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정부양곡 가공용쌀 공급 이대로 좋은가(1) 쌀가공업체의 이유 있는 주장

우리 국민의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쌀 소비가 매년 감소하고 있다. 국민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2023년에 56.4kg으로 전년보다 0.3kg(0.6%) 감소했다. 이는 밥쌀용쌀 소비 감소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가공용쌀 소비는 매년 증가하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곡물 소비량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식품업계 쌀 사용량은 81만7000톤으로 전년보다 12만6000톤(18.2%) 늘었다. 이처럼 쌀가공산업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쌀가공식품업계는 제품의 원료로 사용하는 쌀인 정부양곡의 품질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2023년 쌀가공식품 수출액은 2억1723만9000달러(약 2900억원)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하는 등 한국 식품산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됐다. 이는 전년 1억8182만1000달러에 비해 19.5%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쌀 소비 확대는 물론 수출 증진에 쌀가공식품이 효자 노릇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처럼 K-푸드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쌀가공식품이 국가 경제에도 기여하고 있다. 하지만 쌀가공식품이 국내는 물론 세계시장에서도 주목 받고 있음에도 수많은 쌀가공식품업체들이 정부양곡 가공용쌀의 이물 문제로 속앓이를 하고 있다.

정부양곡 가공용쌀 이물로 골머리 앓는 쌀가공식품업계

정부양곡 가공용 쌀에서 나온 돌멩이
정부양곡 가공용쌀에서 나온 돌멩이

“기자님 같은 경우도 집에서 밥을 하다가 돌이 나오면 당장 클레임을 걸잖아요. 근데 쌀가공식품업체들이 공급받는 쌀에 0.2%까지는 허용해줘요. 이물이 아니라고 그래요.” 

“지난달에 우리 회사가 공급받은 쌀 1톤 백에서 이물이 100개가 넘게 나왔거든요.” _ A 쌀가공식품업체 대표

쌀 이물 문제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쌀가공식품업체 대표들은 이구동성으로 그동안 가공용쌀의 이물 혼입 문제를 수없이 제기했지만, 해결되지 않는다며 답답함을 호소했다.

쌀가공식품업체들은 지난 30여년 동안 정부관리양곡 가공용쌀 품질 문제 해결을 끊임없이 요구해왔으나, 근본적인 문제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쌀가공식품업체들은 국내는 물론 해외로까지 수출되는 쌀가공식품이 혹여나 이물 문제가 사회 문제로 커질 경우 기업의 생존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정부양곡 가공용쌀은 대한곡물협회 회원사들이 운영하는 도정공장에서 생산, 쌀가공식품업체에 공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다수 쌀가공식품업체들은 협약에 의해 이 쌀을 공급받아 가공식품을 만들고 있다.

국내 전체 쌀가공제조업체 수는 즉석판매제조업체(떡방앗간)를 포함, 1만4000여 개소로, 이중 쌀가공업체는 3900개소이며, 이들이 소비하는 전체 쌀 소비량은 81만7122톤에 이르고 있다. 

이중 정부양곡을 사용하는 쌀가공업체는 1050개소, 즉석판매제조업체는 5000여 개소다. 이들 업체가 가공하는 쌀은 연간 36만톤에 달한다. 올해 40만톤, 2025년 50만톤, 2026년 57만톤, 2027년 63만톤, 2028년 70만톤의 정부양곡 쌀을 가공용으로 소비할 목표를 세우고 있어 매년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도정공장에서 사용하는 벨트, 식품용으로 바꿔야 

정부양곡 가공용쌀에 혼입된 벨트조각.  
정부양곡 가공용쌀에 혼입된 벨트조각.  

쌀가공업체들은 대부분 가공용 원료쌀을 정부로부터 공급받아 떡, 밥, 음료, 술, 빵, 쌀가루 등을 만들고 있다.

정부양곡을 공급받아 가공하는 업체들은 그동안 지속적으로 정부관리양곡 가공용쌀 품질의 문제점을 제기하고 해결을 촉구해왔다고 한다. 그러나 제도가 시행된 지 30여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하소연 하고 있다.

“도정공장에서 사용하는 벨트를 좀 바꾸면 좋겠습니다. 크랙이 가는 벨트 말고, 식품용 벨트가 따로 있거든요. 크랙이 가지 않는 벨트는 조금 비싸긴 한데, 도정공장에서는 식품용 벨트만 사용하도록 아예 규정을 바꿨으면 좋겠습니다.”

