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 동물이나 식물, 몇 겁의 인연으로 같은 시간대
우리와 삶을 나누고 살았으니 존중받아야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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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사이 반려동물, 반려식물에 대한 감정이 옛 생각과 많이 달라졌다. 반려동물의 범위도 개는 물론이고 새, 파충류, 심지어 쥐 종류까지 넓혀졌다. 같이 사는 생명체에 대한 애착의 감정이고,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몇 년 전의 일, 평소 감성이 풍부했던 동생에게서 울먹이는 음성으로 전화가 왔다. 자기가 애지중지해서 오래 키우던 새가 죽었다는 부고이다. 평소 베란다에 난 등 화초를 가꾸어 즐기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새까지 이렇게 애착을 두고 키우는지는 몰랐다. 전화 너머로 전달되는 목소리가 하도 애처로워 위로 겸 마음 다독거려 줄 요량으로 문상을 하고픈 마음이 문득 일었다. 문상하려면 조위금을 준비해야 할 터인데, 새 조문에는 과연 돈으로 해야 하나, 새가 평소 좋아했던 좁쌀로 해야 하나. 아니지, 새는 죽었으니 먹을 수는 없을 것이고, 조위금 대신 조화를 배달시켜야 하나? 이것저것 망설이다 다시 전화를 잡고 목소리로 조의를 표하고 애잔한 감정을 전하는 것으로 마음의 정리를 했다. 

반려견을 위한 동물병원이 개설된 지는 수십 년이 되었고, 사료하며 돌봄 분야가 큰 사업 영역으로 자리 잡았다. 농사가 생업이었던 옛날에는 가축의 힘이 농사를 짓는데 필수인 상황에서 가축이 병이 나면 돌봐주는 수의사는 농민에게는 없어서는 아니 되는 이웃이 된, 긴 역사를 갖고 있다. 우리 아버님께서도 농사짓는 소를 꽤나 심혈을 기울여 모셨고, 조금만 아파도 옆 동네 나이 지긋하신 소 의원을 불렀다. 지금으로 보면 수의사인데, 그 소 의원은 오랜 경험으로 진맥하고 침 등으로 처방하여 아픈 소를 치료해주었다. 발이 잘못되었을 때도 큰 대침으로 환부에 침을 놓아 거뜬히 제자리로 다시 돌려놓았다. 이처럼 가축에 대한 배려는 살뜰하였고, 특히 개나 염소 등은 한집안 식구같이 보살펴주었다. 물론 지금과 같은 반려동물의 개념은 아니지만, 주인과 짐승 사이에 살뜰한 교감이 오고 갔다. 

이제 반려견 전용병원은 물론, 호텔도 생겼고, 지방 한 곳에는 장례식장까지 운영되고 있다니 반려동물이 우리 일상생활에 들어온 것은 물론이고, 우리 정신영역까지 큰 위치를 점령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소가족 현상과 서로 기댈 수 있는 상대의 결핍에 따른 외로움의 해결방법이 아닐까 여기는데, 여기에 다른 이론을 제기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반려견이 주인에게 살뜰하게 대해주고 항상 함께하면서 교감하는 감정의 교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것과 다름없다고 하니, 대중 속에서 외로움이 가득 찬 현대사회에서 마음의 위로를 받는, 없어서는 아니 되는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나도 어릴 때 키우던 개를 10여 년 넘게 가족같이 키우다 내가 군대에 가 있을 때 늙어 생을 마감했다는 편지를 받고 엉엉 울었고, 한동안 울적했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그 이후 개를 키울 형편도 못 되었지만, 이제 동물보다는 식물에 더 애착을 두면서 살고 있다. 

반려동물은 자기 행동과 표정 그리고 음성으로 자기 필요를 주인에게 전달할 수 있으나 식물의 경우 세심한 관심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이들의 요구를 알아차릴 수 없으니, 특별한 교감 능력이 필요하다. 연약한 식물, 예를 들면 화초나 일년생식물은 잎사귀나 줄기의 상태를 보고 쉽게 물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으나, 관엽수는 한계를 넘어가기 전까지는 알 수 없으니, 달력에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물과 화초 비료를 더해주는 등 신경을 써야 한다.
 
반려식물도 한동안 정이 들어 가꾸고 감상하다가 자연의 섭리로 생을 마감할 때가 되면, 아쉬움과 생을 더 이어주지 못한 관리 불찰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쇠잔한 모습에서 안타까움으로 번진다. 특히 그 화려했던 양난의 꽃이 하나씩 하나씩 떨어지고 줄기만 남아가는 모습을 보면, 늙어가는 내 처지와 비슷하여 동병상련의 감정에 젖기도 한다. 

꽃이 다 떨어졌으나 꽃이 있게 한 잎이 아직 싱싱하게 푸름을 간직하고 있는데, 이 녀석을 그냥 쓰레기통에 넣어버리려니 미련이 남아 그래도 잊지 않고 물을 챙겨주다 보니, 밑에 있는 잎겨드랑이에서 다시 꽃대가 나온다. 이때의 신비함이란, 내가 관심 둔 보답이라 여기고, 그 꽃을 다시 즐기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런 반려식물도 이제 제대로 된 마지막 정리 수단이 있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동생의 금화조 죽음에 대한 조문을 전화로 했지만, 이제 반려동물이나 식물도 떠나보내는 의식을 치를 날이 올 것인가 갸우뚱해 본다. 이들 모두가 이 지구에 몇 겁의 인연으로 같은 시간대에 우리와 같이 삶을 나누고 살았으니 존중받아야 하지 않을는지. 생명에 대한 경외의 감정이 더해가는 나이가 되었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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