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음은 지나간 날로 묻히지만, 꿈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냐
지금도 가슴에 가꾼 꿈이 있고, 그 꿈은 오늘을 사는 활력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199)
오늘 그리고 내일이 나와 더불어 항상 그대로 있을 것이라는 평상의 생각으로 지내다, 어느 날 그게 아니구나 하고 늦은 깨달음이 온다. 거울에 비친 내가 갑자기 어색해 보이고, 머리에는 듬성듬성 이 여름에 서리가 내리고, 자주 오르던 언덕이 높아 보인다. 그때야 비로소 문득 인생 변곡점을 넘어 섰구나 하니, 마음속에 늦은 가을바람이 휙 하고 스친다. 은연중에 다가올 남은 날들을 어림잡아 보는, 철 들은 때를 맞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시작이 있었으니 당연히 언젠가 마무리하는 날이 올 것은 모두가 알고는 있으나, 이 자연의 섭리를 지나치거나 내 일이 아니라는 비논리적인 생각에 머물 때가 있다. 시간은 지금도 마무리를 향하여 쉼이 없는 데도. 하긴 한창 젊을 때는 닥친 일들에 묻혀 살다 보면, 어찌 다가오고 있는 내 생의 마무리가 눈에 들어오겠는가. 어김없이 스쳐 가는 시간에 조금씩 나를 내주다 보면, 그 활력 넘치던 젊은 날은 어느덧 추억이 되고, 그 추억도 잠시, 몸뚱이 이곳저곳에서 삐걱거리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다 보면 맥없이 나에게 주어진 마무리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단계에 접어든다. 저항하고 부정해 봤자 기울어지는 속도를 더 높일 뿐이다.
비물질인 정신 영역에 물질인 육체가 연결되지 않으면 우리는 생체로서 작용하지 못한다. 정신과 마음은 이팔청춘인데 육체는 여기에 따라가지 못할 때 느끼는 마음의 괴리를 미리 막아주는 역할은 참으로 긴요한 일이다. 마음이 젊으면 육체도 따라가는가, 심리학자들의 연구 결과에서 이를 증명하고 있긴 하지만, 그 한계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즉, 젊게 생각하면 육체도 그에 따라간다는 이론인데, 실제 실험을 통해서 이를 증명한 학자도 있다. 그렇게 긴 시간이 아니고 제한된 환경과 시간의 제약조건에서 얻은 결과이니, 인생을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에게 그대로 적용되려는지 모르겠다.
분명 출생의 순간에 그 육체에 마무리의 씨앗이 내재해 있고, 그 씨앗이 서서히 성장하여 삶과 등식을 이룰 때가 40대 고개가 아닌가 여겨진다. 이미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시작과 더불어 줄어들고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을 육체가 정신에 알려주기 때문이다.
나이 들수록 시간이 빨리 지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게 느끼는 이유를 증명해 놓은 글도 있으니, 절대 불변의 시간이 우리 생각에 따라서 고무줄이 된다니 그것 또한 이해하기 어려운 영역의 하나이다. 사실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은 초등학교 저학년에서 느낌을 지금도 갖고 있을 것이다. 오전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참을 친구들과 놀고 냇가에 가서 목욕하고도 시간이 남아있는 것을. 우리 생체 시계는 육체의 나이와 관계가 있나 보다.
이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얼마나 썼고 전체에서 빼면 얼마나 남아있는지를 알 수 있으련만, 그것을 계산할 계산기가 나에게 없구나.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왜 구태여 남아있는 시간을 가늠해 보려 하는가 하는 의심이 든다. 그 시간을 알아서 무엇 하려는고. 어떻게 생각하든 다가올 것이고, 내 의지와 관계없이 째깍 째깍 초침은 돌아가고 있는데.
근래 평균수명이 급격히 증가하여 70대는 청년이요 80대는 넘어야 좀 나이 먹었구먼, 하고 여기는 시대가 되었고, 100세 장수는 일반적으로 그냥 받아들이는 풍토가 되어가고 있다. 이제 남아있는 시간을 셈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를 고민할 때가 되었다. 평생 일할 것이라 여겼던 직장의 수명은 점점 짧아지고, 나이 든 사람들은 매일 변하는 사회 여건에서 발붙일 곳이 점점 좁아지고 있다.
평균수명이 늘고 있다는 것을 즐거움으로 받아들이기에는 현실이 너무나 팍팍하다. 컴퓨터나 IT 시대는 더욱 빠르게 변화를 거듭하고 있으며, 나이 든 사람들은 새로운 정보화 시대에 완전하게 적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이런 추세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소외감에서 느끼는 스트레스는 또 다른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온다.
이제 젊음이 희미해지면서 나에게 주어진 미래의 길이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은 실감하는데, 이 속도를 늦출 묘안이 떠오르지 않으니, 그 변화를 수용하는 쪽으로 내 생각을 바꿀 수밖에 없다. 큰 흐름의 파도에 떠밀려 가기는 하되, 가는 방향은 알고 싶다. 더욱 신경 쓰이는 것은 내가 살아있고 지금도 내 육체는 생리작용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이 급격한 변화에 어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내 정신영역에 소박한 꿈을 내 머릿속에 그려 넣어야 삶의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젊음은 지나간 날로 묻히지만, 꿈마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도 가슴에 가꾼 꿈이 있고, 그 꿈이 오늘을 사는 활력으로 작용한다. 꿈을 꾸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마감할 때까지 우리 삶은 끝나지 않았다.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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