쌀가공식품을 생산하는 A사 대표는 공급받는 쌀에 이물이 많이 발생하는 원인의 하나로 도정공장의 벨트 문제도 제기한다. 식품용 벨트가 따로 있지만, 대다수 도정공장에서 일반 벨트를 사용해 벨트조각이 쌀에 혼입돼도 눈에 잘 띄지 않는 이물이 많아 가공식품을 만드는 데 애를 먹고 있다고 했다.

정부 당국자의 가공용 쌀에 대한 인식
쌀가공식품업체들은 “가공용쌀의 이물과 관련해서는 정부 차원의 제도적 개선책이 나오지 않는 한 해결책도 나오지 않을 것 같다”며, “정책입안자들이 관심을 가지고 제도적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예전에 관계공무원과 함께 회의할 때 제가 그랬거든요. ‘쌀에서 벌레가 나오면 주무관님께서는 어떻게 해요?’ 그랬더니, 자기는 ‘그냥 먹는다’고 그러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누가 그걸 먹냐?’ 그랬더니, 얼굴이 빨개지면서 대답을 못했어요.”

A사 대표가 오래 전에 있었던 일화를 전하는 말이다. 그 공무원의 말은 곧 실수요업체들이 부닥치는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지 못해 해결하려는 의지가 미약하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래서 일까?’ 30년이 지나는 동안 아직도 정부양곡 가공용쌀의 이물을 해결하려는 문제는 쌀가공식품업계의 숙원이 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2008년 과자에 생쥐 머리, 참치캔에 칼날 발견 등 식품 이물 혼입이 사회적으로 이슈가 됨에 따라 2009년 식품위생법을 개정, 영업자의 이물 보고를 의무화하는 등 위해ㆍ혐오 이물에 대한 신속한 조치를 통해 소비자 피해를 예방하도록 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보고대상 이물의 범위와 조사절차 등에 관한 규정’에 △3mm 이상 크기의 유리ㆍ플라스틱ㆍ사기 또는 금속성 재질 물질 △섭취과정에서 혐오감을 줄 수 있는 이물로 쥐 등 동물의 사체 또는 그 배설물, 파리, 바퀴벌레 등 곤충류, 기생충 및 그 알 등을 제시하고 있다. 또, △컨베이어벨트 등 고무 종류도 신고하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쌀가공식품업체들이 공급받는 정부양곡에 돌멩이, 플라스틱 조각, 고무 조각, 쇳조각, 풀씨, 쥐똥, 나뭇가지, 노끈, 벨트 부스러기 등이 섞여 있고, 곰팡이나 벌레가 발생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또, 도정일이나 원산지 등이 제대로 표시돼 있지 않거나, 훼손된 포장지에 원료가 공급되기도 하고, 원료 쌀의 도정상태가 불량하거나 싸라기가 너무 많이 나오는 등 정부양곡 쌀 자체에 품질 불량이 많다는 하소연이다.

정부양곡 가공용쌀에 혼입된 미분 덩어리와 실조각
정부양곡 가공용쌀에 혼입된 미분 덩어리와 실조각

그래서 쌀을 이용한 가공식품을 만들 때 이물 제거에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지만, 혹시라도 문제가 발생할 지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쌀가공식품협회는 쌀가공식품업체들이 공급받는 가공용쌀의 품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양곡 가공용쌀 품질관리센터’를 구축, 도정공장의 자체 품질 개선 노력 유도와 품질 사후관리를 시도하고 있다. 그럼에도 가공용쌀의 품질은 개선되지 않은, 고질적인 문제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을 당국도 모르는 것이 아니다. 정부는 그동안 정부양곡 이물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120여 곳의 정부양곡 도정공장에 대한 등급제를 실시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고, 올해부터는 일정 수준 이하의 도정공장은 아예 정부양곡을 주지 않을 방침이다. 그러나 업계는 미온 정책이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현행 제도에서는 도정공장이 책임 생산량을 충족하고 남은 양은 정부양곡 도정공장 소유로 하고 있어, 도정공장의 공장주는 품질을 높이기보다는 생산량을 늘리는 것이 이익이 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도정공장에서 싸라기 비율 낮추지 않는 이유
“기준 도정수율이 72%인 경우, 도정수율 73%로 싸라기 3% 제품 생산시 수율 1%에 해당하는 나머지가 공장주 소유로 됩니다. 때문에 도정공장 입장에서는 싸라기 비율을 낮출 이유가 없습니다.“

도정공장에서 도정 속도를 조금만 늦춰도 쌀의 품질을 높일 수 있지만, 현행 제도에서는 도정공장 스스로 품질을 높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 쌀가공식품업체들이 지적하는, 제도적으로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이다.

