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이나 재물 상대로 한 실수는 회복할 수 있으나
사람을 상대로 한 단 한 번의 실수 용납되기 어려운 것은
결코 원상복구가 불가능하기 때문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78)
지우개가 거의 필요 없는 시대가 되었다. 오랫동안 글 쓰는 도구는 종이와 먹 그리고 조금 지나 연필이 되었고, 잉크가 나오면서 글 쓰는 재료가 바뀌어왔다. 그러나 타자기가 우리 생활에 들어온 다음, 종이에 쓰는 연필의 용도가 좁아지더니, 글쓰기에 기계화가 시작되고, 컴퓨터 자판이 책상을 차지하면서 쓰고 고치는 역할을 대신하니, 지우개가 해야 할 자신의 역할을 거의 잃어버렸다.
컴퓨터 시대 전에는 종이에 연필로 초안을 쓰고, 잘못된 부분은 지우개(고무라고도 했음)로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했다. 심지어 그림을 그리는 건축 설계도를 작성할 때도 잘못된 부분은 지우개로 지우고 다시 그리는 작업을 반복하였다. 컴퓨터 자판에 이어 캐드가 나오면서 글쓰기건, 설계도면이건 모두가 컴퓨터 자판에서 쓰고 그리고 수정하거나 보완이 한 화면에서 쉽게 이루어진다.
나도 지우개를 열심히 사용한 세대였고, 연필을 칼로 깎아 흑연심을 날카롭게 만들어 글쓰기를 하였다. 나무로 된 연필을 깎을 때 향긋한 향이 연필 깎는 재미를 더한다. 제조회사의 배려였다. 연필 깎기도 귀찮을까봐 샤프 펜으로 대체되었고, 이미 흑연심이 들어있는 펜 꼭지를 꾹꾹 눌러 가느다란 흑연심이 나오게 한 후 글쓰기를 계속하였다.
지금도 내 필통에는 연필과 수십 년 된 샤프 펜이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그 옛날 내 손의 촉감을 느끼고 싶은데, 식어버린 사랑처럼 눈길 한번 주지 않으니, 얼마나 섭섭하고 아쉽겠는가. 그래도 감히 쓰레기통에 버리는 무정함은 결코 마음에 내키지 않는다. 언젠가 내 유품을 정리할 때가 되면, 나와 더불어 흔적을 없애는 순간에 같이 한 긴 기다림의 세월에 마침표를 찍겠지.
지우개에 대한 옛 얘기로 너스레를 떠는 이유는 연필로 쓴 글은 지울 수 있으나, 머릿속에 기록한 마음의 흔적은 도대체 지울 수 없으니, 이런 것도 지우는 첨단 기기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을 말하기 위함이다. 물론 일방통행 열차표로 긴 여행길에 들어서기는 했지만, 가끔 뒤를 돌아보면서 지워버리고 싶은 머릿속 아픈 기억들이 있어 이를 ‘delete’(지우기) 할 수 있는 장치는 없을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요사이 부쩍 늘고 있는 치매는 내 머릿속 기억을 차례로 지워 가까웠던 친족과 심지어 자식은 물론 자기 평생 반쪽의 영상을 지워버리는가 하면, 나 자신의 존재까지도 없애 버리는 상황에 이르는 것을 주위에서 보고 있다. 지금까지 곱게 간직했던 기억들을 연필로 흰 종이에 쓴 기록같이 어느 누가 지우개로 싹싹 지우고 있는, 못된 짓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써놓은 오래된 것은 아마도 지우는데 조금 시간이 걸리고, 지워도 자국이 남아 어슴푸레 되살릴 수 있는데, 조금 전 남긴 기록은 쉽게 지워지나 보다. 지우는 것도 시간차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도 일상생활에서 한 일을 너무 자주, 쉽게 잊는다. 건망증이라고 하는데, 우리 뇌의 기억단자가 연필 글씨를 닮아 가나 보다. 잠깐 쓴 기록을 지우개로 쓱싹 지워버려 도통 다시 읽어낼 수가 없어지는 모양이다.
얼마 전 글에 100-1=0이라는 뜻의 아리송한 내용을 제시한 바 있었다. 100의 실적을 냈다 해도 한 번의 실수는 결국 100 전체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다는 상징적인 뜻이었다. 우리 삶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하곤 한다.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허망한 경험 말이다. 한 번의 실수는 병가지상사(兵家之常事)라고 하든가. 실수를 얼버무리는 방편이긴 하지만, 전쟁을 하는 군대의 일에서도 실수를 할 수 있으며, 그 실수를 거울삼아 결코 같은 실수를 해서는 아니 된다는 경구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그 실수는 결코 지워 버릴 수 없는 사건이고, 그 실수로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면, 그냥 실수로 넘겨버릴 수 있겠는가.
물질이나 재물을 상대로 한 실수는 회복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을 상대로 한 단 한 번의 실수는 어느 이유든 용납되기 어려운 것은 결코 원상복구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교육에서 일어나는 실수는 한 인생의 전 과정을 잘못 인도함으로 결코 가볍게 여길 수 없으며, 더 나아가서 많은 사람, 국민을 대상으로 한 정치는 더더욱 한 번의 실수도 결코 용납될 수가 없다. 자기가 결정한 정책이 너무나 많은 사람의 행ㆍ불행을 결정짓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현들은 정치지도자의 자질을 그렇게 강조하셨나 보다. 한 개인의 기억도 지우지 못하는데, 그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 기록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교육자와 지도자들은 명심해야 할 일이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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