과거 청춘의 시간에 머물러 있음을 뜻한다. 늙음은 내가 불러들인 것도 아니고, 내가 결코 바라지도 않은 것이다. 스스로 찾아와 시간에 얹혀 지나다 보니 변한 것을 외양으로 나타낼 뿐이다. 어찌 보면 육체의 늙음은 세월이 나에게 준 값진 선물이 아닐까 하고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누구도 그 선물을 가로챌 수도 없고 내가 가진 것을 줄 수도 털어버릴 수도 없는 나만의 고유한 자산이다.
육체의 변화는 거슬를 수 없는 자연의 법칙이나. 그 내면, 몸속 어느 깊은 곳에 웅크리고 있는 마음은 전연 딴생각을 하고 있다. 마음은 몸의 노쇠를 인정하지 않고, 젊음의 팔팔함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으니 이를 어쩌나. 몸은 물질의 영역에 들어가나, 마음은 비물질, 정신의 범주에 든다. 그렇다. 이 세상 어느 물질이라 하더라도 매 순간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한순간이 지나면 그 지난 자국으로 물질은 변화되어 있다. 금방 찍은 사진의 모습도 지금 이 순간의 나는 아니다. 절대적 기준이 아닌 비교 대상인 모든 물질, 인간의 몸까지 합하여 진정 정지된 것은 없고, 변화의 순간순간을 맞고 있다.
그러나 정신 영역, 마음은 어떤가. 한순간에 집착하면 과연 여기에 시간의 영역을 도입할 수 있는가. 물질은 변하나 비물질인 마음은 변화될 수가 없다. 변화를 일으키는 요인이 없기 때문이다. 마음이 청춘의 상태에 머물러 있으면, 그 상태, 청춘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육체는 늙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다.
유사하게 많은 현자 그리고 종교 지도자들은 육체가 아닌 마음을 다잡는 수련을 강조하였다. 매 순간 변하는 육체에 집착하면 결코 변화의 속도를 따라갈 수 없다. 변화되지 않는 정신으로 가야 진정한 ‘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육체는 이 세상 모든 것을 받아들일 수 없지만, 정신이 만들어 낸 마음은 무량하게 모든 영역을 한꺼번에 품을 수 있다.
해납백천 유용내대(海納百川 有用乃大)라고 했던가. 바다는 수많은 시냇물을 받아들여 자기를 키운다. 그렇다. 우리 정신세계는 많은 것을 끝없이 수용하여 내 몸집을 키울 수가 있다. 여기에는 크고 작다는 기준이 존재하지 않음은 확실하다. 무한대이면서도 좁쌀의 크기로 작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 낳은 마음은 무형이면서도 우리 육체를 지배하고 있으니 마음이 청춘이라면 내 육체도 딸려가지 않을까 하는 헛된 허상에 잡히기도 한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준 훈장이 아니듯 늙음도 내가 자의로 받아들이는 현상은 아니어도 이제 마음과 육체를 같이 다스리는 슬기를 보여야 하지 않을는지.
시간이라는 쉼 없는 열차에 타고 있는 육체는 변화되지만, 열차 밖 불변의 경지에 있는 마음은 이 변화를 따라가지는 않는다. 젊음의 아름다움은 우연에서 만들어진 한순간의 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누구도 쉽게 빚을 수 없는 나만의 예술작품이라 하는데, 이 작품 속에 걸맞은 마음이 깃들어 있을 때 빛을 발할 수 있다. 변치 않는 마음에 의존하면서 자신의 육체가 변해가는 모습을 편안한 마음으로, 순리대로 받아들이는 것이야말로 훨씬 매력 있고 중후한 멋을 풍긴다.
우리가 약속할 때 백 년 천 년 마음 변하지 말자고 다짐을 한다. 육체는 변하나 마음은 변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늙음은 육체가 약해지고 쇠약해지는 과정이지만, 마음은 육체에 딸려 가는 것이 아닌, 또 다른 경지임을 알아가는 나이에 접어들었나 보다. 마음은 청춘이라고 했는데,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마음의 상태이며, 정신이 마음을 굳건히 뒷받침할 때 영원의 영역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는지.
지금의 현상을 넘어 마음의 집착을 끊고 지나온 미련을 털어내면서 내 마음을 점점 가볍게 관리하는 것이 정신세계에서 진정 나를 찾는 길이 아니겠는가 생각해 본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나 한발 한발씩 걷다 보면 조금씩 가벼워짐을 느끼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육체는 내 의지에 상관없이 쇠락해 가지만, 마음만은 이를 따라 가지는 않으리라 다짐해 본다. 육체에 기대기보다는 정신과 마음에 의지하면 노년을 더 알차고 풍요롭게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했던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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