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날의 가버린 정취에 가까이하고 싶은 열망이 
내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감정으로 내 안에 담는 음식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95)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br>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추억에는 지난날의 기억에 즐겁거나 아쉬웠던 마음이 담겨 있다. 특히 음식과 관계된 기억은 인간의 생존본능에 속하기 때문에 간직된 생각이 쉽게 지워지지 않고 머릿속 깊은 곳에 새겨지는 경우가 많다.
나이 먹은 세대의 대다수는 먹는 것이 풍족하기보단 부족함을 느끼고 살았던 사람들이 많다. 그때는 맛보다 양이 우선이었고, 가릴 여유 없이 세끼라도 제대로 먹을 수 있으면 다행이라 여기고 살았다. 이때 먹었던 음식들은 그래서 추억의 음식으로 각자의 뇌리에 깊게 새겨져 있을 것이다. 길거리를 지나다가 붕어빵 굽는 냄새가 나면 본능적으로 킁킁거리며 둘러보는 것이 나이 먹은 사람들의 몸짓이 아닐까 한다. 
예전에 학교 앞 거리에 전을 벌리고 손님을 끄는 국화빵을 아는 세대는 추억의 음식으로 제일 먼저 꼽을 것이다. 친숙하고 향긋한 냄새가 마음속 저 밑에 잠자고 있던 기억을 쏜살같이 불러내 옛적, 어릴 때로 마음으로 시침을 돌려놓는다. 근래 밀가루값이 올라 찾기 어려워졌다는 붕어빵 가게를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없는 걸 보면 추억이 나를 잡아끄는 자력이 있나 보다.
짚불에 구워 놓은 군고구마의 구수한 향과 그 달콤한 맛에 주린 배가 같이 어울리면 어찌 그 맛을 잊을 수가 있는가. 한참 바쁜 여름 농사철에 가장 간단히 준비하기 쉬운 듬성듬성 채 썰어 넣은 애호박으로 구색을 갖춰 내놓은 수제비국은 한 그릇을 뚝딱 해치우기에 제격인데, 이 수제비국은 지금도 시장에서 눈이 가는 내 추억의 음식이다.

쌀이 귀한 시절, 대체 식재료로 가장 많이 사용된 것이 밀가루였고, 밀가루와 연결된 음식이 많이 생각난다. 모싯잎을 찧어 넣고 걸쭉하게 반죽하여 솥에 채반 위에 삼베 포를 깔고 걸쭉한 반죽을 부어 넣고 찐 개떡은 주린 배에 어찌 어울리지 않았겠는가? 그 따끈함과 손에 눌어붙는 촉감은 지금도 손에 닿아 먹으려 준비하는 기분이 든다. 새알심을 넣은 동지 죽은 추운 겨울 날씨와 궁합이 맞고 늦은 저녁 어머님이 한 그릇 퍼 건네는 그 순간이 머리에 그려져야 추억의 음식으로 제격이다. 한겨울 얼음을 깨고 소쿠리로 건져내는 민물새우를 넣어 시래깃국을 끓여 주시던 어머님의 그 손길이 있어야 추억의 음식으로 다시 살아난다. 겨울 동치미(상건지)는 따끈한 고구마와 만나야 제맛을 낼 수 있고 그 따끈함과 시원함이 어울려지는, 지금도 그 정취를 머릿속에서 되살릴 수 있다. 

배고픔은 모든 음식을 맛있게 만들지만, 제한된 먹을 수 있는 재료로 정말 맛깔나게 다루고 조리하여 자식들의 입맛에 맞게 음식을 만들어 주신 할머니와 어머님의 정을 그때는 느끼지 못하고 당연한 것으로 알았는데, 지금 거슬러 생각하니 가슴 저리게 다가가지 못하는 아쉬움이 스르르 내려앉는다.

사람이 사는 곳에서는 어디나 비슷한 심정이 통하나 보다. 미국의 흑인사회에서도 전통음식을 가리키는 말로 컴포트 푸드(comfort food), 혹은 소울 푸드(soul food)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 편안한 음식이나 마음의 음식, 모두 물질이 아닌 정신으로 통하는 음식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렇다, 개인에 따라서 대상은 서로 다르고 강도도 같지 않겠지만 우리 전통음식은 모두가 편안한 음식이고 서로 마음을 나누는 대상이 된다는 것은 확실하다. 부족하고 아쉬움이 있을 때 주림을 해결해 주었던 음식들, 그 맛과 향은 절박함 때문에 우리 유전인자에 그대로 투영되어 기록되고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그 맛과 향을 접하면 즉각 그 추억을 불러오는 마력이 생기나 보다. 

어찌 보면 이런 추억과 기억이 내 몸속에 남아있다는 것은 나만이 즐길 수 있는 행복의 한 단추가 되어 마음 속에 남아있다. 모든 것이 풍족하고 다 갖춰진 환경에서는 부족함에서 오는 절망감이 없고, 그 대상에서 특별한 감정을 가질 수가 없을 것이다. 추억의 음식은 다시 접하지 못하는 지난날의 가버린 정취에 가까이하고 싶은 열망이 내 마음속에서 솟아나는 감정으로 내 안에 담는 음식이다. 가끔 눈을 감고 그 옛날로 돌아가 추억의 음식을 마음으로 냄새 맡고, 맛을 볼 수 있는 경험은 나만이 갖는 행복의 한 순간이다. 이들 행복의 근원인 추억의 음식을 만들어 주신 분들이 모두 계시지 않는구나!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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