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회장 대표작 ‘신라면’, 미국서 일본 라면보다 3~4배 비싸게 팔려

고(故) 신춘호 농심 회장

지병으로 27일 별세한 농심 창업주 율촌(栗村) 신춘호 회장(향년 92세)은 1930년 12월 1일 울산광역시 울주군 삼동면에서 태어났다. 故 신 회장은 1965년 농심을 창업해 신라면과 짜파게티, 새우깡 등 국민의 사랑을 받는 제품을 개발했으며, 특히 신춘호 회장의 역작 ‘신라면’은 전세계 100여개국에 수출돼 한국 식품 외교관으로 인정받고 있다. 

신 회장은 부친 신진수 공과 모친 김필순 여사의 5남 5녀 중 셋째 아들로, 1954년 김낙양 여사와 결혼해 신현주(농심기획 부회장), 신동원(농심 부회장), 신동윤(율촌화학 부회장), 신동익(메가마트 부회장), 신윤경(아모레퍼시픽 서경배회장 부인) 3남 2녀를 두었다. 
 
1958년 대학교 졸업 후 일본에서 성공한 故 신격호 회장을 도와 제과사업을 시작했으나, 1963년부터 독자적인 사업을 모색했다. 신춘호 회장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진전되던 일본에서 쉽고 빠르게 조리할 수 있는 라면이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당시 신 회장은 “한국에서 라면은 간편식인 일본과는 다른 주식이어야 하며, 따라서 값이 싸면서 우리 입맛에 맞고 영양도 충분한 대용식이어야 먹는 문제 해결에 큰 몫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 회장의 브랜드 철학은 확고하다. 반드시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해야 하며, 제품의 이름은 특성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명쾌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국적인 맛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라면쟁이, 스낵쟁이라 부르며 직원들에게도 장인정신을 주문하곤 했다고 한다. 
 
신 회장은 회사 설립부터 연구개발 부서를 따로 두었다. 당시 라면산업이 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일본의 기술을 도입하면 제품 개발이 수월했겠지만, 농심만의 특징을 담아낼 수도, 나아가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제품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성공장 설립 때에도 신 회장의 고집은 여실히 드러난다. 신 회장은 국물맛에 혁신적인 변화를 이루기 위해 선진국의 관련 제조설비를 검토하되, 한국적인 맛을 구현할 수 있도록 턴키방식의 일괄 도입을 반대했다. 선진 설비지만 서양인에게 적합하도록 개발된 것이기 때문에 농심이 축적해 온 노하우가 잘 구현될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주문한 것이다. 
 
신 회장은 브랜드 전문가로도 이름높다. 유기그릇으로 유명한 지역명에 제사상에 오르는 ‘탕‘을 합성한 안성탕면이나 짜장면과 스파게티를 조합한 짜파게티, 어린 딸의 발음에서 영감을 얻은 새우깡 등 농심의 역대 히트작품에는 신 회장의 천재성이 반영돼 있다.

신 회장의 대표작은 역시 신라면이다. 지금은 익숙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파격적인 이름이었다. 당시 브랜드는 대부분 회사명이 중심으로 되어 있었고, 한자를 상품명으로 쓴 전례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 회장이 발음이 편하고 소비자가 쉽게 주목할 수 있으면서 제품 속성을 명확히 전달할 수 있는 네이밍이 중요하다며 임원들을 설득했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라면은 1991년부터 국내시장을 석권하는 국민라면으로 등극했고. 세계시장을 공략하는 첨병 역할을 하게 된다. 신 회장은 해외 진출 초기부터 신라면의 세계화를 꿈꿨다. ‘한국시장에서 파는 신라면을 그대로 해외에 가져간다’는 것이다. 한국의 맛으로 세계인의 입맛을 충분히 만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 것이다. 여기에 고급 이미지도 필요하다고 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제품인데, 나라의 이미지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품질에 대한 자신감도 있었다. 
 
실제로 신라면은 미국시장에서 일본 라면보다 대부분 3~4배 비싸다. 월마트 등 미국 주요 유통채널에서는 물론이고, 주요 정부시설에 라면 최초로 입점돼 판매되고 있다. 중국에서도 한국 특유의 얼큰한 맛으로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신 회장은 2018년 중국의 인민일보가 신라면을 ‘중국인이 사랑하는 한국 명품’으로 선정했을 때 그리고 지난해 미국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신라면블랙을 세계 최고의 라면 1위에 선정했을 때,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고 전해진다. 
 
신 회장은 한국인에게 익숙한 맛을 라면과 스낵으로 만들어냈다. 신 회장의 라면은 배고픔을 덜어주는 음식에서 개인의 기호가 반영된 간편식으로 진화했다. 국민의 삶과 깊숙하게 연결되며 희로애락을 함께 했다. 농심라면은 한국을 넘어 세계시장에서 그 활약을 이어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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