그래서 쌀가공업체들은 매년 수시로 정부양곡 가공용쌀에 이러한 이물이 너무 많아 민원을 제기하고, 정부관리양곡의 가공용쌀 품질 문제에 대한 근본 문제 해결을 촉구해왔다는 것이다. 

쌀가공업체 관계자들은 정부양곡 가공용쌀에 대해 품질 개선 요구가 계속적으로 있었음에도 지난 30여년 간 개선되지 않고 있어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는 한 언제 개선될 지 막막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그렇다고 정부양곡 쌀의 이물 문제만을 탓하며 제품 생산을 소홀히 할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규모가 큰 쌀가공식품업체에서는 아예 수천만원 하는 색채 선별기 등 이물 제거 시설을 갖추고, 인력을 투입, 별도로 이물을 제거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B 업체의 경우 정부양곡 가공용쌀의 이물을 선별하기 위해 수천만원의 비용을 들여 석발기, 진공흡입선별기, 색채 선별기 등을 설치했다고 한다.

이 회사 관계자는 정부미 1톤을 선별하면 10kg 내외의 부산물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엄청난 이물이다. 또, 이물을 선별하기 위해 별도 인력을 투입하고 있어 쌀 선별을 위한 인건비만도 연간 1억원이 넘게 들어간다고 한다.

그러나, 여력이 있는 기업들은 비용이 들어가더라도 이물 선별을 위한 장비를 도입할 수 있지만, 정부양곡 가공용쌀을 공급받는 대다수 업체들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을 투자할 수 없어 일일이 이물을 골라내는 등 수작업에 의존하고 있다.

“도정공장에서 색채 선별기 등 이물 제거 시설을 도입해 실수요업체들이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쌀을 공급해줘야 합니다. 실수요기업에서 품질을 개선해달라는 요구는 정당한 것입니다. 현행 제도가 지금처럼 계속돼 공급받은 쌀을 소비하는 기업에서 다시 이물을 제거하도록 하는 정책은 국가적으로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제3자는 가공용쌀을 사용하는 기업에서 이물 제거 시설을 도입하면 해결될 문제라고 안일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쌀 소비자입니다. 쌀 소비자의 요구에 맞춰서 공급해달라는 것은 정당한 요구입니다.”

쌀가공업체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이처럼 가공용으로 공급되는 정부양곡의 품질 문제 원인은 바람직하지 않은 정책 때문이라고 쌀가공식품업체들은 생각하고 있다.

“현 제도는 도정공장이 책임 생산량을 채우고 잔량은 정부양곡 도정공장 소유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공장에서는 품질을 높이기보다는 생산을 늘리는 것이 남는 장사가 되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정부양곡 가공용쌀을 사용하는 민간기업들이 자기 책임 하에 우수시설을 갖춘 정부양곡 우수시설 도정공장에서 가공해 실수요기업에 공급할 경우, 근본적인 품질 문제 해결도 가능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실제로 과거 정부양곡 품질 개선을 위해 국산쌀 추가 공급량에 대해 수요업체가 우수시설 중심으로 정부양곡 도정공장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시범 공급을 추진, 이물 혼입이 감소된 바 있다고 한다.

따라서 정부양곡 가공용쌀 품질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쌀 공급자와 쌀 수요자인 당사자가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원료 공급체계를 개편하는 것도 방안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식품안전은 국민건강은 물론 안전문제를 발생시킬 경우,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기 때문에 쌀가공식품업체들은 현재 수준에서 철저한 이물 관리를 하고 있으나, 1차 도정공장에서 이물이 없는 쌀을 공급하면 해결될 일을 수요기업에서 엄청난 비용과 시간을 들이도록 하는 현실은 하루빨리 개선돼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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