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문화, 우리 민족의 정신 응어리진 것
유네스코 무형문화재 등재, 결코 우연 아냐

신동화 명예교수의 살며 생각하며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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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말, “이론에는 밝은데 실무에는 약하니 이번 기회에 직접 몸으로 경험해 보세요” 이 말에 꼼짝없이 우리집 김장하는 날, 김치 버무리는 작업에 의사에 반하여 강제 동원되었다. 

근 50년 식품 분야에 몸 담그고 있으면서 여러 분야에서 폭넓게 경험했고 실제 실무에도 접하고 새로운 연구를 정리하여 많은 연구논문을 내곤 했는데, 아내에게 실무경험이 없다는 얘기를 듣고 반성하는 바가 컸다. 순수과학이 아닌 응용 분야는 내가 머릿속에 그리는 이론이 현장에서 이용되어야 하고, 실생활에서 넓게 활용되어야 그 소임을 다했다고 평소에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장에서 그 소신이 잘 지켜지지 않은 것을 실토하지 않을 수 없는 계기가 되었다.

김치 숙성과정이나 관여하는 미생물, 성분 변화와 맛의 관계 등은 줄줄이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 배추 품종과 크기, 조직에 따라 소금을 어떻게 얼마만큼 사용해야 하며, 시중에 나오는 소금의 종류는 어찌 되고 구매할 때 배추 선별 기준은 무엇이 중요한지 내 머릿속 지식의 범위를 넘어가는 사항이 너무 많았다. 

내가 김장에 참여한 동기는 자식 분가시키고 이제 부부만 사는데, 아내도 이제 80을 바라보고 있으니 건강이 옛날만 하겠는가. 가끔 가사도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애틋한 생각이 문득 들기도 했는데, 김장철이 되어 낑낑대면서 배추 들여놓고 여러 양념재료 사러 값이 싼 이 시장, 저 슈퍼를 뒤지는 모습에서 내가 힘을 보태지 않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것이 늙어가는, 생각건대, 더 피해 갈 수 없는 막다른 골목이라 할까. 언뜻 이 일도 할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는 서글픈 생각도 언뜻 들기도 한다. 

이제 공장에서 생산되는 김치도 믿을 만하고 훨씬 위생적으로 만들고 있으니 필요량만큼 때때로 사다 먹어도 되지 않겠냐는 내 말은 전연 씨알머리가 먹히지 않는다. 결혼생활 40년이 넘는데 아마도 김장에 관여한 기억이 별로 없으니, 식품과학도가 실무에는 전연 능하지 못하다는 얘기를 들어도 전연 변명의 여지가 없게 되었다. 

올해 김장 참여가 처음이 아니고 실은 작년부터 같이 했는데, 소가 어디 끌려가듯 억지로 참여하다가 올해는 자진하여 절임배추에 양념 속을 넣는 작업을 맡기도 하였다. 사실 더 중요한 것은 씻어 소금 절임이라는 과정과 맛을 좌우하는 양념 조합과 버무림인데 여기에 내가 설 자리는 없다는 것을 직감하였다. 

벌써 오래 전에 유명하다는 김치용 젓갈을 구매해 놓았고, 절임용 소금을 잘 만든다고 알려진 제품을 확인하여 준비해 놓았다. 그리고 배추 다듬기, 절단하기는 수십 년 노하우로 숙달한 솜씨를 발휘한다. 학술논문에는 소금양과 배추 무게 등을 표기해야 하는데, 아내는 손이 저울이요 눈이 무게를 대신한다. 절임을 해놓고 저녁 자다가도 정확한 시간에 일어나 뒤집어주는 모습을 잠깐 잠 깬 사이에 느끼곤 한다. 이렇게 정성 들여 잘 절인 배추에 전날 잘 조합된 양념을 배추에 버무리는 작업은 전체 과정 중 극히 일부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양념 속 넣는 버무림 과정도 아내의 지침을 받아 배춧잎 하나하나를 젖혀가며 넣는 것이 요체라고 한다. 옛날 할머니와 어머니의 모습에서는 건성으로 봤는데 내 머릿속에 무엇이 남아있겠는가. 단지 기억에 남는 것은 갓 버무린 김치를 한 잎 따서 내 입속에 넣어주시고 만족해하시는 모습이다. 또한, 김장하면서 남겨놓은 연한 배춧속 노란 잎의 약간 단맛의 아삭거림이 아직도 입속에 남아있다. 

대가족이 살고 있어서 배추 몇십 포기가 아니라 몇백 포기, 수많은 옹기에 김치 종류도 다양하였다. 겨울 몇 달 사이에 먹을 것, 봄, 여름 농사지을 때 밥반찬으로 사용할 것 등 용도에 따라 소금이나 양념이 달랐고, 겨울에 먹을 동치미이며 짠지 등도 구분하여 담가야 한다. 내가 한 일은 배추 나르는 일, 샘물 길어 큰 독에 넣는 것이었으니, 김치 담그는 그 노하우는 어찌 알겠는가. 하긴 그것은 어머니와 할머니의 고유한 영역이고 나하고는 관계없다는 생각이었다. 

나를 낳고 길러주신 분들이 떠나고, 이제 단출히 아내와 함께 우리만이 먹을 김장을 하고 있으니 여러 감회가 가슴이 저린다. 시골에서 김장하는 날은 집안 잔칫날로 가족을 포함, 많은 이웃이 참여하고 같이 나눔의 정이 솟았는데 아파트, 우리집에서는 누구도 없이 단둘이 담그는 김장에서 옛 멋을 되찾기는 너무 큰 욕심이런가. 우리 김장문화가 유네스코 무형문화재로 등재된 것은 우리 민족의 정신이 응어리진 것으로 결코 우연이 아니다. 이 김장에 이제 실무를 조금 익힐 수 있도록 배려해 준 아내에게 감사해야 하겠지.

신동화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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