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200)
까치들이 새끼 키워 떠나보낸 낡은 둥지를 수리하는 작업으로 바삐 움직인다.
다시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에,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의 이어짐에 경외감 들어
겨우내 텅 비어있는 나무 위 까치의 빈 둥지를 볼 때마다 그리움과 아쉬움이 교차하였던 내 기억에 불이 들어온다. 봄 냄새가 어른거리자 까치들이 새끼를 키워 떠나보냈던 낡은 옛 둥지를 수리하는 작업으로 꽤 바삐 움직인다. 지난해 작지 않은 큰 집을 짓기 위해 암수가 번갈아 몇 날 며칠 동안 가느다란 나무줄기를 하나씩 하나씩 물어다 튼튼한 집을 지었는데, 또다시 수리하고 있다. 새끼를 낳아 잘 키워 후손으로 이 세상에 내보낸 지 몇 개월, 다시 새 생명을 탄생시키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모습에서 자연에서 일어나고 있는 생명의 이어짐에 경외감이 든다.
우리 사람들도 비슷하지 않을까 한다. 부모님으로부터 생명을 받고 이어진 보살핌으로 성인으로 성장하였고, 짝을 맞아서 한 가정을 이루고 자식까지 낳아 다복한 가정을 이루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부모님은 큰 역할을 다 했다고 여겨진다. 이어진 삶에서 나도 딸 하나를 두고 낳을 때부터 커가는 과정을 보는 것은 초보 부모라 하더라도 보람된 매일 매일이었다. 기어 다니는 어린애의 모습을 겨우 벗어날 때부터 매일매일 밀려오는 회사 일이며 친구들과 모임 그리고 며칠이 멀다 하고 떨어지는 출장명령, 허둥대며 살다 보니 자라나는 내 자식을 챙기는 일에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지 못하는 무심한 일상이 되었다.
지금의 젊은 부모가 이 글을 읽으면 생각이 다르겠지만, “나 때”의 사정은 이랬고, 그것이 일반적인 통념이라는 얘기다. 물론 엄마가 모든 것을 잘 챙겨줄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지만, 그렇다고 아비의 몫이 감하여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딸애의 일생에 추억으로 남을 학교 행사에도 제대로 참여하지도 못하고 지나쳐버리는 무심함이 지금 생각하면 마음속 안타까운 아쉬움으로 남지만 어찌하랴. 그 기억이 저 멀리 추억으로라도 남아 있으니 다행이라 치부하고 있다. 고등학교, 대학까지 스스로 찾아가는 과정을 보면서 자연스레 그렇게 되리라 여기고 있었으니. 무심함으로 속내가 감춰진 내 마음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짝을 찾는 과정, 부모로서 뿌듯함과 자식 장래에 대한 불안함, 중요한 결정에 대한 망설임 등은 아마도 결혼적령기를 맞는 자식을 둔 부모의 공통된 심정이리라. 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과정이고, 부모를 떠나 독립된 장래를 꾸며야 하는 자연의 섭리이니. 그런 스스로 찾아가는 행동에 지나놓고 보니 부모에게 효도했다 여겨진다. 요사이는 결혼하지 않겠다는 자식들이 늘어나 부모의 속마음을 애타게 하는 경우가 많다는데, 그런 어려움을 주지 않고 순탄하게 가정을 꾸린 것에 감사할 따름이다.
꽤 오래전, 결혼식 날을 정하고 준비하는 것은 제 엄마의 몫이었다. 나는 예식장에서 신부인 딸의 손 잡고 주례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 신랑의 손에 내 핏줄기를 넘기는 일, 꽤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나중에 생각하니 정말 짧은 순간이었네. 예식 끝나고 돌아오는 길, 축하하려고 온 친지들과 헤어져 집에 돌아와 소파에 앉는 순간, 무엇인가 큰 것을 놓쳐버린 심정이 왈칵 쏟아진다. 어제까지 저녁을 같이 먹었던 딸애는 어디 갔지? 시집보냈다는 것을 받아들이며 마음을 추스른 데 순간적인 갈등이 인다. 더욱 가슴 서늘하게 하는 것은 딸애가 쓰던 빈방을 열어봤을 때. 그 애가 항상 자고 있었던 잠자리는 그대로 있고, 머리 싸매고 공부했던 책상은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어릴 때부터 옆에 끼고 살았던 곰인형이 덩그러니 짝을 잃고 앉아있다. 이 광경이 쉽게 머릿속에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 제 길을 찾아갔는데 보낸 나는 이 변화가 정리되지 않고 과거 추억에 마음을 붙들어 매 놓고 있구나.
이제 시간이 많이 흘러 그 감정이 꽤 무디어졌지만, 그때 느꼈던 그 서늘함은 그 강도가 그리 약해지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이제 손녀를 우리에게 안겨주어 또 다른 알찬 즐거움과 기쁨을 주고 있으니, 빈 둥지를 보는 서운함은 서서히 감해지지 않을까 가늠해본다.
오늘도 까치는 내가 그렇게 아쉽게 느꼈던 빈 둥지를 수리하느라 바쁜데, 우리 부부에게는 다시 찾아와 사용할 빈 둥지를 다시 사용할 대상이 없으니, 아쉬움을 안고 다시 수리할 생각은 없구나. 오늘도 부지런히 나뭇가지를 물어 나르는 까치가 부럽다. 또 다른 생명을 맞을 준비로 분주히 노력하고 있으니. 곧 깔끔히 단장한 둥지에 어린 새끼가 여린 주둥이를 엄마를 향하여 벌리는 생명의 잔치가 다가오고 있다는 기대감에 나까지 마음이 부푼다. 딸을 생각할 때는 같이 생활했던 과거의 기억보다는 현재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나만의 생각이 훨씬 더 애틋하다. 이것이 부모의 심정이 아닐까?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관련기사
☞ 네이버 뉴스스탠드에서 식품저널 foodnews를 만나세요. 구독하기 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