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을 모두 주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흙의 품성
욕심에 본심을 잃는 인간 삶에 큰 교훈 줘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76)

신동화전북대 명예교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길과 건물을 온통 도배한 삭막하고 온기 없는 도시에 사는 사람을 제외하고 그 수는 꽤 줄었지만, 시골 생활은 눈 뜨고부터 흙을 접하면서 산다. 흙벽으로 둘러진 방에서 토방을 딛고 나서면 흙마당이고, 한 걸음 뗄 때마다 흙을 밟지 않을 수는 없다. 

대부분의 우리 생활은 흙과 접하면서 살았고 마지막은 흙으로 돌아간다. 흙은 이 세상 모든 생명체를 창조한 어머니다. 탄생의 근원은 모두 흙으로 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보통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렇다. 삶의 여정은 흙이 만들어 주어 독립시켰던 개체를 다시 그의 품에 안아 원래의 자리, 흙 속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이다. 

흙이 품어 안아 시간을 들여 만든 모든 생명체에게 어머니인 흙은 아무 보상을 바라지 않는다. 흙에 뿌리를 내어 어머니의 젖인 양 진기를 뽑아 열매 맺은 곡식들은 한동안 보살폈던 인간의 먹이가 되나 흙이 언제 내가 그들을 만들어 주었으니 그 은혜를 갚으라고 재촉하는 경우를 보았는가? 

농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 매일 흙과 대화를 나눈다. 첫봄 대지가 따뜻해지기 시작하면 흙에서 몽글게 올라오는 친숙한 입김을 온몸으로 느끼며, 시간이 되면 논과 밭에 나가 일하는 어른들의 뒤에서 흙과 나누는 친숙한 대화를 듣는다. 

논갈이하는 삼촌의 쟁기에서 위로 올라오는 찰진 흙에서 그 매끄러운 모습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순간 작품이며 흙의 무한한 변신이다. 논갈이한 흙 두렁은 다음을 받아들일 흙만이 가진 한없는 너그러움의 표시이다. 어떻게 요구하든 자기를 모두 내주어 상대의 필요에 부응해준다. 모심으러 논에 첫발을 들이밀 때 흙이 주는 미끄러지듯한 그 부드러움과 매끄러운 촉감은 아직도 내 발과 종아리에 남아있다. 

가을철 벼 베고 나서 보리 씨 뿌리고 흙덩이를 부수어 덮는 과정은 흙과의 긴밀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이다. 여름 내내 키워주었던 벼를 내주고 다시 다음 곡식의 씨를 안아 키움의 보살핌을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흙은 어느 한순간도 쉼이 없다. 햇볕을 흠뻑 받아들이는 시간이 있는가 하면, 어느 날 시원스레 쏟아지는 비를 받아들여 목마름을 해결하고 다음 찾아온 생명체에 줄 생명수를 갈무리한다.

밭은 어떤가? 씨 뿌리는 대로 밀이나 콩을 키워내고 조금의 쉼의 여유도 없이 메밀을 받아들여 넓은 가을 들판에 철 이른 흰 눈밭을 만들도록 온 정성을 다한다. 가을걷이가 다 끝나고 텅 빈 논밭은 다음 계절을 위하여 준비하는 시간이다. 빔을 텅 빔으로만 여겨지지 않는 그 기간이 대지의 겨울이다. 한시도 허투루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서 있음의 본뜻을 간직하고 있다. 

겨울 빈터에는 외롭지 않게 여리고 파릇한 독세기 풀이 같이 있어 대화의 상대가 되고 땅속 깊이에 자리를 마련한 우렁이는 몸집을 불리고 있다. 가을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먹이를 채워 몸집을 불린 미꾸라지는 겨울잠을 자기 위해 논 밑에 아늑한 제집을 마련하였다. 이들이 있어 흙은 결코 외롭지 않다.

더욱 태양은 매일 제시간에 흙과 천년의 대화를 나누고, 바람은 때때로 찾아와 어제와 같은 손길로 어루만져준다. 시절에 맞게 눈이 쌓이면 그런대로 제 모습을 안으로 감추고 흰빛의 눈을 더 돋보이게 한다. 흙은 한 뼘의 빈터를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나무와 풀을 초청하여 알뜰히 키우고 있으며 물길을 만들어 흘러가게 하는 생명력을 주고 있다. 

한구석 빈 땅에 정성 들여 심어 놓은 장미 한 송이가 건물 틈에서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진한 향을 품어내게 만드는 것은 한 줌의 흙이 이루어 내는 신비요 불가사의한 기적이다. 흙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를 창조한다. 그리고 무한히 변신하도록 도와준다. 흙이 가진 모든 것을 주어 새로움을 만들고 전연 다름을 선사한다.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주고 보상을 바라지 않는 그 품성은 욕심에 본심을 잃는 인간들의 삶에 큰 교훈을 주고 있다. 

줌은 준다는 것 자체를 인식하지 못할 때 참이 있다. 오른손이 한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하는데, 내 어찌 그런 경지에 이를 것인가. 말과 생각은 옳은 방향으로 가는데 행동은 그렇게 되지 않으니. 어머니, 흙이 만들어 준 내 마음과 몸뚱이는 언제나 흙의 심성을 닮아갈 것인지, 석양에 이르러 초조한 마음이 든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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