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통한 오늘 우리의 각오를 다지는
선정릉이 산 역사로 활용되기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94)

신동화 회장 식품산업진흥포럼

선정릉은 서울 강남구 선릉로에 위치한 선릉과 정릉으로 알려진, 조선조 9대 왕 성종과 11대 왕 중종의 능과 함께 성종의 왕비인 정현왕후의 능을 모신 곳이다. 아마도 조선 초 당시는 경복궁에서 보면 아주 멀리 떨어진 한적한 시골이었으나, 지금은 강남의 중심, 가장 번화한 곳이 되었고, 주위에 사는 많은 시민이 찾는 쉼터 명소가 되었다. 가장 높은 빌딩이 많은 강남의 번화가, 시멘트 무리 속에서 진한 녹색으로 우거진 숲이 너무나도 아름다운 공원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다. 시간이 있을 때 한적한 공원을 산책하면서 여유를 즐기고 봄, 여름, 가을의 계절 변화에서, 나무가 형형색색 옷단장하고 변하는 모습에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다. 계절이 바뀜을 자연스레 감상하면서, 이어지는 겨울에는 참나무 등 활엽수가 걸쳤던 옷을 벗는 모습을 통하여 본래의 자태를 감상한다. 이들과는 다르게 청정한 소나무는 드디어 나를 알릴 때가 되었다는 듯 푸름을 뽐내고 가지마다 소복이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은 한겨울의 정취를 더욱 북돋아 주고 있다.

새순이 앞다투어 나오고 봄이 무르익어 가면 꿩이 짝을 부르는 소리가 우렁차고, 조금 지나면 대여섯 마리의 새끼를 거느린 어미가 의젓하게 주위를 살피면서 종종걸음으로 앞을 가로지른다. 신비하고 경이롭다, 가끔은 이름을 물을 수 없는 새가 내는 독특한 소리는 그 녀석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음성만으로도 미루어 짐작하기에 아름다운 모습이 아닐까 여겨진다. 각양각색의 소리 울림은 이 숲이 함께 사는 이들 동물과 같이 있다는 포근함을 느끼는 순간이다.

공원 관리 측에서 수목 등을 세심하게 정리하고 산책하는 길도 깨끗하며 안내도 등도 준비되어 이 선정릉을 알리는 데 부족함이 없다. 하루에 두 번, 안내인이 관람객을 대동하여 자세한 역사 공부를 시켜주니, 전에 몰랐던 조선왕조의 내력과 선정릉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한다. 그래서 신이 가는 계단, 신도와 왕이 오르는 어도의 뜻을 알았다. 또한, 왕릉이 구축되는 과정을 비디오로 자세히 보여주어 겉모습의 왕릉만이 아니고, 구축되는 과정을 실감 나게 알 수 있어 우리 조상들의 알려지지 않은 비법을 이해하는 좋은 기회도 된다. 특히 역사문화관은 선정릉의 역사와 성종과 중종 그리고 정현왕후의 내력까지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특히 우리나라 왕릉의 전국 분포까지 자세히 알려주고 있다. 평소에 지나치고 미루어두었던 우리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된다.

조선(1392~1897)왕릉은 왕과 왕비 그리고 대한제국(1897~1910) 황제와 황후 포함 73분의 무덤을 통틀어 가리키며, 능은 모두 42기가 있으며, 북한에 있는 2기를 제외한 40기가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세계인의 유산으로 격상되었다. 유교의 통치이념에 바탕을 둔 조선조에서는 왕릉의 조성과 관리에 효와 예를 다하였고, 능참봉을 두어 세심하게 관리하였다. 특히 당시 믿음으로 정착한 명당의 개념은 왕릉의 위치 선정에 각별한 의미를 부여했으며, 때에 따라서는 지관을 재선정하여 이장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종묘의 제사는 물론이지만, 각 능에 제실을 두어 정한 날에 격식을 갖춘 제를 올리고 있다. 선정릉에서도 법에 맞는 제상을 차려 제를 올리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의미 깊은 선정릉의 내력을 알고 나서 참배할 때마다 가슴이 아린 망국의 한을 느낀다. 기록에 의하면 1592년 시작된 임진왜란 중에 선능과 정릉이 왜구에 의해 파헤쳐져 훼손되었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선조는 피난 중 왕릉의 훼손 소식을 들었고, 훼손된 왕릉에서는 시신까지 불태워진 모습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시신의 흔적도 찾지 못하여 별수 없이 성종과 중종 그리고 정현왕후의 옷가지를 갖추어 1593년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는 기록이다. 한 국가의 왕과 국모의 묘를 훼손하고 시신까지 불태워 흔적을 지워버린 왜구의 만행을 이제야 지탄하면 무엇 하리오. 나라를 빼앗기고 지킬 능력을 잃으면 왕이나 왕비 묘의 수난은 물론이고, 백성들은 얼마나 피눈물 나는 고통을 당했을 것인가. 

선정릉을 산책할 때마다 중종과 성종 그리고 정현왕후의 사후를 지켜드리지 못함에 대해 후손으로서 비통함과 다시는 이 나라의 주권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를 다짐하는 계기가 된다. 회한에 묻혀 쓰린 아픔을 넘어 우리를 다시 추스르는 기회가 되며, 아픈 역사를 통한 오늘 우리의 각오를 다지는 역사의 장소로 선정릉이 산 역사로 활용되었으면 한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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