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옹이와 사람 마음속 아픈 상처도 같은 부류에 속하지 않을는지
대자연의 품에서는 여러 생명체가 동지임을 느끼고 살아가야겠다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83)
길가에 자리 잡아 많은 길거리 사람들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가로수의 겉은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상처가 많다. 뭇 사람과의 스침, 자동차, 그 외에 움직이는 물건에 다쳐 생긴 흉터다. 얕은 상처 자국도 있지만, 깊이 파여 속살을 드러내고 안에까지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검게 변한 흉한 모습을 보게 된다. 사람도 험하게 생활한 사람은 겉모습에 나타나기도 하지만 쉽게 내면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무는 거친 환경에서 자란 모습을 외양에서도 쉽게 알아볼 수가 있다.
깊은 산에 들어 눈에 띄는 나무들은 사람들에게 치인 가로수처럼 밖으로 나온 상처가 쉽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 밋밋한 외양이 유복한 집안에서 곱게 성장한 자제 같은 모습이다. 그러나 어느 나무치고 묘목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은 경우가 있으랴, 자라면서 어릴 때 벌레의 침범을 받고 자기 줄기를 내리고 나면 그 줄기가 비바람으로 꺾어지기도 하고 자기들끼리 부딪히면서 상처를 입을 경우도 있을 것이다. 또한, 크면서 제 역할을 다한 곁가지는 스스로 성장을 멈추게 하면서 잘리면서 그 상처를 몸속으로 안아 들인다. 그래서 밋밋하게 자랐다고 여기는 나무에도 흉터를 감싼 옹이가 생긴다.
어떤 이유로든 상처받은 것을 안으로 삭이는 과정에서 생긴 흔적이 옹이다. 나무는 정직하게 자기가 받은 어려움을 자기 자신에게 분명하게 흔적으로 남겨 끝까지 간직한다. 나무는 인간의 필요에 따라 온몸을 내어주어 한겨울 따뜻하게 품어주는 난로의 화목이 되는가 하면, 그들 삶의 터전인 집을 짓는 용도로 자신을 통째로 내어주는 일도 있다. 몸을 갈가리 쪼개어 집기를 만드는 경우 나무가 일생 간직했던 상처로 만들어진 응어리가 나뭇결로 고스란히 자기가 겪은 흔적으로 나타난다. 옹이가 박힌 부분은 우리가 볼 때 아름다운 무늬이지만 나무의 입장에서는 아픈 상처를 감싸기 위한 또 다른 노력의 산물이었다.
성장하는 과정 중 봄, 여름, 가을을 거쳐 겨울 동안 일어난 흔적을 고스란히 제 몸에 기록하고 간직하는 것이 나이테이며 옹이의 모습이다. 나무는 자기가 맞았던 여러 상처를 고스란히 자기 몸의 한구석에 기록으로 남기며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대로 간직해왔다. 하긴 사람도 물리적인 상처는 외양에 남지만, 내면의 상처와 아픔은 어디에 기록되는가.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마음의 깊은 속에 응어리로 남지만, 그것이 표출되어 다른 사람이 알 기회는 별로 많지 않다. 어찌 보면 나무는 가장 정직하게 자기의 상처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그 아픔을 밖으로 표출하기보다는 내면에 있는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소나무 가지가 꺾였을 때나 상처가 났을 때 송진이 흐르는 것을 보면 내 상처에서 피가 난다고 느껴진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는 느낌에 따라 다르겠지만 계속되는 삶의 길목과 여울에서 크고 작은 어려움을 겪고 그 고난을 하나하나 이겨가면서 생활하고 있다. 그 아픔은 경제적인 것이 있는가 하면, 사람의 관계와 함께 자신의 건강, 가족의 질병에 따른 고통,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같이 느끼는 일도 있지 않은가. 부모가 자식의 아픔과 괴로움을 본인보다 더 심하게 앓는 경우를 쉽게 보고 있다. 육체적 질병은 쉽게 느끼지만, 마음의 괴로움은 그 누구와 그 고통을 나눌 수도 없다.
나무는 자기가 당하는 아픔을 고스란히 자기 몸에 안고 간직하고 있지만, 우리의 아픔을 어디에 기록하고 저장되는지 알 수가 없다. 부처님이 출가한 이유가 생로병사(生老病死)가 직접 원인이 되었다는데, 타인이 처한 아픔을 같이 느낄 때 일어나는 자비의 감정이다. 종교지도자들이 중생과 같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어찌 보면 나무의 옹이와 사람 마음속에 있는 아픈 상처도 같은 부류에 속하지 않을는지. 지나가는 길에 꺾어진 나뭇가지에서 수맥이 흐르는 것을 보면 나무가 아픔을 이기기 위한 진한 눈물이 아닌가 하고 곱게 쓰다듬으며 위로를 하는데, 그 위로가 도움이 되려는지. 나무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는 한 뿌리에서 시작되었다는데 나무인들 다를 것인가. 대자연의 품에서는 여러 생명체가 같은 동지임을 느끼고 살아가야겠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